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10세기 칼리프 도시의 장엄한 유적을 직접 탐방하고 이슬람 황금기 알안달루스의 역사와 건축을 심도 있게 이해하려는 역사 애호가 및 고고학 관심자들이 주로 찾는다.
방문객들은 광대한 고고학 유적지를 거닐며 과거 궁전, 모스크, 정원 등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고, 부지 내 박물관에서 출토된 유물과 복원된 도시 모형을 통해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일부 핵심 구역(살론 리코 등)이 보수 공사로 인해 예고 없이 폐쇄되는 경우가 있으며, 유적지까지 이동하는 셔틀버스 운영 및 티켓 구매 절차가 복잡하고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 코르도바 시내에서 서쪽으로 약 8km, Ctra. Palma del Río (A-431) 도로를 따라 이동한다.
- 유적지 입구 박물관에 넓은 무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유적지까지는 박물관에서 반드시 전용 셔틀버스(유료)를 이용해야 한다.
🚌 대중교통 및 셔틀버스 이용
- 코르도바 시내에서 O1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하차한 후, 박물관까지 약 10분 정도 도보로 이동하거나 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 코르도바 관광안내소에서 메디나 아사하라까지 왕복하는 유료 관광 셔틀버스를 운영하며, 사전 예약이 권장된다 (약 9~10유로).
- 박물관에서 유적지까지는 전용 셔틀버스(왕복 약 3유로, 현금 준비 권장)를 이용해야 하며, 개인 차량이나 도보 접근은 불가능하다.
셔틀버스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 있으므로 시간 여유를 두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10세기 칼리프 도시의 광대한 유적을 직접 거닐며, 복원된 궁전의 일부, 주거 공간, 도로 등을 통해 당시 도시 구조와 생활상을 상상해볼 수 있다. 유적 곳곳에 설치된 안내판을 통해 각 건축물의 용도와 역사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유적지 입구에 위치한 박물관에서 출토된 유물, 건축 부재, 복원 모형 및 영상 자료를 통해 메디나 아사하라의 역사와 건축, 당시 생활상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유적 방문 전 관람하면 이해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유적 곳곳에서 섬세한 아치, 기하학적 문양의 석조 장식, 정교한 기둥 등 이슬람 황금기 알안달루스 특유의 칼리프 건축 양식을 감상할 수 있다. 복원된 일부 건물에서는 당시의 화려함을 엿볼 수 있으며, 특히 살론 리코(개방 시)는 그 정수를 보여준다.
추천 포토 스팟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EU 시민은 유적지 입장료가 무료이며, 비 EU 시민은 약 1.5유로이다.
유적지까지는 박물관에서 셔틀버스(왕복 약 3유로)를 이용해야 하며, 일부 리뷰에 따르면 버스표 구매 시 현금만 가능했다는 언급이 있으므로 현금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방문 전 박물관 내 영상 자료를 시청하면 유적 이해에 도움이 된다.
이른 아침에 방문하면 여름철 더위와 많은 인파를 피하기에 용이하다.
일부 주요 유적(예: 살론 리코)이 보수 공사로 예고 없이 폐쇄될 수 있으므로, 특정 장소 관람이 목적이라면 사전에 개방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유적지 내부는 경사가 있고 걷는 구간이 많으므로 반드시 편안한 신발을 착용해야 한다.
코르도바 시내에서 출발하는 관광버스는 사전 예약이 권장되며, 때때로 만석일 수 있다.
유적지 내에는 음료 등을 구매할 수 있는 편의시설이 부족하므로, 특히 더운 날씨에는 물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건설 시작
후우마이야 왕조의 첫 칼리프인 아브드 알라흐만 3세가 코르도바 서쪽 외곽에 새로운 수도이자 행정 중심지로서 '빛나는 도시' 마디나트 알자흐라 건설을 시작했다. 이는 칼리프의 권위를 과시하고 경쟁 세력인 북아프리카의 파티마 왕조와 바그다드의 아바스 왕조에 대응하기 위한 정치적, 이념적 목적을 가졌다.
