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중세 시대의 종교 건축과 그 안에 담긴 역사적 예술품에 관심이 많은 역사/문화 탐방객이나, 조용히 기도하거나 명상할 공간을 찾는 개인 방문객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니다로스 대성당과 가까워 함께 둘러보는 경우가 많다.
교회 내부에 보존된 로마네스크 및 고딕 양식의 건축 요소를 관찰할 수 있으며, 바로크 양식의 제단화와 설교단 등 정교한 장식물들을 감상할 수 있다. 때때로 열리는 음악 공연을 관람하거나, 지역 사회를 위한 교회의 봉사 활동 모습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도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교회 내부에서 휴식을 취하는 노숙인들의 모습이나 음식 냄새 등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교회 외부의 소음이 내부로 유입되는 경우가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접근 방법
👣 도보
- 트론헤임 시내 중심부(Midtbyen)에 위치한다.
- 니다로스 대성당(Nidaros Cathedral)에서 북쪽으로 몇 블록 떨어져 있어 도보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 대중교통
- 트론헤임 시내를 운행하는 대부분의 버스 노선이 교회 인근 정류장에 정차한다.
가까운 버스 정류장 및 노선은 현지 교통 정보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12세기 후반에 건축된 이 교회는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의 특징을 모두 간직하고 있으며, 여러 차례의 화재와 복원을 거치며 다양한 시대의 흔적을 담고 있다. 특히 1742-1744년 사이에 제작된 제단화와 1771년에 만들어진 설교단은 정교한 조각과 장식으로 주목받는다.
운영시간: 교회 개방 시간 내
종교 시설을 넘어 지역 사회 구성원들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따뜻한 음식과 음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교회에 더욱 인간적이고 환대하는 분위기를 더한다.
운영시간: 교회 개방 시간 내 (제공 시간은 유동적일 수 있음)
교회는 종종 음악 공연 장소로 활용되며, 방문객들은 아름다운 오르간 연주나 합창단의 노래를 감상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좋은 음향 시설 덕분에 더욱 풍성한 음악적 경험이 가능하다. 공연이 없을 때에는 평화롭고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운영시간: 공연 일정에 따름 또는 교회 개방 시간 내
추천 포토 스팟
교회 정면 외관
중세 석조 교회의 고풍스러운 전체 모습을 담을 수 있다. 특히 회반죽을 제거하여 드러난 자갈돌 외벽이 독특한 배경이 된다.
내부 제단화 및 설교단 주변
정교하고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제단화와 설교단을 중심으로 역사적인 분위기를 담을 수 있다.
교회 측면 또는 후면
교회의 전체적인 구조와 주변 환경을 함께 담아 다양한 각도에서 교회의 모습을 기록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교회는 기도, 명상 또는 단순히 휴식을 취하기 위해 항상 열려 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내부에서는 교회의 사회 봉사 활동의 일환으로 무료 커피나 간단한 음식을 제공받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도보 거리에 있는 니다로스 대성당과 함께 방문 계획을 세우면 트론헤임의 종교 역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교회 내부 곳곳에 숨겨진 독특한 예술 작품이나 역사적 흔적들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경험이 될 수 있다.
역사적 배경
건축 시작
Bjørn Sigvardsson의 설계로 로마네스크 및 고딕 양식으로 건축 시작. 초기 명칭은 'Mariakirken (성모 마리아 교회)'.
명칭 변경
'Vår Frue kirke (성모 마리아 교회)'로 불리기 시작.
도시 대화재
트론헤임 시내 건물의 90%와 함께 소실. 벽만 남았으나 일부 가구는 구조됨.
화재
다시 화재 발생.
본당 확장
교회 본당이 서쪽으로 확장되어 총 길이가 64m에 달하게 됨.
화재
또다시 화재 발생.
대규모 보수
대대적인 보수 공사 진행. 서쪽 끝에 평평한 지붕의 새로운 탑 건설.
탑 지붕 변경
탑의 지붕이 피라미드 형태로 변경되고 새로운 첨탑 추가.
바로크 양식 도입
교회 내부가 바로크 양식으로 장식됨.
선거 교회
노르웨이 헌법 제정을 위한 제헌의회 선거 교회로 사용됨.
제단화 이전
원래 니다로스 대성당을 위해 Heinrich Kühnemann이 1742-1744년에 조각한 제단화가 Vår Frue kirke로 이전됨.
복원 공사 (크리스티안 크리스티)
건축가 크리스티안 크리스티의 주도로 복원 공사 진행. 바로크 및 로코코 양식 내부 장식 상당수 제거, 중세 모습으로 일부 복원 시도.
재단장 (욘 에길 트베르달)
건축가 욘 에길 트베르달의 주도로 재단장. 외부 회반죽 제거하여 중세 시대의 자갈돌 외벽 복원. 1771년 제작된 설교단 복원.
여담
원래 이름은 '마리아키르켄(Mariakirken, 성모 마리아 교회)'이었으나, 15세기부터 현재의 이름인 '보르 프루에 시르케(Vår Frue kirke, 성모 마리아 교회)'로 불리고 있다.
현재 교회의 제단화는 1837년에 니다로스 대성당에서 옮겨온 것으로, 원래 대성당을 위해 1742년에서 1744년 사이에 하인리히 퀴네만이 조각한 작품이라고 한다.
교회는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 지역 사회의 어려운 이들을 위한 쉼터이자 무료 음식과 음료를 제공하는 **'열린 교회(Open Church)'**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
몇몇 방문객들은 교회 내부에서 음식 냄새나 마리화나 냄새를 맡았다는 언급이 있는데, 이는 교회가 사회적 약자들을 포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1814년 노르웨이 헌법 제정을 위한 선거 당시, 노르웨이 전역의 300여 개 교회와 함께 '선거 교회(valgkirke)'로 지정되어 중요한 역사적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르간 작곡가 마르틴 안드레아스 우드비에(Martin Andreas Udbye)가 이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한 적이 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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