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시즘에 저항했던 이탈리아 파르티잔들의 희생을 기리고 그 역사를 되새기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나, 예술 작품을 통해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여행객들이 주로 방문한다.
이곳에서는 베르가모 출신의 조각가 자코모 만추가 제작한 청동 조형물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애를 느낄 수 있으며, 기념비 한 면에 새겨진 조각가의 시를 통해 작품에 담긴 슬픔과 추모의 감정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기념비에 대한 설명이 대부분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어, 이탈리아어를 모르는 방문객은 작품의 상세한 배경이나 시의 내용을 즉각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 언급된다.
접근 방법
🗺️ 위치
- 이탈리아 베르가모의 치타 바사(Città-bassa, 하부 도시)에 있는 마테오티 광장(Piazza Matteotti) 내에 위치한다.
- 도니체티 극장(Teatro Donizetti) 맞은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비의 북동쪽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베르가모 중심부에 있어 도보나 대중교통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주요 특징
조각가 자코모 만추의 작품으로, 거꾸로 매달려 죽은 젊은 파르티잔과 그를 만지려는 듯 다가서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 전쟁의 비극과 슬픔을 강렬하게 표현한다. 청동 판 위에는 올가미를 연상시키는 밧줄 형상과 나뭇가지 같은 표식이 새겨져 있다.
기념비의 다른 한 면에는 조각가 자코모 만추가 직접 쓴 시가 이탈리아어로 새겨져 있다. "파르티잔이여! 나는 그대가 매달린 것을 보았네. 미동도 없이. 오직 머리카락만이 그대 이마 위에서 가볍게 움직였지. 저녁 공기였네. 침묵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그대를 어루만졌지, 내가 하고 싶었던 것처럼." 이라는 내용으로, 희생자에 대한 깊은 애도를 담고 있다.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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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 정면 전체 모습
두 인물상과 청동 판이 함께 나오도록 촬영하여 기념비의 전체적인 조형미와 메시지를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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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 뒷면의 시
조각가 만추가 직접 쓴 헌시가 새겨진 부분을 촬영하여 작품의 문학적인 측면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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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타 알타를 배경으로 한 기념비
기념비와 함께 멀리 보이는 베르가모의 치타 알타(상부 도시) 풍경을 담아 역사적인 장소의 분위기를 더한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기념비에 새겨진 글과 시는 대부분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으므로, 방문 전 관련 배경 지식이나 번역된 내용을 찾아보면 감상에 도움이 된다.
조각 작품과 함께 뒷면의 시를 함께 감상하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마테오티 광장 주변은 저녁 산책이나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좋은 장소로 언급되므로, 해 질 무렵 방문하여 다른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도 좋다.
역사적 배경
만추의 브레라 아카데미 사임
베르가모 출신의 조각가 자코모 만추는 로마 전시회 출품작에 대한 불만으로 브레라 아카데미 교수직을 사임하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클루소네에 머물렀다.
기념비 제작 의뢰 및 기증
베르가모 시 당국이 자코모 만추에게 파르티잔 기념비 제작을 의뢰했으며, 만추는 이 조각품을 시에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이 작품은 그의 부모님과 모든 저항 영웅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기념비 건립 및 공개
파르티잔 기념비가 베르가모 마테오티 광장에 건립되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여담
조각가 자코모 만추(Giacomo Manzù, 본명 Giacomo Manzoni)는 베르가모 태생으로, 이 기념비는 그의 고향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기념비에 묘사된 거꾸로 매달린 인물의 이미지는 만추가 1964년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 설치한 '죽음의 문'에 있는 성 베드로의 순교 장면(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힘)과 유사하다는 얘기가 있다.
일부에서는 이 이미지가 1945년 4월 28일 밀라노의 피아짤레 로레토에 거꾸로 매달려 전시되었던 베니토 무솔리니와 그의 정부, 측근들의 처참했던 모습을 연상시킨다는 언급도 있다.
기념비 건립 당시, 파시즘의 잔혹함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는 이유로 우익 세력의 비판을 받았으며, 동시에 전통적인 영웅상과 달리 패배하고 고통받는 파르티잔의 모습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일부 좌익 진영에서도 논란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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