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고대 로마의 군사적 승리와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정교한 부조 장식을 직접 감상하고 싶은 역사 애호가나 고대 건축물에 관심 있는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다.
개선문의 세부적인 조각들을 통해 파르티아 전쟁의 장면들을 살펴볼 수 있으며, 포로 로마노의 다른 유적들과 함께 고대 로마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카라칼라 황제가 동생 게타의 흔적을 지운 '기록말살형'의 증거를 찾아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접근 방법
🚇 지하철 이용
- 로마 지하철 B선 콜로세오(Colosseo)역에서 하차 후, 포로 로마노 입구를 통해 도보로 약 5~10분 이동하면 개선문에 도착할 수 있다.
콜로세오역은 테르미니 중앙역에서 EUR 방면으로 2정거장 거리에 위치한다.
🚌 버스 이용
- 비아 데이 포리 임페리알리(Via dei Fori Imperiali)를 경유하는 다수의 시내버스 노선(예: 75번, 85번)을 이용하여 포로 로마노 인근에서 하차 후 도보로 접근 가능하다.
버스 노선 및 운행 정보는 현지 교통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
🚶 도보
- 콜로세움, 팔라티노 언덕, 캄피돌리오 광장 등 주변 주요 관광지에서 도보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주요 특징
개선문 표면에 정교하게 조각된 파르티아 원정 승리 장면 부조들을 통해 당시 로마 군대의 모습, 전투 장면, 황제의 업적 등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네 개의 주요 패널에는 전쟁의 주요 순간들이 이야기처럼 묘사되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아들 카라칼라가 동생 게타를 암살한 후, 개선문의 비문과 부조에서 게타의 이름과 형상을 지워버린 역사적 흔적을 직접 찾아볼 수 있다. 이는 고대 로마의 치열했던 정치적 암투와 권력 다툼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다.
세 개의 아치 통로와 화려한 코린트 양식 기둥, 풍부한 장식 등 전형적인 로마 개선문의 웅장하고 정교한 건축 양식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중앙 아치의 격자형 천장(coffered vault) 장식과 아치 사이 스팬드럴(spandrels)에 새겨진 날개 달린 빅토리아 여신상 조각이 주목할 만하다.
추천 포토 스팟
개선문 정면 (포로 로마노 내부)
개선문의 웅장한 전체 모습과 정교한 부조를 함께 담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구도이다. 특히 중앙 아치를 통해 보이는 포로 로마노의 다른 유적들이 사진에 깊이감을 더해준다.
캄피돌리오 언덕 방면 조망 지점
캄피돌리오 광장으로 올라가는 길이나 광장 근처 특정 지점에서 포로 로마노를 내려다보며 개선문을 촬영할 수 있다. 개선문과 포로 로마노의 전체적인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인기 있는 시점이다.
개선문 아치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구도
개선문의 세 아치 중 하나 아래에서 위를 향해 촬영하면 아치의 웅장함과 정교한 천장 장식을 강조할 수 있다. 빛이 들어오는 방향과 시간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의 극적인 효과를 연출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포로 로마노 통합 입장권을 구매하면 콜로세움, 팔라티노 언덕과 함께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을 포함한 포로 로마노 전체를 관람할 수 있으며, 티켓은 첫 사용 후 24시간 동안 유효하다.
포로 로마노 입구에서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하거나, 관련 스마트폰 앱을 이용하면 개선문의 부조와 역사적 배경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관람할 수 있다.
캄피돌리오 광장(Piazza del Campidoglio) 방면의 특정 조망 지점에서는 포로 로마노에 입장하지 않고도 개선문의 모습을 비교적 가까이서 조망할 수 있다.
개선문의 부조는 파르티아 전쟁의 주요 장면들을 시간 순서대로 묘사하고 있으므로, 방문 전 관련 역사적 배경을 간략히 숙지하면 부조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개선문 주변은 다른 유적들과 마찬가지로 그늘이 부족하므로, 특히 여름철에는 모자, 선크림, 물 등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첫 번째 파르티아 원정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가 로마 제국 동부 국경 안정을 위해 첫 번째 파르티아 원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두 번째 파르티아 원정
두 번째 파르티아 원정에서 다시 한번 승리를 거두며 파르티아의 수도 크테시폰을 함락시키고 메소포타미아 북부를 로마 영토로 편입했다.
개선문 건립 및 봉헌
로마 원로원과 시민들이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와 그의 두 아들 카라칼라, 게타의 파르티아 전쟁 승리를 기념하여 포로 로마노 북서쪽 끝에 흰색 대리석으로 개선문을 건립하고 봉헌했다.
게타의 기록말살형 (Damnatio Memoriae)
공동 황제였던 카라칼라가 동생 게타를 암살한 후, 그의 모든 공적 기록과 기념물에서 게타의 이름과 형상을 삭제하도록 명령했다. 이로 인해 개선문의 비문과 부조에서도 게타의 흔적이 지워졌다.
포로 로마노 지반 상승
주변 언덕의 침식과 퇴적물로 인해 포로 로마노의 전체적인 지반 수준이 상승하면서 개선문의 하단부가 점차 땅에 묻히기 시작했다.
교회 부속 건물화 및 요새화
개선문은 인근의 산티 세르지오 에 바코(Ss. Sergio and Bacco) 교회의 일부로 편입되었고, 한때는 치미니(Cimini) 가문에 의해 상부에 탑이 세워지는 등 요새의 일부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오히려 파괴를 면하고 비교적 잘 보존될 수 있었다.
카날레토의 그림 속 모습
화가 카날레토가 그린 당시 포로 로마노의 풍경화에는 개선문의 상반부만이 땅 위로 드러나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당시까지도 상당 부분이 흙에 묻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발굴 및 복원 시작
교황 비오 7세의 주도로 본격적인 발굴 작업이 시작되어 개선문 주변이 정리되었으며, 이후 지속적인 고고학적 연구와 함께 보존 및 복원 작업이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여담
개선문 상단에는 원래 황제와 두 아들이 네 마리 말(혹은 여섯 마리 말이라는 설도 있음)이 끄는 청동 전차(콰드리가)를 타고 있는 모습의 조각상이 있었으나, 현재는 소실되어 그 모습을 볼 수 없다고 전해진다.
개선문의 건축에는 여러 공방과 다양한 기술을 가진 조각가들이 참여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로 인해 각 부조나 장식에서 미세한 양식적 차이가 발견되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당시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가 신속하게 진행되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는 그의 고향인 오늘날 리비아의 렙티스 마그나에도 같은 해(203년)에 유사한 개선문을 건설했으며, 시리아 팔미라에 있는 고대 기념 아치 역시 때때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으로 불리기도 한다.
개선문의 주 재료인 프로콘네소스 대리석은 기둥에, 펜텔릭 대리석은 석조 부분에, 루나 대리석은 주요 부조 기둥에 사용되는 등 다양한 종류의 대리석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중세 시대 동안 개선문이 산티 세르지오 에 바코(Ss. Sergio and Bacco) 교회 건물에 통합되고, 심지어 개선문 위에 종탑이 세워지기도 하는 등 요새의 일부로 사용되면서 오히려 파괴를 면하고 비교적 잘 보존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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