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프로이센의 역사와 19세기 조각 예술에 관심이 많은 방문객, 또는 베를린의 주요 역사적 랜드마크를 탐방하는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정교한 조각으로 표현된 프리드리히 대왕과 그 시대 주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역사적 순간을 느껴보려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장소로 여겨진다.
베를린 중심부 운터 덴 린덴 거리 중앙에 자리한 기마상의 웅장함을 감상할 수 있으며, 다층 구조의 받침대에 새겨진 수많은 인물상과 역사적 장면들을 통해 프리드리히 대왕 시대의 정치, 군사, 문화적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주변의 훔볼트 대학교, 베벨플라츠 등 역사적인 건축물들과 어우러져 베를린의 역사적인 분위기를 한층 더한다.
분주한 도로 중앙에 위치하여 동상을 가까이에서 자세히 관람하거나 사진을 촬영할 때 주변 차량 통행에 주의해야 한다는 점이 언급되곤 한다.
접근 방법
🚇 지하철 (U-Bahn)
- U5 노선 운터 덴 린덴(Unter den Linden) 역 또는 박물관섬(Museumsinsel) 역에서 하차 후 도보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두 역 모두 동상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다.
🚌 버스
- 운터 덴 린덴 거리를 통과하는 다수의 버스 노선(예: 100번, 200번, 300번)을 이용하여 인근 정류장에 하차 후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
정류장 'Staatsoper' 또는 'Unter den Linden/Friedrichstr.' 등이 가깝다.
🚶 도보
- 브란덴부르크 문, 박물관 섬 등 미테 지구의 주요 관광 명소에서 운터 덴 린덴 거리를 따라 산책하며 도착할 수 있다.
주요 특징
조각가 크리스티안 다니엘 라우흐가 1839년부터 1851년까지 제작한 청동 기마상으로, 신고전주의에서 사실주의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베를린 조각사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군복 차림에 에르민 망토를 걸치고 특징적인 삼각모를 쓴 프리드리히 대왕이 말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은 프로이센의 강력한 군주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총 높이 13.5m 중 약 7.84m를 차지하는 받침대는 여러 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프리드리히 대왕 시대의 주요 인물들을 기리고 있다. 상단에는 왕의 생애 주요 장면과 네 가지 기본 덕목(절제, 정의, 용기, 신중)을 상징하는 부조가, 중간 단에는 당시 프로이센을 이끌었던 장군, 정치가, 예술가, 과학자 등 74명의 인물상이 실물 크기로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하단에는 추가 주요 인물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당대 프로이센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기마상은 단순한 조형물을 넘어 베를린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증언하는 상징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폭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콘크리트로 뒤덮였으며, 전후 동독 정부에 의해 철거되어 포츠담으로 옮겨졌다가 1980년 다시 운터 덴 린덴의 원래 위치로 돌아왔다. 이러한 역사적 부침은 동상 자체에 또 다른 의미와 이야기를 더한다.
추천 포토 스팟
동상 정면 (운터 덴 린덴 거리 배경)
기마상의 위엄과 함께 베를린의 상징적인 거리인 운터 덴 린덴의 모습을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다.
받침대 인물상 근접 촬영
정교하게 조각된 74명의 역사적 인물상들의 세부적인 모습을 촬영하여 예술적 가치를 느껴볼 수 있다.
브란덴부르크 문 방향 배경
기마상을 전경으로 하고 멀리 브란덴부르크 문을 배경에 넣어 베를린의 역사적 연속성을 상징하는 구도로 촬영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동상은 운터 덴 린덴 거리 중앙에 위치하므로, 브란덴부르크 문, 박물관 섬, 베벨플라츠, 훔볼트 대학교 등 주변 주요 명소와 함께 도보로 둘러보는 일정에 포함시키기 좋다.
기마상 자체뿐만 아니라 받침대에 새겨진 수많은 인물상과 역사적 장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프로이센 역사와 프리드리히 대왕 시대에 대한 이해를 더욱 높일 수 있다.
U5 지하철 노선의 운터 덴 린덴(Unter den Linden) 역이나 박물관섬(Museumsinsel) 역을 이용하면 동상까지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다.
동상이 도로 중앙에 위치해 있으므로, 사진 촬영이나 관람 시 주변 교통 상황에 유의해야 한다.
역사적 배경
제작 의뢰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조각가 크리스티안 다니엘 라우흐에게 프리드리히 2세 대왕의 기마상 제작을 의뢰했다.
주춧돌 설치
프리드리히 2세 즉위 100주년을 기념하여 기마상 받침대의 주춧돌이 놓였다.
제막식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 치하에서 기마상이 공식적으로 제막되었다.
보존 조치
연합군의 공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동상 전체를 콘크리트로 감쌌다.
철거 및 이전 준비
동베를린 정부의 결정에 따라 동상이 철거되어 포츠담으로 이전될 준비가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손상되기도 했다.
포츠담 이전 및 재조립
포츠담 상수시 공원 내 샤를로텐호프 궁전 인근 히포드롬에 재조립되어 세워졌다.
베를린 운터 덴 린덴으로 복귀
동독 지도자 에리히 호네커의 지시로 프로이센 역사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원래 위치였던 운터 덴 린덴으로 다시 옮겨져 복원되었다. (원래 위치에서 동쪽으로 약 6m 이동)
대대적인 복원
독일 통일 후, 동상이 원래의 정확한 위치로 옮겨졌으며, 역사적인 울타리와 주변 포장, 조명 등이 복원되는 등 대대적인 과학적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다.
추가 복원
분데스베어(독일 연방군) 반대 시위 중 페인트 테러를 당한 후 다시 복원되었으며, 그래피티 방지를 위해 왁스 코팅 처리되었다.
여담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폭격으로부터 동상을 보호하기 위해 두꺼운 콘크리트 벽으로 감쌌던 덕분에 심각한 손상 없이 보존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동독 시절, 이 동상은 프로이센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져 철거된 후 포츠담의 상수시 공원으로 옮겨졌었다. 그러나 1980년대 동독 정부의 프로이센 역사 재평가와 함께 프리드리히 대왕이 '거지들의 왕' 또는 사회적 양심을 가진 군주로 재해석되면서 베를린의 원래 자리로 극적인 복귀를 했다고 한다.
동상 받침대에는 프리드리히 대왕 시대의 군인, 정치가 외에도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 작가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등 당대의 주요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모습도 새겨져 있는데, 이들의 위치가 군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눈에 덜 띄는 뒤편(서쪽 면)에 배치된 것을 두고 '말의 엉덩이 밑에 학자들을 두었다'는 식의 비판적인 농담이 당시에도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기마상을 제작한 조각가 크리스티안 다니엘 라우흐는 당대 저명한 조각가 요한 고트프리트 샤도우의 제자였다. 스승 샤도우는 본인이 이 기념비 제작을 맡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제자인 라우흐에게 기회가 돌아가자 '나의 모든 재능은 라우흐(Rauch, 독일어로 '연기'라는 뜻)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탄식했다는 일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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