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초기 기독교 예술과 지하 무덤 건축에 깊은 관심을 가진 역사 애호가나 종교 순례자들이 주로 찾는다.
가이드 투어를 통해 2세기부터 4세기에 이르는 지하 터널을 탐험하며, 가장 오래된 성모 마리아 그림을 포함한 초기 기독교 프레스코화와 당시 매장 문화를 직접 관찰할 수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투어 시간이 다소 짧게 느껴지거나 내부 사진 촬영이 금지된 점에 아쉬움을 표하며, 간혹 가이드의 설명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다.
접근 방법
🚌 버스 이용
- Via Salaria에 정차하는 버스 노선(예: 92번)을 이용하여 카타콤 입구 근처에서 하차 후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
버스 정류장에서 카타콤까지 도보로 약 5~15분 정도 소요될 수 있다.
🚇 지하철 이용
- 로마 지하철 B1선 Sant'Agnese/Annibaliano 역에서 하차 후, 도보(약 15-20분 소요) 또는 버스로 환승하여 접근할 수 있다.
🚕 택시 이용
- 로마 시내 주요 지점에서 택시를 이용하여 비교적 편리하게 도착할 수 있으나, 교통 상황에 따라 요금이 변동될 수 있다.
주요 특징
가장 오래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그림(2-3세기 추정), 다니엘서의 수산나 이야기, 불타는 용광로 속 세 청년 이야기 등 초기 기독교의 중요한 장면들을 묘사한 프레스코화를 직접 볼 수 있다. 이 그림들은 초기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예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운영시간: 가이드 투어 시간 내
과거 로마 시대 채석장이었던 곳을 활용해 조성된 13km 길이의 지하 터널 중 일부를 가이드와 함께 탐험하며, 초기 기독교인들의 다양한 매장 형태(로쿨리, 아르코솔리움, 쿠비쿨룸)를 관찰할 수 있다. 좁고 어두운 통로를 따라 걷는 경험은 독특하다.
운영시간: 가이드 투어 시간 내
3세기 프레스코화로 유명하며 '빵의 기적(Fractio Panis)' 장면이 그려진 '그리스 예배당'과 한 여성의 생애 세 단계를 묘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벨라타의 방(Cubiculum of the Velata)' 등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공간들을 둘러볼 수 있다.
운영시간: 가이드 투어 시간 내
방문 팁
방문 전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영어 등 원하는 언어의 가이드 투어 시간을 미리 확인하고 예약하는 것이 좋다. 특히 성수기에는 원하는 시간대 투어가 조기 마감될 수 있다.
카타콤 내부는 지면이 고르지 않은 흙길이고 계단이 있으며, 조명이 어두운 구간이 있으므로 편안하고 안정적인 신발 착용이 필수적이다.
지하 공간은 연중 서늘한 온도를 유지하므로, 특히 여름철 방문 시 가벼운 겉옷을 준비하면 도움이 될 수 있다.
카타콤 내부에서의 사진 및 비디오 촬영은 금지되어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기념품점에서 관련 엽서나 책자를 구매할 수 있다.
학생의 경우 국제학생증 등 증빙서류를 제시하면 입장료 할인을 받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카타콤 입구에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으나, 투어 중에는 이용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미리 다녀오는 것이 좋다.
폐소공포증이 심한 경우 좁고 어두운 지하 통로가 불편할 수 있으나, 대부분의 방문객은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평이 있다.
역사적 배경
조성 시작
로마의 귀족 여성이었던 프리실라가 자신의 땅을 기증하여 기독교인들의 매장지로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초기에는 로마 시대 채석장이었던 공간을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독교인 매장지로 활발히 사용
수천 명의 초기 기독교인들이 이곳에 묻혔으며, 이 중에는 교황 마르첼리노와 마르첼루스 1세를 비롯한 여러 교황과 순교자들도 포함되어 '카타콤의 여왕(Regina Catacumbarum)'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밀라노 칙령 이후
기독교 공인 이후에도 한동안 순교자들에 대한 존경심으로 매장이 이어졌으나, 점차 지상 교회 묘지로 매장 관습이 옮겨갔다.
유해 이전 및 망각
이민족의 침입과 약탈을 피해 주요 성인들의 유해가 로마 시내 교회들로 옮겨졌고, 카타콤은 점차 잊혀졌다.
재발견
우연한 계기로 안토니오 보시오(Antonio Bosio)에 의해 재발견되어 학문적 연구가 시작되었다.
고고학적 연구 및 복원
조반니 바티스타 데 로시(Giovanni Battista de Rossi)와 같은 고고학자들에 의해 체계적인 발굴과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오늘날 중요한 초기 기독교 유적지로 관리되고 있다.
여담
프리실라 카타콤의 이름은 기원후 1세기경 로마의 유력 가문이었던 아실리 글라브리오니(Acilii Glabriones) 가문의 여성, 프리실라로부터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그녀가 기독교로 개종한 후 자신의 땅을 기독교 공동체에 묘지로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프레스코화 중에는 가장 오래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작품(2-3세기)이 포함되어 있어 미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과거에는 수많은 순교자와 교황이 묻혀 '카타콤의 여왕'으로 불렸으나, 현재는 도굴과 성유물 이전 등으로 인해 대부분의 유골은 남아있지 않다.
1802년 이곳에서 성 필로메나(Saint Philomena)의 유해가 발견되었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이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현재 유해는 다른 곳에 안치되어 있다.
카타콤 내부에서 발견된 비문 중에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여성들, 특히 '교회의 과부(χήρα)'라 불린 이들의 기록이 남아 있어 당시 여성의 지위를 연구하는 데 단서를 제공한다.
프리실라 카타콤이 위치한 비아 살라리아(Via Salaria)는 고대 로마 시대에 '소금길'로 불리며 중요한 교역로 역할을 했다.
카타콤 내부에서 발견된 칼세도니 장식품 등은 당시 로마와 동방(쿠샨 제국 등) 간의 교역을 시사하는 유물로 여겨지며, 부적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중매체에서
천사와 악마 (Angels & Demons)
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에서 프리실라 카타콤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소설의 배경이 되는 로마의 초기 기독교 유적 및 지하 공간과 관련된 분위기를 연상시킬 수 있다. 한 블로그에서는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을 언급하며 이 성당이 '천사와 악마'에서 살인 사건 장소로 묘사되었다고 하는데, 프리실라 카타콤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은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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