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독특하고 웅장한 건축 양식에 매료되거나 하르키우 유대인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진 건축학도, 역사 애호가, 그리고 문화 탐방객들이 주로 방문한다. 특히 로마노-고딕, 고딕 리바이벌, 무어 리바이벌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외관은 건축학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방문객들은 시나고그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건축 디테일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으며, 내부에서는 실제 운영 중인 유대교 회당의 종교적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이곳은 하르키우 유대인 공동체의 중심지로서 종교 행사 외에도 교육 및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며, 내부에 있는 작은 코셔 상점도 이용 가능하다.
일부 방문객은 내부 계단 이용에 불편을 느낄 수 있으며, 주변 주차 공간이 협소하다는 점이 언급된다.
접근 방법
🚇 지하철 이용
- M1호선 Maidan Konstytutsii (Майдан Конституції) 역에서 하차 후 도보로 접근 가능하다.
🚗 자가용 이용
-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나, 시나고그 주변 주차 공간이 매우 협소하여 주차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주요 특징
로마노-고딕, 고딕 리바이벌, 무어 리바이벌 양식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로, 높이 42m에 달하는 돔과 정교한 외관 장식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큰 시나고그 중 하나로 꼽히는 건축학적 명작이다.
정통 유대교 차바드 공동체가 운영하는 곳으로, 단순한 예배 공간을 넘어 학교, 유치원, 예시바, 미크바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하르키우 유대인 생활의 구심점이다. 유대교 명절에는 다 함께 축하 행사를 진행한다.
1913년 완공 이후 소련 시절 폐쇄되어 노동자 클럽, 영화관, 스포츠 시설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1990년대에 들어서야 본래 기능을 회복했다. 1998년 화재와 2022년 전쟁 중 폭격 피해 등 수난을 겪고 복원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추천 포토 스팟
시나고그 정면
로마노-고딕, 고딕 리바이벌, 무어 리바이벌 양식이 혼합된 웅장하고 독특한 건축물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지점이다.
중앙 돔과 외벽 디테일
시나고그의 상징적인 높은 돔과 정교한 벽돌 장식, 창문 디자인 등 건축학적 아름다움을 가까이에서 촬영할 수 있다.
방문 팁
내부에 코셔 식료품을 구매할 수 있는 작은 상점이 운영된다.
방문객에게 비교적 친절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적 배경
이전 기도처 운영
현재 시나고그 부지에는 1867년부터 사용된 유대교 기도처가 있었다.
건축 시작
상트페테르부르크 제국 건축가 협회 주관 디자인 공모전을 통해 야코프 게비르츠의 설계안이 채택되어 건축이 시작되었고, 현지 건축가 미하일 피스쿠노프가 건설을 감독했다.
완공
15만 소비에트 루블의 비용으로 완공되었다.
폐쇄 및 용도 변경
유대인 노동자들의 요구라는 명목으로 소련 정부에 의해 폐쇄 및 국유화되었고, 이후 코민테른 소속 유대인 노동자 클럽, 영화관, 스포츠 시설 등으로 사용되었다.
종교 활동 재개
소련 붕괴 후 유대교 그룹 간의 소유권 분쟁을 거쳐 다시 예배 장소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화재 및 차바드 인도
큰 화재로 건물이 심하게 손상되었으며, 이후 차바드 공동체에 공식적으로 인도되었다.
대대적 보수 완료
블라디미르 노브고로도프의 참여로 광범위한 보수 공사가 완료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전쟁 피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건물 일부가 파손되었다.
여담
건축 당시 인근 정교회 건물과의 거리(100 사젠, 약 213m)를 유지해야 하는 규정 때문에 의도적으로 도로에서 안쪽으로 물러나 지어졌다는 얘기가 있다.
소련 시절에는 유대인 노동자 클럽, 영화관, 심지어 '스파르타크'라는 이름의 스포츠 단지 등으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현재의 시나고그 건물 디자인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제국 건축가 협회가 주최한 공모전에서 17개의 경쟁작을 제치고 선정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큰 시나고그일 뿐만 아니라, 부다페스트 시나고그 다음으로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주장이 있다.
과거 시나고그의 돔들은 에메랄드빛을 띠는 칠레산 구리로 덮여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주 돔의 일부만 복원된 상태이다.
1980년대 말, 이 건물이 스포츠 시설로 사용될 당시 지역 학생들이 피트니스 클럽으로 이용했다는 경험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