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대의 건축물과 예술 양식을 한 곳에서 탐험하며 시간 여행을 경험하고 싶은 역사 애호가 및 고고학에 관심 있는 탐방객들이 주로 찾는다.
12세기 바실리카의 화려한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를 감상할 수 있으며, 지하로 내려가 4세기 초기 기독교 바실리카의 유적과 1세기 로마 시대의 미트라 신전 및 주거지를 직접 둘러볼 수 있다.
일부 방문객은 지하 유적 관람 시 안내 표지판이 부족하거나 이탈리아어로만 되어 있어 충분한 이해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언급이 있으며, 지하 공간은 조명이 어둡고 계단이 많아 거동이 불편한 경우 관람이 제한적일 수 있다. 또한, 지하에서는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된다.
접근 방법
🚇 지하철 이용 시
- B선 '콜로세오(Colosseo)'역 하차 후 도보 약 5-10분
- B선 '카보우르(Cavour)'역 하차 후 도보 약 10-15분
- A선 '산 조반니(San Giovanni)'역 하차 후 도보 약 15-20분 또는 버스 환승
콜로세움에서 도보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다.
🚌 버스 이용 시
- Via Labicana 또는 Via di San Giovanni in Laterano 인근 버스 정류장 이용
주변에 다수의 버스 노선이 운행된다.
주요 특징
현재 지상에 있는 바실리카로, **아름다운 앱스 모자이크 '생명의 나무로서의 십자가'**와 정교한 코스마테스크 양식 바닥, 화려한 프레스코화, 금박 천장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중세 기독교 예술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운영시간: 바실리카 운영 시간과 동일
현재 바실리카 아래에 위치한 초기 기독교 교회 유적으로, 8세기에서 11세기에 제작된 중요한 중세 프레스코화들을 볼 수 있다. 성 클레멘트와 성 알렉시우스의 생애를 다룬 벽화 등이 있으며, 고대 교회의 구조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운영시간: 고고학 유적지 운영 시간과 동일
가장 깊은 층에 위치한 고대 로마 시대의 유적으로, 로마 귀족의 저택, 고대 로마의 거리, 그리고 **미트라 신을 숭배하던 신비로운 지하 신전(미트레움)**이 발견되었다. 제단과 미트라 상 등을 볼 수 있으며, 지금도 흐르는 지하수를 통해 고대 로마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운영시간: 고고학 유적지 운영 시간과 동일
방문 팁
입장권은 온라인으로 예매하면 €2 할인된 가격(또는 현장 구매 시 추가 요금 발생 가능성)으로 구매할 수 있다.
지하 유적 구역에서는 사진 및 비디오 촬영이 엄격히 금지된다.
지하 공간은 조명이 다소 어둡고 계단이 있으므로 이동 시 주의가 필요하다.
지하 유적의 역사적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가이드 투어를 고려하거나 방문 전 관련 정보를 충분히 숙지하는 것이 좋다.
다른 주요 로마 유적지에 비해 비교적 덜 붐비는 편이어서 여유로운 관람이 가능하다.
기념품점에서 12마리 비둘기가 새겨진 산 클레멘테 성당만의 특별한 십자가를 구매할 수 있다.
만 16세 미만 어린이(보호자 동반)와 장애인 방문객(보조자 필요시)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입구에서 QR 코드를 스캔하여 현장에서도 티켓 구매가 가능하다(정가 적용 가능성 있음).
역사적 배경
로마 시대 건물 건설
현재 바실리카 가장 낮은 층에는 공화정 시대의 빌라와 창고 위에 로마 귀족의 저택(도무스)이 건설되었다. 이 저택의 일부와 인근 건물(인술라)에서 2세기경 미트라 신전이 조성되었다. 한때 로마 제국의 조폐국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초기 기독교 바실리카 건설
로마 귀족의 저택을 개조하여 성 클레멘스 교황에게 헌정된 초기 기독교 바실리카가 세워졌다. 392년 성 예로니모의 기록을 통해 이 교회의 존재가 확인된다. 9세기와 11세기에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으며, 중요한 프레스코화가 제작되었다.
노르만족의 로마 약탈 (논란)
로베르 기스카르가 이끄는 노르만족의 로마 약탈 시 화재로 소실되었다는 가설이 있었으나, 현재는 화재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하부 구조물을 메우고 새 바실리카를 지은 이유에 대해 다른 설명(대립 교황 클레멘스 3세와의 연관성 등)이 제시된다.
현재 바실리카 건설
아나스타시우스 추기경의 주도로 4세기 바실리카 위에 현재의 바실리카가 건설되었다. 아름다운 앱스 모자이크, 코스마테스크 바닥 장식 등이 특징이다.
아일랜드 도미니코 수도회 관리 시작
교황 우르바노 8세에 의해 아일랜드 도미니코 수도회가 이곳에 정착하여 현재까지 관리하고 있다.
지하 유적 발굴
당시 수도원장이었던 조셉 물룰리에 의해 지하의 4세기 바실리카와 1세기 로마 유적이 발굴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바로크 양식 추가 및 복원
교황 클레멘스 11세 재임 기간(1700-1721) 동안 카를로 스테파노 폰타나에 의해 새로운 파사드가 세워졌으며, 내부에는 금박 천장, 스투코 장식 등이 추가되었다.
여담
지하 4세기 바실리카의 '시신니우스의 기적' 프레스코화에는 라틴어와 함께 초기 이탈리아 민중어가 기록되어 있어 언어학적으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가장 낮은 층의 고대 로마 유적에서는 지금도 지하수가 흐르고 있으며, 이 물이 과거 콜로세움의 모의 해전에 사용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일랜드 도미니코 수도회가 1667년부터 이 성당을 관리해오고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아일랜드의 외교적 보호 아래 유대교 예배가 이곳에서 열리기도 했다.
현재 바실리카 후진의 '생명의 나무로서의 십자가' 모자이크는 12세기 로마 모자이크 예술의 걸작으로 꼽힌다.
지하 1세기 건물 중 일부는 로마 제국의 공식 조폐 시설이었을 가능성이 고고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
1867년에 미트라 신전이 처음 발견되었으나, 배수 문제로 인해 1914년까지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한다.
성당 입구 안뜰 벽에는 1715년 교황 클레멘스 11세가 "이 고대 교회는 세월의 파괴에도 굴하지 않고 고대 도시 바실리카의 형태를 거의 유일하게 보존하고 있다"고 칭송한 명판이 붙어있다.
슬라브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고 글лагол 문자를 만든 성 키릴로스의 무덤이 이곳에 있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종종 이곳에서 폴란드를 비롯한 슬라브 국가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알려져 있다.
대중매체에서
When in Rome (로마에서는)
나이오 마쉬의 소설에 등장하는 '팔라리아의 성 토마소 성당(Church of S. Tommaso in Pallaria)'이 산 클레멘테 성당을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The Sword of Moses (모세의 검)
도미닉 셀우드의 크립토 스릴러 소설로, 산 클레멘테 성당의 세 개 층 모두를 배경으로 하는 여러 장면이 등장한다.
Call Me By Your Name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소설 속 3부의 제목이기도 한 가상의 시 '산 클레멘테 신드롬(San Clemente Syndrome)'은 주인공 엘리오가 로마의 서점에서 만난 시인이 이 성당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