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토리노의 역사, 특히 19세기 이탈리아의 중요한 사회 변화와 정교분리 과정에 관심 있는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다. 이곳에서 사르데냐 왕국의 중요한 법률 개혁을 상징하는 시카르디 법 기념 오벨리스크를 직접 관찰할 수 있다.
방문객들은 21미터 높이의 바베노 화강암 오벨리스크에 새겨진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라는 문구와 법을 지지한 800여 개 지방 자치단체의 이름을 살펴볼 수 있다. 주변 사보이아 광장의 고풍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잠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되새겨볼 수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광장 바닥의 포장 상태가 고르지 않아 보행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하며, 특히 비 오는 날에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접근 방법
🚶 도보
- 토리노 역사 지구인 콰드릴라테로 로마노(Quadrilatero Romano) 내에 위치하며, 비아 가리발디(Via Garibaldi) 등 주요 거리에서 도보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 대중교통
- 토리노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Piazza Savoia' 또는 인근 정류장에 하차 후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
정확한 노선 및 시간표는 현지 교통 정보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21m 높이의 바베노 화강암으로 제작된 오벨리스크에는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La Legge è uguale per tutti)"라는 문구와 함께 시카르디 법의 제정 관련 내용이 새겨져 있다. 이를 통해 19세기 중반 이탈리아의 중요한 법률 개혁 정신과 평등 사상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운영시간: 24시간 개방
오벨리스크의 네 면에는 시카르디 법의 제정을 지지했던 800여 개의 이탈리아 지방 자치단체(코무네)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당시 이 법안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와 국민적 열망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기록이다.
운영시간: 24시간 개방
추천 포토 스팟
오벨리스크 정면 (비문과 함께)
오벨리스크의 전체적인 웅장함과 함께 하단에 새겨진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라는 핵심 문구를 선명하게 담을 수 있다.
오벨리스크 측면 (지지 도시 명단 배경)
오벨리스크 측면에 촘촘히 새겨진 800여 개 지지 도시들의 이름을 배경으로 하여 역사적 의미를 더하는 독특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사보이아 광장 전체 풍경과 오벨리스크
광장을 둘러싼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함께 오벨리스크가 중심에 서 있는 모습을 넓은 화각으로 담아 광장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표현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광장 바닥이 일부 고르지 않으니, 오벨리스크 주변을 걸을 때 발밑을 조심하는 것이 좋다.
오벨리스크에 새겨진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문구와 수많은 지지 도시들의 이름을 천천히 살펴보면 기념비의 역사적 의미를 더 깊이 느낄 수 있다.
오벨리스크는 토리노 구시가지인 콰드릴라테로 로마노 지역에 위치하므로, 주변의 다른 역사적 명소나 맛집, 카페 등과 함께 둘러보기 좋다.
역사적 배경
시카르디 법 제정
사르데냐 왕국에서 교회 법원(Foro ecclesiastico) 폐지, 성직자 면책특권 제한, 교회 재산권 제한 등 정교분리를 골자로 하는 시카르디 법(Leggi Siccardi)이 주세페 시카르디 백작에 의해 공포되었다. 이는 이탈리아 통일 운동 과정에서 중요한 자유주의적 개혁 조치였다.
기념비 건립 구상
토리노의 진보적 신문 '가제타 델 포폴로(Gazzetta del Popolo)'의 주도로 시카르디 법의 역사적 중요성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 건립이 처음 제안되었고, 많은 지지를 받았다.
초석 설치
오벨리스크의 초석이 놓였다. 이 과정에서 당시의 '가제타 델 포폴로' 신문, 시카르디 법 사본, 동전, 쌀, 그리시니(토리노의 막대 과자), 바르베라 와인 한 병 등이 타임캡슐처럼 함께 묻혔다는 기록이 있다.
오벨리스크 제막
화가이자 조각가인 루이지 콰렝기(Luigi Quarenghi)의 설계로 완성된 21미터 높이의 바베노 화강암 오벨리스크가 사보이아 광장에 세워졌다. 제막식에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여 법의 제정을 축하했다.
손상 및 복원
전쟁 중 토리노 시내에서 벌어진 전투 과정에서 발사된 박격포 공격으로 인해 오벨리스크가 손상되었으나, 다행히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아 종전 후 복원 작업을 거쳤다.
추가 복원
오벨리스크 표면 세척 및 넓은 계단 정비를 포함한 추가 복원 작업이 이루어져 현재의 깨끗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여담
오벨리스크 건립 당시 초석 아래에는 타임캡슐처럼 '가제타 델 포폴로' 신문, 시카르디 법 사본, 동전, 쌀알, 그리시니(토리노의 막대 과자), 바르베라 와인 한 병 등이 묻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기념비의 위치는 의도적으로 선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 토리노 가톨릭의 중심지였던 콘솔라타 성소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줄리아 팔레티 디 바로로 후작 부인의 저택인 바로로 궁전 인근에 세워져 반교권주의적 메시지를 드러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시내 전투 중 발사된 박격포탄이 오벨리스크를 강타하여 심하게 손상시키고 쓰러질 위험에 처했으나, 기적적으로 버텨내어 전후 복원될 수 있었다.
사보이아 광장(Piazza Savoia)이라는 이름은 흔히 사보이아 왕조를 기리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사르데냐 왕국이 지배했던 프랑스 남동부의 사보이아 지역에서 유래했다. 과거에는 수지나 광장(Piazza Susina), 프랑스 광장(Place de France), 파에사나 광장(Piazza Paesana)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오벨리스크에는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LA LEGGE È UGUALE PER TUTTI)'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시카르디 법의 핵심 정신을 나타내는 동시에 현대 이탈리아 헌법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다.
과거 이 광장은 '메르카 디 부시아르(mercà dij busiard)', 즉 '고물상 시장'이라는 피에몬테 방언 이름으로 불리며 시장터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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