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이곳은 제1차 세계대전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희생된 영혼들을 추모하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 및 참배객들이 주로 찾는다. 웅장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의 건축물은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방문객들은 성당 내부 벽면을 가득 채운 수천 명의 전사자 이름을 직접 확인할 수 있으며, 함께 마련된 사진 및 문서 전시를 통해 전쟁의 비극과 그 시대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이탈리아 왕가의 일원이었던 움베르토 왕자의 묘도 이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내부 수리가 진행 중이거나 특정 구역의 접근이 제한되어 관람 경험이 아쉬웠다는 의견을 남기기도 하며, 전시물의 원본 부족에 대한 지적도 간혹 있다.
접근 방법
주요 특징
베네치아 고딕 양식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흔적이 결합된 독특한 건축미를 자랑한다. 높이 60m에 달하는 두 개의 종탑과 직경 약 10m의 거대한 장미창이 특히 인상적이며, 멀리서도 눈에 띄는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운영시간: 개방 시간 내
성당 내부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5,000명 이상의 군인들의 유해가 안치된 군사 성지로 조성되어 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전사자들의 이름과 함께 사보이아-아오스타의 움베르토 왕자의 묘도 이곳에서 찾아볼 수 있어 엄숙함과 경건함을 더한다.
운영시간: 개방 시간 내
성당 내부에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 자료와 문서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를 통해 방문객들은 몬테 그라파 전투 등 이 지역에서 벌어졌던 치열했던 전투와 전쟁의 참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하고 역사의 교훈을 되새길 수 있다.
운영시간: 개방 시간 내
추천 포토 스팟
성당 정면 파사드
두 개의 높은 종탑과 거대한 장미창이 특징인 웅장한 고딕 베네치아 양식의 파사드 전체를 담아보세요.
내부 중앙 제단 및 전사자 명단 벽
엄숙한 분위기의 내부와 끝없이 이어지는 전사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벽은 역사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장면을 연출합니다.
멀리서 바라본 성당 전경
바사노 델 그라파 시내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성당의 모습은 도시의 스카이라인과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자아냅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입장료는 무료로 알려져 있다.
내부는 매우 엄숙한 분위기이므로, 방문 시 정숙을 유지하고 존경심을 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언급이 있다.
개방 시간이 유동적이거나 예고 없이 변경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확인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있다. 특히 특정 공휴일이나 주말에 문을 닫는 경우가 있다는 후기가 있다.
내부 수리가 진행 중일 수 있으며, 이 경우 일부 구역의 관람이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역사적 배경
건축 시작
원래 바사노 델 그라파의 새로운 대성당(Duomo)으로 계획되어 공사가 시작되었다.
공사 중단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 성당 건축 공사가 중단되었다.
군사 성지 전환 합의
교구와 국방부 간의 합의를 통해 미완성 상태였던 건물을 제1차 세계대전 전사자들을 위한 군사 성지(Sacrario Militare)로 사용하기로 결정되었다. 인근 여러 묘지에서 전사자들의 유해를 옮겨와 한곳에 안치하기로 하였다.
완공 및 개관
건축가 피에트로 델 파브로(Pietro Del Fabbro)에 의해 완공되어 기념 교회이자 군사 성지로 공식 개관하였다.
추모 공간 및 역사 교육의 장
매년 약 8,000명의 방문객이 찾는 추모 공간이자 제1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되새기는 장소로 기능하고 있으며, 교구, 시, 국방부가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다.
여담
이곳은 원래 도시의 새로운 대성당으로 계획되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그 용도가 변경되어 수많은 전사자들을 기리는 군사 성지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납골 성전에는 이탈리아 초대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조카이자 아오스타 공작의 형제인 움베르토 디 사보이아-아오스타 왕자의 유해도 안치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이곳에 안치된 5,000명이 넘는 전사자들은 모두 이름이 알려져 있는데, 이는 유해 대부분이 야전 병원에서 사망한 군인들의 것이기 때문이라는 언급이 있다.
전사자 중 상당수는 '99년의 소년들(Ragazzi del '99)'로 알려진 이들로, 1917년 카포레토 전투 패배 이후 18세의 나이로 징집되어 몬테 그라파 등지에서 싸웠던 젊은 병사들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