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사르데냐 왕국의 국왕 카를로 알베르토를 기리는 이 기마상은 토리노의 역사적인 중심지에서 그의 생애와 업적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직접 보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나 토리노의 주요 랜드마크를 탐방하는 일반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다.
방문객들은 기념비의 정교한 조각들을 감상하며 이탈리아 통일 운동인 리소르지멘토 시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고, 기념비가 위치한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 주변의 유서 깊은 건물들을 함께 둘러보며 역사 산책을 경험할 수 있다.
접근 방법
🚶 도보
- 토리노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여 주요 관광 명소에서 도보로 접근이 용이하다.
- 카리냐노 궁전(Palazzo Carignano) 바로 뒤편, 비아 포(Via Po)와 비아 주세페 베르디(Via Giuseppe Verdi)에서 가깝다.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은 보행자 전용 구역이다.
🚇 대중교통
- 향후 토리노 지하철 2호선이 광장 인근에 정차할 예정이다.
현재 가장 가까운 대중교통 정류장은 주변 주요 도로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이다.
주요 특징
카를로 마로케티가 1861년에 제작한 청동 기마상으로, 카를로 알베르토 국왕이 칼을 높이 든 역동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기단부에는 그의 생애 주요 사건들을 묘사한 4개의 부조와 함께 순교, 자유, 시민 평등, 헌법을 상징하는 4개의 여성 알레고리상, 그리고 포병, 기병, 척탄병, 베르살리에리 등 사르데냐 왕국 군대의 4개 병과를 대표하는 병사상이 조각되어 있다.
1842년에서 1859년 사이에 조성된 역사적인 광장으로, 팔라초 카리냐노의 19세기 후면 파사드가 이 광장을 향하고 있다. 광장은 2006년 전면 보행자 구역으로 지정되어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하며, 주변에는 국립 도서관과 캄파나 궁전(Palazzo Campana)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추천 포토 스팟
기념비 정면 (팔라초 카리냐노 배경)
웅장한 카를로 알베르토 기마상과 함께 팔라초 카리냐노의 아름다운 후면 파사드를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다.
광장 측면에서 기념비 촬영
기념비의 역동적인 측면과 광장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함께 포착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광장은 카스텔로 광장보다 비교적 조용하여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기에 좋다.
광장에서 젤라토를 즐기거나, 때때로 열리는 소규모 라이브 음악 공연을 감상할 수도 있다.
기념비의 기단부는 방문객들이 앉아서 쉬거나 간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햇볕이 강한 낮 시간에는 그늘을 찾아 휴식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카를로 알베르토 출생
사보이아-카리냐노 가문의 카를로 에마누엘레의 아들로 토리노 카리냐노 궁전에서 태어났다.
사르데냐 국왕 즉위
카를로 펠리체 국왕의 뒤를 이어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했다.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 조성
과거 카리냐노 궁전의 내부 정원이었던 자리에 광장이 조성되었다. 궁전의 후면 파사드가 이 광장을 향하도록 설계되었다.
기념비 건립 최초 논의
카를로 알베르토 국왕을 위한 기념비 건립 아이디어가 처음 제안되었다.
알베르토 헌법 반포
이탈리아 최초의 헌법 중 하나인 알베르토 헌법(Statuto Albertino)을 제정하여 입헌군주제의 기틀을 마련했다. 같은 해 제1차 이탈리아 독립 전쟁이 발발했다.
퇴위 및 사망
노바라 전투 패배 후 아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게 왕위를 양위하고 포르투갈 포르투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사망했다.
카를로 알베르토 기념비 건립
조각가 카를로 마로케티(Carlo Marochetti)가 제작한 카를로 알베르토 기마상이 광장 중앙에 세워졌다.
광장 보행자 전용 구역 지정
오랜 논의 끝에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이 전면 보행자 전용 구역으로 변경되었다.
여담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은 본래 팔라초 카리냐노의 내부 정원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1888년부터 1889년까지 광장과 카를로 알베르토 거리 모퉁이 건물 3층에 거주하며 '안티크리스트', '우상의 황혼', '이 사람을 보라' 등의 저서를 집필했으며, 1944년 10월 토리노 시에서 이를 기념하는 명판을 부착했다.
광장 남쪽에 위치한 18세기 건물 팔라초 캄파나(Palazzo Campana)는 파시즘 시대에 국가 파시스트당 지방 연맹 본부로 사용되었으며, 무솔리니가 토리노 공식 방문 시 작은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전해진다. 1943년 7월 26일에는 격렬한 충돌의 현장이 되어 일부 소실되기도 했다.
기념비의 기마상은 팔라초 카리냐노의 19세기 출입구를 향해 있으며, 국립 도서관에는 등을 돌리고 칼을 치켜든 모습이다.
기단부의 네 여성 알레고리상은 각각 순교, 자유, 시민 평등, 그리고 알베르토 헌법(Statuto)을 상징한다.
네 명의 병사상은 사르데냐 왕립 군대의 포병, 기병, 척탄병, 베르살리에리 부대를 나타낸다.
네 개의 부조는 각각 고이토 전투, 산타 루치아 전투, 카를로 알베르토의 퇴위, 그리고 포르투에서의 죽음을 묘사하고 있다.
카를로 알베르토 국왕은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망설이는 왕(Re Tentenna)' 또는 '이탈리아의 햄릿'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광장에는 카니발 기간 동안 매년 와인 박람회(Fiera dei vini)가 열렸으며, 1926년 2월에는 중세 마을을 테마로 한 특별 전시관이 설치되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대중매체에서
토리노의 말 (A torinói ló, The Turin Horse)
헝가리 영화감독 벨라 타르의 작품으로,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1889년 토리노의 카를로 알베르토 거리(Via Carlo Alberto)에서 마부에게 채찍질당하는 말을 보고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일화가 언급된다.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은 이 거리와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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