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미켈란젤로의 걸작 '모세상'과 성 베드로가 투옥되었을 때 사용된 '쇠사슬' 유물을 직접 보기 위해 예술 애호가,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 그리고 종교적 의미를 찾는 순례객들이 주로 찾는다.
방문객들은 성당 내부에서 르네상스 및 바로크 시대의 다른 예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으며, 특히 1유로 동전을 넣으면 쇠사슬이 보관된 성유물함의 문이 열리고 닫히며 오르골 음악이 연주되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접근 방법
🚇 지하철
- B선 카보우르(Cavour) 역에서 하차 후 Vincoli 방향 출구로 나와 도보 약 5~10분 소요된다.
- 콜로세오(Colosseo) 역에서도 도보로 접근 가능하며, 약 10분 정도 소요된다.
카보우르 역에서 성당까지 가는 길에 계단이 있을 수 있다.
🚶 도보
- 콜로세움, 포로 로마노 등 주요 유적지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여 함께 둘러보기 좋다.
- 오피오 언덕(Oppian Hill)에 위치하고 있어 약간의 오르막길이나 계단을 이용해야 할 수 있다.
골목길이나 계단을 통해 접근하므로, 사전에 지도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무덤 일부로 제작된 미켈란젤로의 대표적인 조각 작품이다. 십계명을 들고 있는 모세의 강렬한 모습과 섬세한 표현이 압권이며, 머리의 뿔은 히브리어 오역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유명하다.
운영시간: 성당 개방 시간 내 관람 가능
성 베드로가 예루살렘과 로마의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사용되었다고 전해지는 두 개의 쇠사슬이 합쳐진 유물이다. 성당의 이름 '빈콜리(Vincoli)'가 '쇠사슬'을 의미할 만큼 중요한 성유물로 중앙 제단 아래 보관되어 있다.
운영시간: 성당 개방 시간 내 관람 가능
18세기 초 조반니 바티스타 파로디(Giovanni Battista Parodi)가 그린 천장 프레스코화로, '쇠사슬의 기적'을 묘사하고 있다. 화려하고 역동적인 바로크 양식의 그림이 성당 내부를 더욱 웅장하게 만든다.
운영시간: 성당 개방 시간 내 관람 가능
추천 포토 스팟
미켈란젤로의 모세상 정면
모세상의 강렬한 표정과 역동적인 자세를 담을 수 있는 지점이다. 조각의 세부적인 표현과 전체적인 위용을 함께 촬영하기 좋다.
성 베드로의 쇠사슬 성유물함 앞
중앙 제단 아래에 위치한 쇠사슬 성유물함과 그 주변의 경건한 분위기를 사진에 담을 수 있다. 1유로를 넣어 조명이 켜졌을 때 촬영하면 더욱 특별하다.
성당 내부 전경 (중앙 통로에서 제단 방향)
고풍스러운 기둥과 아치, 화려한 천장 프레스코화를 포함한 성당 내부의 전체적인 아름다움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구도이다.
축제 및 이벤트
성 베드로 사도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관련 행사
매년 6월 29일 전후
로마의 수호성인인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를 기리는 대축일로, 이 성당에서도 관련 미사나 특별 전례가 있을 수 있다. 성 베드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성당이므로 의미가 깊다.
성 베드로 사도의 증언과 쇠사슬 기적 기념일
매년 8월 1일
성 베드로의 쇠사슬이 기적적으로 합쳐진 날을 기념하는 날로, 관련 미사나 행사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이날은 2세기 7명의 마카베오 형제 순교자들을 기리는 날이기도 하며, 1876년 이 성당에서 그들의 무덤이 발견되었다고 전해진다.
방문 팁
성 베드로의 쇠사슬을 더 자세히 보고 특별한 경험을 하려면, 성유물함 근처 기계에 1유로 동전을 넣으면 조명이 켜지고 문이 움직이며 오르골 음악이 나온다.
성당은 점심시간(대략 12:30~15:00 또는 15:30)에는 문을 닫으므로, 방문 전 운영 시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이 좋다.
