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웅장한 바로크 및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물과 내부의 종교 예술을 감상하거나, 가톨릭 교회의 역사적 의미와 교황좌의 중요성을 직접 확인하고자 하는 예술 애호가, 역사학도 및 가톨릭 신자들이 주로 방문한다. 특히 2025년과 같은 희년 기간에는 대성당의 성문(Holy Door)을 통과하며 특별한 은총을 구하려는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방문객들은 거대한 12사도 대리석 조각상과 화려한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내부를 둘러볼 수 있으며, 교황만이 미사를 집전할 수 있는 제대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의 두개골 일부가 안치된 것으로 전해지는 발다키노를 직접 관람할 수 있다. 또한, 별도의 입장료를 지불하면 아름다운 코스마테스크 양식의 중세 회랑과 고대 세례당도 함께 경험할 수 있다.
일부 방문객은 대성당 외부 광장 주변의 정비가 다소 미흡하다고 느끼거나, 회랑 내 유물 전시에 대한 안내가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접근 방법
🚇 지하철
- A선 산 조반니(San Giovanni) 역에서 하차 후 도보로 약 5-10분 소요된다.
🚌 버스
- 피아차 베네치아(Piazza Venezia) 또는 콜로세움 근처에서 다수의 버스 노선(예: 51, 81, 85, 87번 등)을 이용하여 성당 근처 정류장에서 하차할 수 있다.
노선 및 시간표는 현지에서 확인하는 것이 좋다.
🚊 트램
- 3번, 8번 트램 등 일부 노선이 성당 인근을 지나며, 포르타 마조레(Porta Maggiore)가 주요 트램 환승 지점이다.
주요 특징
프란체스코 보로미니가 설계한 벽감에 자리한 12사도의 거대한 대리석 조각상들은 후기 바로크 양식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화려한 금박 천장, 정교한 프레스코화, 코스마테스크 양식 바닥 등 성당 내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으로, 세부적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운영시간: 대성당 운영 시간 내
교황만이 미사를 집전할 수 있는 교황 제대와 그 위를 덮는 14세기 고딕 양식의 발다키노는 성당의 중심이다. 발다키노 상단 은제 흉상 안에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두개골 일부가 성유물로 모셔져 있다고 전해지며, 제대 아래에는 초대 교황이 사용했던 나무 제단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운영시간: 대성당 운영 시간 내
대성당에 부속된 13세기 코스마테스크 양식의 회랑은 다채로운 모자이크 기둥과 조용한 정원이 어우러져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고고학적 유물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인근의 4세기에 지어진 팔각형 모양의 라테라노 세례당 역시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세례당 중 하나로 독특한 건축미를 자랑한다.
운영시간: 회랑: 보통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30분 또는 5시까지 (변동 가능)
추천 포토 스팟
대성당 정면 파사드와 광장
알레산드로 갈릴레이가 설계한 18세기 바로크-신고전주의 양식의 웅장한 정면 전체와 그 위의 거대한 그리스도 및 성인 조각상들, 그리고 광장의 오벨리스크를 함께 담을 수 있다.
신랑 내부와 12사도 조각상
성당 내부 신랑 양쪽에 도열한 거대한 12사도 대리석 조각상들은 각각의 역동적인 모습과 함께 신랑 전체의 웅장함을 담기에 좋은 피사체이다. 특히 광각 렌즈를 활용하면 그 규모를 더욱 잘 표현할 수 있다.
라테라노 회랑 (유료)
정교한 코스마테스크 양식의 모자이크 기둥과 아치, 그리고 중앙 정원의 평화로운 풍경은 독특하고 아름다운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공간이다. 다양한 각도에서 기둥의 디테일과 정원의 모습을 촬영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매년 11월 9일
전 세계 가톨릭 교회에서 기념하는 축일로, 이 날 대성당에서는 특별 미사나 장엄한 전례가 거행될 수 있다. 로마 교구의 주교좌 성당으로서 그 의미가 깊다.
희년 (Jubilee Year) 성문 개방
교황이 선포하는 특정 주기에 따라 (예: 2025년)
가톨릭 교회에서 정한 희년 기간 동안 대성당의 성문(Holy Door, Porta Santa)이 특별히 개방된다. 전 세계 순례자들이 이 문을 통과하며 죄의 사함과 영적 혜택을 구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방문 팁
성 베드로 대성당에 비해 방문객이 적어 비교적 평화롭고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오전 8시 30분경 이른 시간에 방문하면 대기 줄 없이 입장할 가능성이 높으며, 회랑(클로이스터)은 보통 오전 9시에 개방된다.
대성당 입장은 무료이지만, 아름다운 중세 회랑은 약 4유로의 입장료가 있다. 회랑 내부에 비교적 깨끗한 화장실과 저렴한 자판기가 있다는 정보가 있다.
성당 방문 시 어깨와 무릎을 가리는 등 복장 규정을 준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부 방문객은 복장 규제가 엄격하지 않았다고 언급하나, 다른 방문객은 제지당한 경험이 있으므로 주의하는 것이 좋다.
성목요일 저녁에는 특별한 성찬 전례가 있으며, 이 시기에는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기도와 묵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대중교통(지하철 A선 산 조반니 역, 다수 버스 및 트램 노선)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성당 정문이 공사 중이거나 찾기 어려울 경우, 광장 오벨리스크가 있는 쪽의 측면 입구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정보가 있다.
