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고대 로마의 공공 건축과 법정 역사에 관심 있는 역사 애호가 및 고고학 탐방객들이 주로 방문한다. 포로 로마노의 중심부에 위치했던 이 대형 바실리카의 유적을 통해 당시 로마 제국의 사회 및 정치 활동 공간을 엿볼 수 있다.
방문객들은 현재 남아있는 넓은 기단부와 바닥의 대리석 조각, 복원된 일부 아치와 기둥의 잔해를 통해 건물 본래의 거대한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또한, 포르티코 바닥에 새겨진 고대 로마의 보드게임 판 흔적을 찾아보며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상상하는 체험도 가능하다.
현재는 대부분 기초와 기둥의 일부만 남아 있어, 과거 웅장했던 바실리카의 완전한 모습을 기대하는 방문객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다는 평가가 있다. 다른 포로 로마노 내 유적에 비해 보존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의견도 종종 보인다.
접근 방법
🚇 지하철 이용
- B선 콜로세오(Colosseo) 역에서 하차 후, 포로 로마노 입구까지 도보 약 5~10분 소요.
역에서 포로 로마노 방면 표지판을 따라 이동하면 된다.
🚌 버스 이용
- 포로 로마노 주변(Via dei Fori Imperiali 등)에 다수의 버스 노선이 정차한다.
숙소 위치나 동선에 따라 편리한 버스 노선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 도보
- 콜로세움, 팔라티노 언덕, 캄피돌리오 광장 등 주요 관광 명소에서 도보로 접근 가능하다.
포로 로마노는 매우 넓으므로 편안한 신발 착용이 필수적이다.
주요 특징
과거 법원, 상점, 정부 청사 등으로 사용되었던 바실리카 율리아의 유적을 직접 거닐며 고대 로마의 공공 생활 공간을 체험한다. 남아있는 기단과 바닥, 일부 아치 등을 통해 당시 건물의 웅장한 규모를 상상해 볼 수 있다.
포르티코 바닥 대리석에는 고대 로마인들이 즐겼던 다양한 종류의 보드게임 판으로 추정되는 낙서가 새겨져 있어, 당시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비록 현재는 대부분 소실되었지만, 남아있는 기초 부분과 일부 복원된 아치, 그리고 거대한 기둥의 흔적들은 바실리카 율리아가 한때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크고 화려했던 건물 중 하나였음을 증명한다.
추천 포토 스팟
팔라티노 언덕 또는 캄피돌리오 언덕 전망대
포로 로마노 전체와 함께 바실리카 율리아의 유적을 넓게 조망하며 고대 로마의 웅장함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바실리카 율리아 유적 근접 촬영 지점
남아있는 기둥의 잔해, 복원된 아치 구조물, 바닥의 대리석 등을 배경으로 고대 건축의 디테일과 시간의 흔적을 포착할 수 있다.
바실리카 율리아 내부 기단 위
현재 남아있는 기단 위에 올라서서 주변 포로 로마노 유적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면 독특한 구도를 연출할 수 있다.
방문 팁
바실리카 율리아는 포로 로마노 통합 입장권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콜로세움, 팔라티노 언덕과 함께 하루 코스로 계획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적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방문 전 관련 정보를 찾아보거나,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또는 현지 가이드 투어를 이용하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다.
포르티코 바닥에 새겨진 고대 로마의 다양한 게임판(tabulae lusoriae) 흔적을 찾아보는 것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인근 팔라티노 언덕이나 캄피돌리오 언덕 전망대에서 포로 로마노 전체와 함께 바실리카 율리아의 전경을 감상하면 유적의 규모와 배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역사적 배경
바실리카 셈프로니아 건립
바실리카 율리아가 세워지기 전, 이 자리에는 감찰관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에 의해 바실리카 셈프로니아가 건립되었다.
바실리카 율리아 착공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존의 바실리카 셈프로니아를 철거하고 새로운 대형 바실리카 건설을 시작했다.
최초 봉헌
갈리아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으로 건설 자금을 충당하여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미완성 상태로 봉헌되었다. 이후 아우구스투스가 완공하고 양아버지의 이름을 따 '바실리카 율리아'로 명명했다.
화재 후 재건 및 재봉헌
완공 직후인 기원후 9년경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더 큰 규모로 재건되어 그의 양손자이자 후계자였던 가이우스 카이사르와 루키우스 카이사르에게 봉헌되었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시기 복원
화재로 인한 손상 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에 의해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다.
카리누스 황제 시기 화재 및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재건
카리누스 황제 재위 중 발생한 대화재로 다시 파괴되었으며, 이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재건되었다. 현재 발굴된 유적의 상당 부분은 이 시기의 것이다.
서고트족의 로마 약탈 시 파괴
알라리크 1세가 이끄는 서고트족의 로마 약탈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
마지막 기록된 복원
로마 도시 총독이었던 가비니우스 베티우스 프로비아누스에 의해 마지막으로 복원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쇠락 및 석재 유실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점차 방치되어 폐허로 변했으며,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는 건축 자재를 얻기 위한 채석장으로 활용되어 귀중한 대리석과 장식물 대부분이 유실되었다. 일부는 석회 가마의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다.
본격적인 발굴 시작
고고학자 피에트로 로사(Pietro Rosa)의 주도로 본격적인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으며, 단일 대리석 기둥과 석회화 지지대 등이 재건되었다.
여담
바실리카 율리아라는 이름은 건립을 시작하고 자신의 이름을 붙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에서 유래했다.
건설 비용의 상당 부분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 전쟁에서 승리하며 얻은 막대한 전리품으로 충당되었다고 전해진다.
고대 로마 시대에 이곳은 민사 소송을 다루는 백인법정(Centumviri)의 주요 재판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 사무실, 은행, 상점 등이 들어서 있어 로마 시민들의 중요한 공적, 사적 만남의 장소로 기능했다.
수에토니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칼리굴라 황제는 때때로 바실리카 율리아의 지붕 위에 올라가 아래 포룸 광장에 모인 군중을 향해 동전을 던지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바실리카 중앙 홀의 바닥은 화려한 다색 대리석으로 포장되었으며, 이는 측면 통로의 비교적 단순한 흰색 대리석 바닥과 대조를 이루며 웅장함을 더했다고 알려져 있다.
일부 학자들은 사도 바울이 로마 시민으로서 이곳 바실리카 율리아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사형 선고를 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바실리카 포르티코 바닥에 새겨진 다양한 종류의 고대 로마 보드게임 판(Tabulae Lusoriae) 흔적들은 당시 사람들이 재판을 기다리거나 여가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던 모습을 생생하게 상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