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고대 로마 황제에게 헌정된 신전의 유적을 통해 로마 제국의 역사와 건축 양식을 직접 확인하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나 고대 건축에 관심 있는 탐방객들이 주로 찾는다.
이곳에서는 현재 남아있는 3개의 거대한 코린트식 기둥과 엔타블러처의 정교한 조각을 관찰할 수 있으며, 캄피돌리오 언덕에서 포로 로마노의 다른 유적들과 함께 신전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카피톨리니 박물관 내 타불라리움 회랑에 일부 복원된 부분을 통해 과거의 웅장함을 엿볼 수도 있다.
신전의 많은 부분이 소실되어 현재는 세 개의 기둥과 일부 구조만 남아있어, 고대 건축물의 완전한 모습을 기대하는 방문객에게는 다소 아쉬움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접근 방법
🚇 지하철
- B선 콜로세오(Colosseo) 역에서 하차하여 포로 로마노 입구를 통해 도보로 약 10-15분 이동하면 신전 유적에 닿을 수 있다.
포로 로마노는 매우 넓으므로 내부 표지판을 잘 확인해야 한다.
🚶 도보
- 캄피돌리오 광장 방면에서 포로 로마노로 진입할 경우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다. 사투르누스 신전과 콩코르디아 신전 유적 근처에 위치한다.
주요 특징
신전의 가장 상징적인 부분으로, 높이 약 15m에 달하는 웅장함과 섬세한 코린트 양식의 주두 조각이 인상적이다.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잘 보존된 형태로 남아 로마 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남아있는 엔타블러처에는 희생 제의에 사용된 도구들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어 당시 종교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세부 장식은 신전의 중요성과 신성함을 강조한다.
캄피돌리오 언덕 위에서 신전을 포함한 포로 로마노의 광대한 유적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특히 해 질 녘이나 야간에 조명이 켜지면 더욱 인상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추천 포토 스팟
세 개의 기둥 정면
신전의 상징인 세 개의 코린트식 기둥과 그 위의 엔타블러처를 정면에서 촬영하면 웅장함과 정교한 디테일을 함께 담을 수 있다.
기둥 주두 클로즈업
코린트 양식의 화려하고 섬세한 주두 조각을 가까이서 촬영하면 고대 로마 장인의 기술을 생생하게 담을 수 있다.
캄피돌리오 언덕 위 조망점
캄피돌리오 언덕에서 신전을 포함한 포로 로마노 전체를 배경으로 파노라마 사진을 촬영하면 역사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포로 로마노 통합 입장권으로 방문 가능하며, 콜로세움, 팔라티노 언덕과 함께 둘러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람 코스이다.
저녁에 방문하면 조명이 켜진 신전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으며, 낮 시간대의 혼잡을 피할 수 있다.
카피톨리니 박물관을 방문할 계획이라면, 박물관 내 타불라리움 회랑에서 이 신전의 복원된 엔타블러처 일부를 관람할 수 있다.
가이드 투어를 이용하면 신전의 역사적 배경과 건축적 특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유익하다.
역사적 배경
건축 시작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사망한 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가 아버지를 신격화하고 그를 기리기 위해 신전 건축을 시작했다.
티투스 황제 사망
티투스 황제가 신전 완공을 보지 못하고 사망하자, 그의 동생인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건축을 이어받았다.
신전 완공 및 헌정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신전을 완공하고, 아버지 베스파시아누스와 형 티투스 모두에게 헌정했다. 이로써 플라비우스 왕조의 신격화된 황제들을 모시는 중요한 신전이 되었다.
1차 복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와 그의 아들 카라칼라 황제에 의해 신전이 복원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비문의 일부는 이때의 복원을 기록한 것이다.
쇠퇴 및 매몰
로마 제국 멸망 이후 포로 로마노 지역이 방치되면서 신전도 점차 훼손되고 흙더미에 묻히게 되었다.
발굴 및 정리
주세페 발라디에의 지휘 하에 대대적인 발굴 작업이 이루어져 현재와 같이 세 개의 기둥과 일부 구조물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때 회수된 엔타블러처 조각들은 카피톨리니 박물관 타불라리움으로 옮겨져 복원되었다.
여담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 신전은 원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만을 위해 계획되었으나,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가 신전 완공 전 사망하면서 두 황제를 함께 기리는 공간으로 변경되었다고 전해진다.
8세기경 한 익명의 순례자가 신전에 새겨진 비문을 필사한 기록이 남아있어, 후대 고고학자들이 이 유적의 정확한 명칭과 역사를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고 한다.
16세기에 그려진 로마 풍경화에도 현재처럼 세 개의 기둥만 남아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신전이 이미 오래전부터 현재와 유사한 상태로 보존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신전 건축 당시 공간이 협소하여 정면 계단이 기둥 사이에서 끝나는 독특한 구조로 설계되었다는 건축학적 분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