개요
웅장한 바로크 건축 양식과 풍부한 내부 장식을 감상하고, 특히 교회의 신비로운 지하 공간(카타콤) 탐험에 관심 있는 역사 및 건축 애호가, 그리고 영적인 공간을 찾는 신앙인들이 주로 방문한다. 일부 방문객은 이곳에서 열리는 특별한 콘서트를 경험하기도 한다.
정교한 프레스코화와 조각으로 장식된 교회 내부를 둘러볼 수 있으며, 특히 지하 동굴은 과거의 흔적과 함께 고대 도시의 축소 모형, 오래된 유물 등을 탐험하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방문객들은 역사의 아픔을 함께 기억할 수 있다.
현재 교회 일부와 천장 프레스코화 등이 보수 공사 중이거나 비계로 가려져 있어, 전체적인 관람 경험에 다소 제한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접근 방법
🚶 도보
- 리비우 구시가지 중심부의 테아트랄나(Teatralna) 거리 11번지에 위치하고 있어, 리비우 시장 광장 등 주요 관광 명소에서 도보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 대중교통
- 구시가지 내에 위치하므로, 리비우 시내를 운행하는 다양한 버스나 트램 노선을 이용하여 인근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로 이동 가능하다.
정확한 노선 및 시간표는 현지 대중교통 정보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교회 아래에는 과거 매장지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광대한 지하 동굴(카타콤)**이 자리 잡고 있다. 방문객들은 가이드 투어를 통해 이 신비로운 공간을 탐험하며 오래된 조각품, 고대 도시 리비우의 축소 모형, 고고학적 유물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운영시간: 투어 시간에 따라 다름
17세기 초 예수회에 의해 건축된 이 교회는 리비우 최초의 바로크 양식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웅장한 중앙 제단과 화려한 프레스코 천장화, 정교한 조각상 등 바로크 예술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으며, 특히 얀 피스터의 십자가 조각과 세바스티안 페싱어의 중앙 제단이 유명하다.
역사적으로 군 수비대 교회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현재도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위한 정신적 중심지이다. 특히 교회 내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희생자들을 기리는 사진과 그들의 자녀들이 남긴 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어, 방문객들에게 깊은 슬픔과 감동을 동시에 전달한다.
추천 포토 스팟
교회 내부 중앙 제단과 천장화
웅장한 바로크 양식의 제단과 화려한 천장 프레스코화를 배경으로 교회의 전체적인 아름다움과 규모를 담을 수 있다.
지하 동굴의 신비로운 통로
낮은 조명과 독특한 구조물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분위기의 지하 통로에서 탐험하는 모습을 특별하게 담아낼 수 있다.
교회 외관 (테아트랄나 거리)
17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교회의 전체적인 외관과 함께 주변의 역사적인 리비우 구시가지 풍경을 함께 촬영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교회 지하 동굴(카타콤)은 별도의 투어로 운영되며, 영어 또는 우크라이나어로 진행되는 가이드 투어를 이용하면 건축물의 역사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현재 교회 일부와 천장 프레스코화 등이 보수 공사 중이거나 비계로 가려져 있을 수 있다.
일요일 오후 3시에는 영어로 진행되는 미사가 있다는 방문객의 언급이 있으니, 관심 있는 여행자는 시간을 맞춰 방문해 볼 수 있다.
교회 내부에 우크라이나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사진과 아이들의 편지 등이 전시된 공간이 있으므로, 방문 시 경건한 마음으로 둘러보는 것이 좋다.
때때로 교회 내부에서 합창단 공연이나 오르간 콘서트 등이 열리기도 하며, 운이 좋다면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역사적 배경
예수회 선교사 리비우 도착
예수회 선교사들이 리비우에 도착하여 활동을 시작했다.
최초 목조 교회 건립
도시 방어벽 서쪽, 예수회 문(Jesuit gate) 근처에 첫 목조 교회가 세워졌다.
