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함부르크의 소소한 역사와 현지 이야기에 관심 있는 여행객이나, 독특한 기념물 앞에서 사진을 남기고자 하는 이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이야기가 있는 동상의 특정 부분을 만져보는 경험을 원하는 방문객들이 많다.
이곳에서 방문객들은 '레몬 아가씨'로 알려진 헨리에테 뮐러의 삶을 기리는 동상을 살펴보고, 그 옆에 새겨진 로우 저먼 비문을 통해 그녀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만져 반질반질해진 동상의 손가락을 직접 만져보며 소원을 빌기도 한다.
접근 방법
🚶 도보
- 성 미카엘 교회(St. Michaelis' Church)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여 도보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Ludwig-Erhard-Straße에 자리 잡고 있다.
🚇 대중교통
- 함부르크 시내버스나 S-Bahn, U-Bahn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성 미카엘 교회 근처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로 이동한다.
정확한 노선 및 시간은 현지 대중교통 정보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동상의 왼손 검지손가락은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 때문에 많은 사람의 손길이 닿아 유독 반질반질하게 닳아있다. 방문객들은 이 손가락을 만지며 소원을 빌거나 기념사진을 남긴다.
동상 받침대에는 헨리에테 뮐러의 고단했던 삶을 기리는 글귀가 로우 저먼(저지 독일어)으로 새겨져 있다. '네 삶은 레몬처럼 시었으니, 너를 기억하는 것이 가치가 있을까? 네 운명은 행복을 누릴 시간조차 없던 모든 이를 가리키네.'라는 내용이다.
치트 로넨 예테는 19세기 말 함부르크 거리에서 레몬을 팔던 실존 인물로, 그녀의 이야기는 연극으로도 만들어지는 등 함부르크 시민들에게 친숙한 지역의 상징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 동상은 그녀의 삶과 그 시대를 기억하기 위해 세워졌다.
추천 포토 스팟
동상 정면
치트 로넨 예테 동상의 전체적인 모습을 담을 수 있는 기본 촬영 지점이다. 인물의 표정과 자세, 들고 있는 레몬 바구니 등을 함께 촬영한다.
행운의 손가락과 함께
많은 사람이 만져 반질반질해진 동상의 손가락을 만지는 모습을 촬영하거나, 손가락 부분을 클로즈업하여 촬영한다. 행운을 비는 의미를 담을 수 있다.
성 미카엘 교회 배경
동상 근처에 위치한 성 미카엘 교회를 배경으로 동상을 함께 촬영하면 함부르크의 분위기를 더 잘 담아낼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동상의 왼손 검지손가락을 문지르면 행운이 온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방문 시 한 번 만져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수 있다.
성 미카엘 교회(St. Michaelis' Church)와 매우 가까우므로 함께 둘러보는 일정을 계획하면 좋다.
동상 받침대에 새겨진 로우 저먼 비문의 내용을 미리 알고 가면 동상을 감상하는 데 더욱 의미를 더할 수 있다.
역사적 배경
헨리에테 요하네 마리 뮐러 출생
훗날 '치트 로넨 예테'로 알려질 인물이 데사우에서 태어났다.
함부르크에서 레몬 판매
헨리에테 뮐러는 함부르크의 그라스브룩 거리와 노이슈타트 지역 술집 등에서 레몬을 판매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치트론! 치트론!'이라는 그녀의 외침은 유명했다.
프리드리히스베르크 정신병원 수용
음주와 정신 질환으로 인해 프리드리히스베르크 정신병원에 보내졌다.
첫 연극 공연
그녀의 생전에 이미 에른스트-드루커-극장에서 그녀의 이름을 딴 연극이 공연되기 시작했다.
헨리에테 요하네 마리 뮐러 사망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파울 뫼링의 음악극
파울 뫼링(Paul Möhring)이 음악극 '치트 로넨 예테'를 집필했다.
기념 동상 건립
조각가 한스외르크 바그너(Hansjörg Wagner)에 의해 현재의 치트 로넨 예테 기념 동상이 루트비히-에르하르트-슈트라세, 성 미카엘 교회 근처에 세워졌다.
여담
치트 로넨 예테의 본명은 헨리에테 요하네 마리 뮐러(Henriette Johanne Marie Müller)이며, '치트 로넨 예테'는 '레몬 예테' 또는 '레몬 아가씨'라는 뜻의 애칭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가 레몬을 팔 때 외치던 '치트론! 치트론!(Zitroon! Zitroon!)'이라는 독특한 소리는 당시 함부르크 사람들에게 매우 유명했다고 전해진다.
정신 질환과 알코올 문제로 어려운 말년을 보냈으며, 1894년 8월 프리드리히스베르크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그곳에서 1916년 생을 마감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녀의 이야기는 이미 1900년부터 연극 무대에 올랐으며, 이후에도 다양한 작품으로 각색되었다. 어떤 연극에서는 남자 배우가 치트 로넨 예테 역할을 맡아 연기하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의 동상은 1986년 조각가 한스외르크 바그너(Hansjörg Wagner)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동상 받침에는 그녀의 고단했던 삶을 기리는 로우 저먼(저지 독일어) 글귀가 새겨져 있다.
대중매체에서
치트 로넨 예테 (Zitronenjette) 연극
1900년 에른스트-드루커-극장에서 처음 그녀의 이름을 딴 연극이 공연된 이래, 여러 차례 연극 및 음악극으로 제작되었다. 1920년대에는 파울 뫼링(Paul Möhring)이 음악을 곁들인 희곡 '치트 로넨 예테'를 썼으며, 이 역할은 원래 배우 에른스트 부진스키를 위해 쓰였다고 한다. 이 연극에서는 종종 남자 배우가 치트 로넨 예테 역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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