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아크로나플리아 요새는 나플리오의 장엄한 전경과 에게 해의 푸른 바다를 한눈에 조망하고 싶은 커플 및 개인 여행객, 그리고 고대부터 이어진 도시의 풍부한 역사를 탐험하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들이 주로 찾는다.
방문객들은 수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성벽과 유적 사이를 자유롭게 거닐며 과거의 흔적을 탐색할 수 있고, 정상에서는 나플리오 구시가지와 팔라미디 요새, 부르치 섬까지 이어지는 파노라마 전망을 감상하며 피크닉을 즐길 수도 있다.
다만, 일부 구역은 관리가 다소 미흡하여 쓰레기가 방치되거나 낙서가 있는 경우가 있으며, 요새 내 버려진 호텔 건물 잔해가 미관을 해친다는 지적이 있다.
접근 방법
🚶 도보 이용
- 나플리오 구시가지에서 프란고클리시아 교회(Fotomara 거리) 방면의 언덕길이나 계단을 따라 올라갈 수 있다.
- 정상까지는 약 20분 정도 소요될 수 있으며, 경치가 좋은 산책 코스이다.
일부 구간은 경사가 있거나 계단이 많을 수 있다.
🚗 차량 이용
- 요새 정상 부근까지 차량으로 직접 이동할 수 있다.
- 무료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편리하다.
🚠 엘리베이터 이용 (참고)
- 인근 나플리아 팰리스 호텔(Nafplia Palace Hotel)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언덕 위로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정보가 있다.
호텔 시설 이용 가능 여부 및 정확한 위치는 현지 확인이 필요할 수 있다.
주요 특징
아크로나플리아 정상에서는 나플리오 구시가지와 항구, 부르치 요새, 팔라미디 요새 및 아르골리스만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특히 일출 및 일몰 시간대의 경치가 뛰어나다.
운영시간: 24시간
고대부터 베네치아 시대까지 여러 시대에 걸쳐 축성된 성벽과 요새 유적 사이를 자유롭게 거닐며 탐험할 수 있다. 별도의 입장료나 정해진 관람 시간이 없어 여유로운 산책이 가능하다.
운영시간: 24시간
요새 정상 부근까지 차량으로 직접 올라갈 수 있어 접근이 편리하며, 넓은 공간에서 피크닉을 즐기거나 휴식을 취하기에 좋다. 일부 방문객들은 담요를 가져와 일광욕을 즐기기도 한다.
운영시간: 24시간
추천 포토 스팟
요새 정상 시계탑 근처
나플리오 구시가지와 부르치 요새를 배경으로 인상적인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아르바니티아 해변 전망 지점 (남동쪽 성벽)
푸른 아르바니티아 해변과 팔라미디 요새의 웅장한 측면을 함께 담을 수 있다.
서쪽 성벽 너머 바다 전망 포인트
탁 트인 아르골리스만과 해 질 녘 노을을 배경으로 낭만적인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요새 정상까지 차량으로 이동 가능하며, 무료 주차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입장료 없이 24시간 개방되어 있어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다.
여름철에는 햇볕이 강하고 그늘이 적으므로,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일부 구간은 길이 미끄럽거나 안전펜스가 없을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며, 편한 신발 착용이 권장된다.
나플리아 팰리스 호텔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언덕 위로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방문객의 언급이 있다.
요새 내 가장 키 큰 소나무에는 고양이들이 모여 있는 일명 '캣 트리(cat tree)'가 있어 독특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역사적 배경
최초 정착 추정
아크로나플리아 언덕에 최초의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나플리오 도시 역사의 시작점으로 여겨진다.
미케네식 성벽 축조
아크로나플리아의 북쪽과 동쪽 면에 다각형의 큰 돌을 쌓아 올리는 미케네식 공법으로 성벽이 건설되었다.
요새화 및 해군 기지
전략적 중요성으로 인해 성벽이 보강되고 해군 기지로 활용되었으며, 나플리오 최초의 본격적인 성채로 발전했다.
프랑크족 지배 시작
제4차 십자군 이후 아카이아 공국 등 프랑크족 세력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성채는 '로마인의 성'과 '프랑크인의 성'으로 분할되어 관리되었다.
제1차 베네치아 공화국 지배기
베네치아 공화국이 점령하여 항구 방어를 위한 핵심 요새로 대대적으로 증축하였고, 해안 매립을 통해 현재 나플리오 구도심의 기틀을 마련했다.
제1차 오스만 제국 지배기
오스만 제국에 정복되어 '이치 칼레(Iç Kale, 내부 성)'라는 터키어 이름으로 불렸으며, 지역 행정 중심지 및 수비대 주둔지로 사용되었다.
제2차 베네치아 공화국 지배기
베네치아가 재탈환하여 모레아 왕국의 수도 나플리아(당시 명칭)의 핵심 방어 시설로 기능했다. 이 시기 팔라미디 요새 건설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제2차 오스만 제국 지배기
다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나, 도시의 중심이 팔라미디 요새로 옮겨가면서 아크로나플리아의 전략적 중요성은 점차 감소하였다.
군사 시설 및 감옥으로 활용
그리스 독립 이후에도 군사 병영, 군사 감옥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특히 20세기에는 정치범 수용소(나플리오 교도소)로도 악명 높았다.
관광지 개발 및 호텔 건설
관광 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주목받으며 요새 일부에 호텔 단지가 건설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고대 유적이 훼손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으나, 현재는 역사 공원으로 일반에 개방되어 있다.
여담
아크로나플리아는 나플리오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으로, 한때는 팔라미디 요새가 건설되기 전까지 도시 방어의 중심 역할을 했던 독립된 요새 도시였다고 전해진다.
오스만 제국 시기에는 '이치 칼레(Iç Kale)', 즉 '내부 성'이라는 터키어 이름으로 불렸는데, 이는 도시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핵심 방어 시설임을 의미한다.
과거 정치범들을 수용하는 악명 높은 감옥으로 사용된 어두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사실 때문에 현지인들에게는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장소로 여겨지기도 한다.
요새 내부에 있던 많은 고대 유적과 중세 시대 건물들은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차례의 전쟁과 지배세력의 변화, 그리고 1960년대 관광 호텔 건설 과정에서 상당 부분 파괴되거나 변형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나플리오를 대표하는 3개의 주요 성채(아크로나플리아, 팔라미디, 부르치) 중에서 가장 먼저 축성된 것으로, 도시의 역사 그 자체를 담고 있는 상징적인 장소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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