주요 시설 완공 및 이전
모스크가 완공되고(941-942년 또는 944-945년), 945년경 칼리프가 이미 도시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947년에는 조폐소를 포함한 국가기관이 코르도바에서 이곳으로 이전되었다.
대대적인 확장 및 재건축
아브드 알라흐만 3세의 통치 기간 동안, 특히 950년대에 대규모 재건축 및 확장 공사가 이루어졌다. 현재 발굴된 주요 건축물인 살론 리코(953-957년 완공), 상부 바실리카 홀(군대의 집), 기둥의 안뜰 등이 이 시기에 건설되거나 증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칼리프의 권력을 더욱 웅장하게 표현하려는 의도와 함께, 비잔티움 및 파티마 왕조 궁정의 화려함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알하캄 2세 시대의 지속적인 발전
아브드 알라흐만 3세의 아들 알하캄 2세의 통치 기간에도 도시 건설은 계속되었다. 하파르의 집과 같은 일부 주요 건축물은 이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알만수르의 등장과 마디나트 알자히라 건설
실권자 알만수르(이븐 아비 아미르)가 자신의 궁전 도시인 '마디나트 알자히라'를 건설하면서 마디나트 알자흐라는 행정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파괴 및 유기
알안달루스 내전(피트나) 기간 동안 베르베르 세력에 의해 약탈당하고 파괴되어 완전히 버려졌다. 이후 수 세기 동안 건축 자재 공급처로 사용되며 점차 잊혀졌다.
고고학적 발굴 시작
잊혀졌던 도시의 유적이 다시 확인되고, 본격적인 고고학적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다.
고고학 박물관 개관
유적지 인근에 전용 고고학 박물관이 문을 열어 발굴된 유물과 연구 결과를 전시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칼리프 도시 메디나 아사하라'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여담
도시의 이름 '알자흐라'(빛나는, 꽃피는)는 아브드 알라흐만 3세가 가장 총애했던 아내의 이름을 딴 것이며, 그녀의 조각상이 입구에 서 있었다는 대중적인 전설이 알마카리 같은 역사가들에 의해 기록되었으나, 현대 학자들은 이러한 조각상의 존재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대신, '빛나는 도시'라는 명칭은 바그다드의 '평화의 도시'(마디나트 알살람)나 카이로의 '승리의 도시'(마디나트 알카히라)처럼 아바스 왕조나 파티마 왕조가 건설한 다른 칼리프 도시들의 작명 스타일을 모방했거나, 혹은 칼리프의 주요 경쟁자였던 파티마 왕조가 예언자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별명이 '아즈자흐라', 즉 '빛나는 여인')의 후손임을 주장했기에 이에 대한 견제의 의미로 선택되었을 수 있다는 설이 있다.
메디나 아사하라의 전체 면적은 약 112헥타르에 달하지만, 현재까지 발굴되어 부분적으로 복원된 지역은 약 10헥타르로 전체의 10% 미만이다. 이 구역에는 주요 궁전들이 포함되어 있다.
건설 당시, 칼리프는 수천 개에 달하는 고대 대리석 기둥들을 북아프리카의 이프리키야(당시 파티마 왕조의 지배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등지에서 가져오거나 조달하여 재활용했다고 전해진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궁전 안에는 액체 수은으로 채워진 연못이 있는 돔형 홀이 있어, 수은을 휘저으면 빛이 반사되어 눈부신 물결을 만들어냈다는 경이로운 이야기가 알마카리 등에 의해 묘사되었으나, 현대 고고학자들은 아직 이 홀의 위치를 발견하지 못했다.
아브드 알라흐만 3세는 70세의 나이로 죽기 직전, 자신의 인생에서 진정으로 행복했던 날은 단 14일뿐이었다고 술회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는 그가 누렸던 막대한 부와 권력 속에서도 인간적인 고뇌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메디나 아사하라가 쇠퇴한 후, 강력한 실권자였던 알만수르는 이 도시를 대체하기 위해 '마디나트 알자히라'라는 매우 유사한 이름의 새로운 궁전 도시를 건설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