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역사적인 건축물과 깊이 있는 학문적 전통을 직접 경험하고 싶은 역사 애호가나 지적 탐구를 즐기는 여행자들이 주로 방문한다. 특히 유럽 대학의 역사와 교육 모델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장소이다.
방문객들은 웅장한 바로크 양식의 본관 건물을 둘러보며 그 건축미를 감상할 수 있고, 대학의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의 초상화가 전시된 복도를 거닐며 학문적 업적을 느껴볼 수 있다. 또한, 독특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그림 센터 도서관을 방문하거나 캠퍼스 정문 앞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을 구경하는 것도 가능하다.
일부 오래된 건물의 시설 관리나 행정 서비스 관련하여 아쉬움을 표하는 의견이 간혹 있으며, 특정 학과나 프로그램의 경우 강의 질에 편차가 있다는 언급도 있다.
접근 방법
🚇 지하철 (U-Bahn) 이용
- U6호선 프리드리히슈트라세(Friedrichstraße) 역 하차 후 도보 약 5~10분.
- U5호선 운터덴린덴(Unter den Linden) 역 하차 후 도보 약 5분.
베를린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여 대중교통 접근성이 매우 좋다.
🚌 버스 이용
- 운터덴린덴(Unter den Linden) 거리를 통과하는 다수의 버스 노선(예: 100번, 200번, 300번, TXL 버스 등)을 이용하여 'Staatsoper' 또는 'Lustgarten'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 이동 가능하다.
주요 특징
과거 프로이센 왕자 하인리히의 궁전(Palais des Prinzen Heinrich)이었던 본관 건물은 18세기 바로크 양식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웅장한 외관과 더불어 역사적 의미가 깊은 내부 공간 일부를 둘러볼 수 있으며, 정문 앞에는 대학 설립에 기여한 빌헬름 폰 훔볼트와 알렉산더 폰 훔볼트 형제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운영시간: 외부 상시, 내부 시설별 상이
그림 형제를 기려 명명된 중앙도서관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계단식으로 구성된 독특한 열람실 디자인이 인상적이며, 건축학적 가치와 함께 방대한 장서를 소장하고 있는 학문의 전당이다. 일반 방문객은 로비 등 일부 공간을 둘러볼 수 있다.
운영시간: 시설별 운영 시간 상이 (방문 전 홈페이지 확인)
대학 본관 2층 중앙 복도에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막스 플랑크 등 이 대학 출신 또는 교수로 재직했던 50명이 넘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이를 통해 대학의 빛나는 학문적 역사와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으며, 누구나 자유롭게 관람 가능하다.
운영시간: 본관 개방 시간 내
추천 포토 스팟

본관 정면과 훔볼트 형제 동상
대학의 상징적인 건물인 바로크 양식의 본관과 그 앞에 세워진 빌헬름 폰 훔볼트, 알렉산더 폰 훔볼트 형제의 동상을 함께 담을 수 있는 대표적인 포토 스팟이다.

그림 센터 내부 열람실
독특하고 아름다운 건축미로 유명한 중앙도서관 그림 센터의 내부, 특히 계단식으로 펼쳐진 광대한 열람실은 매우 인상적인 사진 배경을 제공한다. (촬영 시 정숙 유지 필요)

베벨플라츠 '빈 서가' 기념물
대학 본관 맞은편 베벨플라츠 광장 바닥에 설치된 '빈 서가(Empty Library)' 기념물은 1933년 나치의 분서 사건을 추모하는 의미 있는 장소로, 역사적 의미를 담은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대학 본관 정문 앞이나 정원을 낀 포장길에서 종종 벼룩시장이 열리며, 일반적인 학술 서적 외에도 동독 시절의 서적, 배지, 우표 같은 기념품들을 구입할 수 있다.
본관 1층 중앙홀 내부에는 대학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가방, 필기구 등 다양한 기념품을 판매하는 '훔볼트 스토어'가 있다.
본관 안뜰(Courtyard)에서는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와 리제 마이트너의 동상을 볼 수 있다.
겨울철에는 정문 앞의 훔볼트 형제 동상이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실내로 옮겨져 보관된다.
대학 내에서는 국제 학생 및 연구자들을 위한 무선 인터넷 서비스인 'eduroam'에 쉽게 접속할 수 있다.
본관 로비에는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는 책들이 놓인 책장이 있으며, 베를린 여행의 특별한 기념품이 될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
역사적 배경
베를린 대학교 설립 구상
빌헬름 폰 훔볼트,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등의 주도로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에 의해 설립이 추진되었다.
베를린 대학교 공식 개교
법학, 의학, 신학, 철학의 4개 학부로 시작하였으며, '훔볼트식 교육 모델'을 도입하여 연구와 교육의 통일을 추구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학교
설립자의 이름을 따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다. 이 시기 동안 세계적인 대학으로 명성을 떨쳤다.
나치 정권 하의 탄압
나치 정권의 등장으로 수많은 유대인 교수와 직원들이 해고되었으며, 대학 도서관의 책을 포함한 약 2만 권의 서적이 대학 맞은편 오페른플라츠(現 베벨플라츠)에서 불태워지는 분서 사건이 발생했다.
냉전과 분열
제2차 세계 대전 후 대학이 동베를린에 위치하게 되면서 소련의 정치적 영향을 받았다. 이에 반발한 교수와 학생들이 서베를린에 베를린 자유대학교를 설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로 개명
대학 설립에 큰 공헌을 한 알렉산더 폰 훔볼트와 빌헬름 폰 훔볼트 형제를 기리기 위해 현재의 교명으로 변경되었다.
중앙도서관 '그림 센터' 개관
대학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현대적인 중앙도서관 '야코프 빌헬름 그림 센터'가 문을 열었다.
여담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의 본관 건물은 원래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2세가 그의 동생인 하인리히 왕자를 위해 1748년부터 1753년 사이에 지은 궁전(Prinz-Heinrich-Palais)이었다고 한다.
본관 1층과 2층 사이 중앙 계단 벽에는 이 대학 졸업생인 카를 마르크스가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에서 언급한 '철학자들은 세계를 여러 가지로 해석해 왔을 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금박으로 새겨져 있다. 이 문구는 동독 시절인 1953년에 장식되었으며, 통독 이후 철거 논란이 있었으나 보존하기로 결정되었다.
이 대학은 연구와 교육의 통일을 강조하는 '훔볼트식 고등교육 모델(Humboldtsches Bildungsideal)'을 세계 최초로 도입하여, 이후 유럽과 서구의 많은 대학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관 맞은편 베벨플라츠에 있는 '빈 서가(The Empty Library)' 기념물은 1933년 5월 10일 나치에 의해 자행된 분서 사건을 기억하기 위한 것으로, 바닥의 유리판을 통해 지하의 텅 빈 책장을 볼 수 있게 디자인되었다.
대학 정문 앞이나 정원에서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벼룩시장에서는 헌책뿐만 아니라 동독 시절의 배지나 우표 같은 독특한 기념품을 발견할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
대중매체에서
듀오링고 (Duolingo)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어학 학습 애플리케이션 '듀오링고'의 일부 언어 학습 코스에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가 주요 학습 배경 또는 예시 장소로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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