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첼리오 언덕은 고대 로마의 숨결을 느끼며 역사적인 건축물과 한적한 공원을 탐방하고 싶은 역사 애호가나 조용한 사색을 즐기는 여행객들이 주로 찾습니다.
이곳에서는 빌라 첼리몬타나 공원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거나, 산티 조반니 에 파올로 성당, 산토 스테파노 로톤도 성당과 같은 유서 깊은 교회들의 건축미와 내부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로마 시대 주택 유적(Case Romane del Celio)이나 클라우디우스 신전 유적 등을 통해 과거의 생활상을 엿볼 수도 있습니다.
접근 방법
🚇 지하철 이용 시
- 로마 지하철 B선 콜로세오(Colosseo) 역에서 하차 후 도보로 약 10-15분 소요됩니다.
- B선 치르코 마시모(Circo Massimo) 역에서도 접근 가능합니다.
언덕 지형이므로 역에서부터 다소 오르막길이 있을 수 있습니다.
🚌 버스 이용 시
- 첼리오 언덕 주변을 경유하는 다수의 시내버스 노선이 있습니다.
- 주요 노선으로는 81번, 673번 등이 있으며, '첼리오 비벤나(Celio Vibenna)', '산 그레고리오(San Gregorio)' 등의 정류장에서 하차할 수 있습니다.
로마 대중교통 앱이나 웹사이트에서 실시간 노선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주요 특징
첼리오 언덕에 자리한 아름다운 공원으로, 다양한 수목과 고풍스러운 분수, 이집트 오벨리스크 등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로마 시민들과 여행객들에게 사랑받는 휴식 공간이며, 종종 결혼식 장소로도 이용됩니다.
운영시간: 일반적으로 일출부터 일몰까지 개방
4세기에 순교한 두 형제 성인을 기리는 성당으로, 현재의 건물은 12세기에 재건되었습니다. 특히 이 성당의 지하에는 1~4세기에 지어진 로마 시대 주택과 상점 유적(Case Romane del Celio)이 잘 보존되어 있어, 고대 로마인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운영시간: 성당 및 지하 유적 개방 시간은 별도 확인 필요
5세기에 건립된 초기 기독교 성당으로, 로마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원형 교회 중 하나입니다. 중앙 제단을 중심으로 동심원의 기둥들이 늘어선 독특한 구조가 인상적이며, 내부 벽면에는 순교 장면을 묘사한 프레스코화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운영시간: 개방 시간 별도 확인 필요
추천 포토 스팟
빌라 첼리몬타나 공원 내 오벨리스크 주변
고대 이집트 오벨리스크와 아름다운 정원을 배경으로 멋진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습니다.
클리부스 스카우리 (Clivus Scauri)
산티 조반니 에 파올로 성당 옆으로 이어지는 고대의 아치형 도로로, 로마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사진을 촬영할 수 있습니다.
산토 스테파노 로톤도 성당 내부
독특한 원형 구조와 기둥, 그리고 인상적인 프레스코화를 함께 담아 특별한 분위기의 사진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방문 팁
산티 조반니 에 파올로 성당 방문 시, 금요일과 주말에는 지하의 로마 시대 주택 유적(Case Romane del Celio)을 관람할 수 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첼리오 언덕은 비교적 넓고 볼거리가 분산되어 있으므로, 편안한 신발을 착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빌라 첼리몬타나 공원은 현지인들도 즐겨 찾는 곳으로, 주말에는 다소 붐빌 수 있습니다.
역사적 배경
초기 정착과 명칭 유래
툴루스 호스틸리우스 왕 치세에 알바롱가의 주민들이 강제 이주하여 정착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에트루리아 영웅 카일리우스 비벤나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는 설과, 참나무가 많아 '퀘르퀘툴라누스 언덕'으로 불렸다는 설이 있습니다.
부유층의 주거 지역
로마의 부유층들이 거주하는 고급 주거 지역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 시기 지어진 무덤 유적도 발견됩니다.
주요 시설 건립과 발전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로마 14개 구역 중 하나인 '카일리몬티움(Regio II Caelimontium)'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신격화된 클라우디우스 황제를 위한 거대한 신전이 세워졌고, 네로 황제는 이 신전의 동쪽 옹벽에 화려한 님파에움을 추가했습니다. 또한, 상수도 시설인 아르쿠스 네로니아니(Arcus Neroniani)가 건설되어 물을 공급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군 막사(Castra Peregrina, Castra Nova Equitum Singularium 등)와 귀족들의 저택(Domus)도 다수 들어섰습니다.
민트 노동자 반란
펠리키시무스가 이끈 민트 노동자들의 반란에서 결정적인 전투가 첼리오 언덕에서 벌어졌습니다.
서고트족의 로마 약탈
알라리크가 이끄는 서고트족의 로마 약탈로 인해 첼리오 언덕의 건물들이 큰 피해를 입었고, 이후 점차 쇠퇴하며 농촌화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기독교 중심지로의 변화
라테라노 대성당과의 근접성으로 인해 중요한 종교 중심지로 부상했습니다. 산티 조반니 에 파올로 성당, 산토 스테파노 로톤도 성당, 산타 마리아 인 도미니카 성당 등 수많은 교회와 수도원, 자선 시설(xenodochia)이 세워졌습니다.
노르만족의 약탈
로베르 기스카르가 이끄는 노르만족에 의해 또다시 파괴를 겪었습니다.
역사 지구 및 공공 시설
현재 첼리오 언덕은 로마의 리오네 첼리오에 포함되어 있으며, 역사 유적과 함께 빌라 첼리몬타나 공원, 첼리오 군 병원(Policlinico Militare del Celio)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담
첼리오 언덕의 원래 이름은 참나무가 풍부하여 '퀘르퀘툴라누스 몬스(Querquetulanus mons)'였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에트루리아의 민간 영웅인 카일리우스 비벤나(Caelius Vibenna)가 이곳에 정착했거나, 혹은 그의 친구 세르비우스 툴리우스가 그를 기리기 위해 언덕 이름을 붙였다는 설도 전해집니다.
로마 제국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서기 121년에 첼리오 언덕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이 제롬의 기록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19세기 로마의 행정구역인 리오네(Rione) XIX 첼리오의 상징은 코끼리 머리 장식을 한 아프리카인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과거 이곳에 주둔했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와 그의 아프리카 군단병들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는 1912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첼리오 언덕에 있는 영국 청십자 수녀회의 한 방에서 거주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