현재 교회 건축 시작 및 완공
세바스티안 라흐미우스 수사의 초기 설계를 바탕으로, 1618년부터 예수회 건축가 지아코모 브리아노의 감독 하에 바로크 양식의 현재 교회가 건축되었다. 1630년 리비우 대주교 얀 안제이 프루흐니츠키에 의해 축성되었으며, 완공 당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서 가장 큰 교회 중 하나였다.
종탑 건설
마르틴 호드니의 설계로 약 100미터 높이의 종탑이 세워져 당시 리비우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 되었다. (1830년 시청 탑 붕괴 후 철거됨)
프레스코 장식
화가 프란츠 그레고르 이그나츠 엑슈타인이 주 신랑(nave)의 천장 프레스코화를 그렸으며, 그의 사후에는 아들 세바스티안 엑슈타인이 측면 신랑과 예배당의 그림 작업을 이어갔다.
예수회 탄압 및 군 수비대 교회로 전환
교황 클레멘스 14세에 의해 예수회가 탄압받으면서 우크라이나에서 추방되었고, 교회는 군 수비대 교회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예수회 복귀
교황 비오 7세가 예수회를 복원한 지 6년 후, 예수회는 리비우로 돌아와 교회의 관리권을 다시 맡았다.
1848년 혁명과 피해
리비우에서 발생한 지역 군대의 반란에 대응하여 오스트리아군이 포격하는 과정에서 포탄 두 발이 교회 지붕을 손상시켰다. 같은 해 예수회는 다시 리비우에서 추방당했다. (1852년 재복귀)
소련 정부에 의한 교회 폐쇄
제2차 세계대전 후 리비우가 소련에 편입되면서, 1946년 6월 4일 소련 정부는 예수회를 우크라이나에서 추방하고 교회를 폐쇄했다. 이후 수십 년간 창고 및 바실 스테파니크 과학 도서관의 도서 보관소(230만 권 이상 보관)로 사용되었다.
우크라이나 그리스-가톨릭 교회로 이전
2년간의 노력 끝에, 2010년 7월 8일 리비우 시는 교회의 소유권을 우크라이나 그리스-가톨릭 교회(UGCC)로 이전하였고, 교회는 군종센터(Center of Military Chaplaincy)에서 관리하게 되었다.
복원 및 재봉헌
대대적인 청소와 복원 작업을 거쳐, 2011년 12월 6일 우크라이나 군 창설 20주년을 기념하여 성 베드로와 바오로 수비대 교회로 공식 재봉헌되었다. 1946년 이후 처음으로 성찬예배가 거행되었다.
여담
이 교회는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예수회 교회(Jesuit Church)'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건축 초기 로마에 있는 예수회 본부 교회인 '일 제수 성당(Church of the Gesù)'을 모델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소련 시절, 교회는 바실 스테파니크 과학 도서관의 책 보관소로 사용되었는데, 한때 230만 권이 넘는 방대한 양의 책과 서가가 이곳을 가득 메웠다고 한다. 이로 인해 내부 장식이 일부 손상되기도 했지만, 역설적으로 건물이 다른 용도로 전용되어 완전히 파괴되는 것을 막아준 측면도 있다는 평가가 있다.
교회 지하에는 고고학적 발굴이 이루어진 지하 묘지(크립트)가 있으며, 과거 리비우에서 가장 높았던 약 100미터의 종탑이 있었으나 1828년 시청 탑 붕괴 후 안전 문제로 1830년에 철거되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의 역사적인 지도자인 보흐단 흐멜니츠키(Bohdan Khmelnytsky)가 젊은 시절 교회에 인접한 구 예수회 대학(Jesuit College)에서 수학했다는 사실은 이 장소의 역사적 의미를 더욱 깊게 한다.
1894년 교회 정면 보수 공사 중, 하단부 벽감에는 예수회 설립자인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아시아 선교의 개척자인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젊은 성인 스타니슬라브 코스트카, 폴란드의 순교자 성 안드레이 보볼라 등 4명의 예수회 성인 조각상이 조각가 펠릭스 파블린스키에 의해 설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