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12세기 로마네스크 건축의 정수를 경험하고 싶은 역사 및 건축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방문객들은 잘 보존된 외부의 주랑 현관과 모자라베 양식의 탑을 감상할 수 있으며, 운이 좋다면 내부의 프레스코화와 독특한 기둥머리 장식도 관찰할 수 있다.
다만, 내부 관람은 미사 시간을 중심으로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거나 특정 요일에만 가능하여 방문 전 운영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접근 방법
🚌 버스 이용 시
- 세고비아 버스 터미널(Segovia Estacio)에서 하차 후 도보 약 5분 거리에 있다.
- 세고비아 수도교 방향으로 가는 길목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 도보 이용 시
- 세고비아 수도교에서 도보 약 5-10분 거리에 위치한다.
주요 특징
12세기에 지어진 세고비아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 중 하나로, **독특한 주랑식 현관(아트리움)**과 이전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모자라베 양식의 종탑이 특징이다. 하카 대성당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부에는 일부 로마네스크 시대 프레스코화가 남아 있으며, 성서 장면이나 동식물 문양으로 장식된 정교한 기둥머리 조각들이 볼거리다. 세례당 벽화 또한 주목할 만하다.
운영시간: 미사 시간 전후 또는 특정 개방 시간
1111년에서 1126년 사이에 알폰소 1세의 명으로 재건축되었으며, 3개의 본당과 3개의 후진(앱스)을 가진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졌다. 일부 바로크 양식 장식도 혼재되어 있다.
추천 포토 스팟
성당 정면 및 주랑 현관
로마네스크 양식의 웅장한 성당 전체 모습과 아름다운 아치가 이어진 주랑 현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조명 켜진 성당 야경
저녁에 방문하면 우아하게 조명된 성당의 모습을 촬영할 수 있다.
성당 측면 및 후진(앱스)
성당의 측면과 반원형의 후진(앱스) 부분은 로마네스크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촬영 포인트다.
축제 및 이벤트
세마나 산타 (성주간) 행렬
매년 부활절 전 성주간 (특히 성 금요일)
성 금요일에는 '로스 파소스(Procesión de los Pasos)' 행렬이 대성당에서 출발하여 산 밀란 성당을 지나 수도교까지 이어진다. 다양한 성상과 신도들이 참여하는 장엄한 종교 행사이다.
방문 팁
내부 관람을 원한다면 미사 시간(평일 오전 10:30, 오후 8:00 / 주말 및 공휴일 오전 10:00, 11:30, 오후 12:30, 8:00 등) 전후로 방문하는 것이 좋다. 다만, 운영 시간은 변동될 수 있다.
많은 교회가 대부분 닫혀 있으므로, 일요일 미사 시간에 맞춰 방문하면 내부를 볼 기회가 있을 수 있다.
성당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외부의 정교한 로마네스크 조각과 건축 양식을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입장료는 무료이거나 1유로 정도의 자율적인 기부를 권장하는 경우가 있다.
역사적 배경
초기 교회 및 모자라베 탑 건설 (추정)
현재 종탑으로 남아있는 부분은 11세기에 지어진 모자라베 양식의 초기 교회 유물로 추정된다.
알폰소 1세에 의한 로마네스크 양식 재건축
카스티야의 여왕 우라카 1세의 남편이자 아라곤의 왕 알폰소 1세의 명으로 하카 대성당의 구조를 참고하여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대대적인 재건축이 이루어졌다.
건축 완성 및 장식 추가
본당, 후진, 주랑 현관 등이 완성되었으며, 내부에는 프레스코화와 조각 장식이 추가되었다.
바로크 양식 개조 및 보수
시대에 따라 일부 바로크 양식의 제단과 장식이 추가되었으며, 지속적인 보수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국가 문화재 지정
역사적,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스페인 국가 문화재(Bien de Interés Cultural)로 지정되었다.
여담
산 밀란 성당은 세고비아에 현존하는 로마네스크 양식 교회 중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로 꼽힌다.
건축 당시 아라곤 왕국의 영향을 받아, 하카 대성당의 구조를 모델로 삼아 지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성당의 종탑은 본 건물보다 앞선 11세기에 지어진 모자라베 양식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어 독특함을 더한다.
내부에는 로마네스크 시대의 프레스코화와 함께 후대에 추가된 바로크 양식의 장식이 공존하고 있어 다양한 시대의 예술 양식을 엿볼 수 있다.
한때 성당 주변은 이슬람교도 장인들이 모여 살던 '모레리아(Morería)' 또는 '아라발 마요르(Arrabal Mayor)'라 불리는 구역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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