대성당 맞은편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빌라도에게 재판받으러 올라갔다고 전해지는 '거룩한 계단(Scala Sancta)'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많은 순례자가 무릎으로 이 계단을 오른다.
역사적 배경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증 및 최초 성당 건립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가 밀비우스 다리 전투 승리 후 라테라누스 가문의 땅을 교황에게 기증하여, 324년 교황 실베스테르 1세가 '구세주 그리스도'께 봉헌하며 로마 최초의 공공 교회가 되었다. 이는 성 베드로 대성당보다 약 10여 년 앞선 것이다.
교황의 주요 거주지 및 교황청 역할
인접한 라테라노 궁전은 아비뇽 유수(1309년) 이전까지 약 천 년간 교황의 주요 거주지였으며, 대성당은 교황청의 중심지이자 로마 교구의 주교좌 성당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 기간 동안 다섯 차례의 라테라노 공의회가 이곳에서 열렸다.
대지진으로 인한 파괴
대지진으로 인해 성당 건물이 제대에서 문까지 붕괴되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이후 복원되었으나 옛 모습을 완전히 되찾기는 어려웠다.
성인 공동 수호자 지정
원래 구세주 그리스도께 봉헌되었던 성당은 10세기에 교황 세르지오 3세가 새로 축성된 세례당을 기념하며 세례자 요한에게, 12세기에 교황 루치오 2세가 복음사가 요한에게 추가로 봉헌하여 두 성인이 공동 수호성인이 되었다. 그러나 주된 봉헌 대상은 여전히 구세주 그리스도이다.
대화재 발생 및 아비뇽 유수 시기 쇠퇴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이전한 시기에 두 차례의 대화재로 성당과 궁전이 크게 훼손되었고, 관리 소홀로 인해 점차 황폐해졌다.
식스토 5세 교황의 대대적인 재건 사업
교황 식스토 5세의 명으로 건축가 도메니코 폰타나가 옛 라테라노 궁전을 철거하고 새로운 모습의 궁전을 건축했으며, 카르나크 신전에서 가져와 대전차 경기장에 있던 고대 이집트 오벨리스크를 현재의 광장 위치로 옮겨 세웠다.
프란체스코 보로미니의 내부 개조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의뢰로 당대 최고의 바로크 건축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가 성당 내부 신랑(네이브)을 대대적으로 개조했다. 이때 12사도상을 안치하기 위한 벽감(니치)이 만들어졌으며, 이는 18세기 초 로마의 저명한 조각가들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알레산드로 갈릴레이의 정면 파사드 완공
교황 클레멘스 12세가 주최한 설계 공모를 통해 건축가 알레산드로 갈릴레이의 신고전주의 양식 안이 최종적으로 선정되어, 현재 우리가 보는 웅장한 대성당 정면이 완성되었다. 이로써 고대 바실리카 양식의 외관은 사라지게 되었다.
라테라노 조약 체결
이탈리아 왕국과 교황청 간에 체결된 라테라노 조약에 따라,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과 부속 건물들은 바티칸 시국의 영토는 아니지만 교황청의 완전한 소유로 인정받고 이탈리아로부터 치외법권을 보장받게 되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로마 역사 지구 - 바티칸 시국의 유산들과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의 일부로서 그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여담
대성당 정면에는 '도시(로마)와 세상의 모든 성당들의 어머니이자 머리인 지극히 거룩한 라테라노 성당(SACROS LATERAN ECCLES OMNIVM VRBIS ET ORBIS ECCLESIARVM MATER ET CAPUT)'이라는 라틴어 명문이 새겨져 있어, 전 세계 가톨릭 교회 중 최고 지위를 상징한다.
초기에는 그 화려함으로 인해 '황금 대성당(Basilica Aurea)'이라는 별칭으로 불렸으나, 5세기 반달족의 침입으로 많은 보물을 약탈당했다고 전해진다.
프랑스 대통령은 앙리 4세 이후로 이 대성당의 '제1의 유일한 명예 의전사제(First and Only Honorary Canon)'라는 직함을 갖는 오랜 전통이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현 대통령도 이 직위를 수락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교황 비오 12세 하에서 나치와 이탈리아 파시스트로부터 유대인 및 기타 난민들을 위한 피난처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신학교 부총장 등이 유대인 지원 노력으로 야드 바셈에 의해 인정받기도 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의 두개골 일부가 중앙 제대 위 발다키노에 성유물로 안치되어 있다는 주장이 적어도 9세기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
대성당 부속 회랑에는 과거 교황 대관식 때 사용되었던 '세디아 스테르코라리아(Sedia Stercoraria)'라는 특별한 의자가 보관되어 있는데, 이는 '거름더미에서 가난한 이를 일으키시는도다'라는 시편 구절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한때 대성당 근처 광장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이 있었으나, 중세 시대에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마상으로 오인되어 파괴되지 않고 보존되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미켈란젤로에 의해 캄피돌리오 광장으로 이전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1993년 7월 28일, 마피아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차량 폭탄 테러로 인해 건물의 일부가 손상되었으나 곧 복구되었다. 이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마피아 비판 발언 이후 발생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대성당 정면 중앙의 청동문은 고대 로마 원로원 의사당이었던 쿠리아 율리아의 문을 17세기에 옮겨온 것으로, 기원전 1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어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문 중 하나로 여겨진다.
대중매체에서
바티칸 기적 조사관 (3권)
후지키 린의 소설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미사를 집전하는 장소로 묘사되었다. 소설에서는 성당의 발다키노와 베드로, 바오로 두 사도의 두개골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