콜로세움이나 포로 로마노에서 도보로 이동 가능하지만, 골목길이나 계단을 이용해야 하므로 지도를 미리 확인하고 찾아가는 것이 수월하다.
다른 유명 관광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붐비는 편이어서, 미켈란젤로의 모세상과 같은 걸작을 비교적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
성당 입장료는 무료이다.
역사적 배경
성당 창건 및 초기 건설
리키니아 에우독시아 황후(발렌티니아누스 3세 황제의 아내)가 어머니 아일리아 에우도키아로부터 선물 받은 성 베드로의 쇠사슬을 보관하기 위해 기존 건물의 기초 위에 성당을 재건하도록 교황 레오 1세에게 요청했다. '에우독시아나 성당(Basilica Eudoxiana)'으로도 불렸다.
성당 봉헌
교황 식스투스 3세에 의해 성당이 봉헌되었다.
교황 아드리아노 1세의 복원
교황 아드리아노 1세에 의해 성당이 복원되었다.
추가 개보수
11세기에 추가적인 개보수 작업이 이루어졌다.
델라 로베레 추기경의 대대적인 재건축
훗날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되는 줄리아노 델라 로베레 추기경(교황 식스투스 4세의 조카)에 의해 대대적인 재건축이 이루어졌다. 현재의 파사드와 주랑 현관(1475년, 바치오 폰텔리 설계 추정), 클로이스터(1493-1503년, 줄리아노 다 상갈로 설계 추정) 등이 이때 추가되었다.
미켈란젤로의 모세상 완성
미켈란젤로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무덤을 위해 제작한 모세상이 이 시기에 완성되어 성당에 설치되었다.
프란체스코 폰타나의 개조
건축가 프란체스코 폰타나에 의해 천장이 낮춰지는 등 일부 개조가 이루어졌다. 중앙 네이브의 격자형 천장과 조반니 바티스타 파로디의 프레스코화 '쇠사슬의 기적'(1706년)이 이때 추가되었다.
추가 보수
19세기에 또 다른 보수 작업이 진행되었다.
여담
미켈란젤로의 모세상 머리에 있는 뿔은, 구약성서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내려올 때 그의 얼굴에 '광채(cornatum)'가 났다는 히브리어 구절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철자가 비슷한 '뿔(cornutus)'로 오역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중세 및 르네상스 시기 일부 모세상에는 뿔이 묘사되기도 했다.
성당에 보관된 성 베드로의 쇠사슬은 두 개였다고 전해진다. 하나는 예루살렘 감옥에서, 다른 하나는 로마의 마메르티노 감옥에서 성 베드로를 묶었던 것인데, 교황 레오 1세가 이 두 쇠사슬을 비교하기 위해 나란히 놓자 기적적으로 하나로 합쳐졌다는 전설이 있다.
이 성당은 창건 당시 발렌티니아누스 3세 황제의 황후 에우독시아의 요청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에우독시아나 성당(Basilica Eudossiana)'이라고도 불렸다.
미켈란젤로는 모세상을 완성한 후 그 생동감에 스스로 감탄하여 조각상의 무릎을 망치로 치며 "왜 말을 하지 않느냐!(Perché non parli!)"라고 외쳤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래서 모세상의 오른쪽 무릎에 작은 자국이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성당과 인접한 건물은 로마 라 사피엔차 대학교(La Sapienza University)의 공학부 건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 대학 건물 역시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성당 내부 왼쪽 첫 번째 경당의 제단화는 크리스토포로 론칼리의 '십자가에서 내리심'이며, 구에르치노의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성녀 마르가리타' 그림도 볼 수 있다. 또한 도메니키노가 설계한 지롤라모 아구키 추기경의 기념비와 그가 그린 성구 보관실 프레스코 '성 베드로의 해방'(1604년)도 중요한 작품이다.
1876년 고고학자들은 성당에서 한때 마카베오 일곱 순교자들의 무덤으로 여겨졌던 무덤들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들은 매년 8월 1일, 쇠사슬 융합 기적 기념일과 같은 날에 기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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