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파리의 역사, 특히 프랑스 혁명기와 관련된 장엄한 건축물에 관심 있는 역사 애호가나 특정 시대 건축 양식을 탐구하는 이들이 주로 방문한다. 과거 파리의 주요 관문 중 하나였던 장소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여행객들에게도 의미 있는 장소가 될 수 있다.
방문객들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세워진 거대한 두 개의 기둥과 그 위에 놓인 왕들의 조각상을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이 과거 도시로 들어오는 물품에 세금을 징수하던 세관이었으며,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단두대가 설치되어 수많은 이들이 처형되었던 역사의 현장임을 되새기며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
기둥 꼭대기에 있는 조각상은 상당한 높이 때문에 육안으로 세부적인 모습을 명확히 식별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있으며, 건축물 자체의 역사적 배경에 큰 관심이 없다면 단순히 거대한 두 개의 기둥으로만 느껴질 수도 있다.
접근 방법
🚇 지하철
- 1, 2, 6, 9호선 Nation 역 하차 후 도보 약 5분.
- RER A선 Nation 역 하차 후 도보 약 5분.
Nation 역은 여러 노선이 교차하는 주요 환승역으로 접근이 용이하다.
🚌 버스
- Nation 역 주변에 다수의 버스 노선이 정차한다. (예: 26, 56, 57, 71, 86, 351번 등)
버스 이용 시 파리 시내 교통 상황에 따라 소요 시간이 달라질 수 있다.
주요 특징
높이 28m에 달하는 두 개의 신고전주의 양식 기둥은 파리의 옛 관문이었던 '바리에르 뒤 트론'의 상징이다. 북쪽 기둥에는 성 루이(생 루이), 남쪽 기둥에는 필리프 오귀스트의 조각상이 각각 정의와 평화, 승리와 풍요를 상징하며 서 있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1787년 건축가 클로드 니콜라 르두가 설계한 이 기둥들은 원래 파리로 들어오는 물품에 세금을 부과하던 '옥트로이'(세관) 시설의 일부였다. 기둥 양옆으로는 당시 세관 사무실과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던 두 개의 파빌리온 건물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외부)
프랑스 혁명기인 1794년 6월부터 7월까지, 현재의 나시옹 광장 남쪽, 즉 남쪽 기둥(필리프 오귀스트 상) 근처에 기요틴이 설치되어 1,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처형되었다. 이 장소는 혁명의 공포정치를 상징하는 비극적인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추천 포토 스팟
나시옹 광장에서 바라본 기둥 정면
두 개의 기둥과 그 뒤로 이어지는 쿠르 드 뱅센 대로의 모습을 함께 담아 웅장함을 표현할 수 있다.
해 질 녘 기둥 실루엣
일몰 시각에 맞춰 방문하면 붉게 물드는 하늘을 배경으로 기둥의 아름다운 실루엣을 촬영할 수 있다.
기둥 하단부와 파빌리온
기둥의 정교한 하단부 장식과 함께 양옆의 역사적인 파빌리온 건물을 프레임에 넣어 고전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왼쪽 기둥(필리프 오귀스트 상이 있는 12구 방향 기둥) 옆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현지 레스토랑이 있다는 언급이 있다.
도보 약 5분(300m) 거리에 라파예트 후작의 묘가 안치된 피크퓌스 공동묘지가 위치해 있어, 역사에 관심 있다면 함께 방문해볼 만하다.
기둥을 지나 동쪽으로 이어지는 쿠르 드 뱅센에서는 현지 시장이 열리기도 하므로, 방문 시기에 따라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다.
기둥 주변에 프랑스 혁명 당시 기요틴으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명판이 설치되어 있으니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역사적 배경
건설 시작
건축가 클로드 니콜라 르두의 설계로 파리의 새로운 세관 장벽인 '바리에르 뒤 트론' 건설이 시작되었다. 이는 페르미에 제네로 성벽의 일부였다.
공포 정치와 기요틴
프랑스 혁명 중 공포 정치 기간 동안 현재의 나시옹 광장 남쪽, 기둥 근처에 기요틴이 설치되어 1,306명의 사람들이 처형되었다.
파리 전투
제6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중 파리 전투에서 에콜 폴리테크니크 학생들이 이곳에서 포병대를 이끌고 연합군에 맞서 싸웠다.
조각상 설치
두 기둥의 상단에 각각 필리프 오귀스트(오귀스트 뒤몽 작)와 성 루이(앙투안 에텍스 작)의 동상이 세워졌다.
역사 기념물 지정
바리에르 뒤 트론의 기둥과 파빌리オン이 프랑스 역사 기념물로 공식 지정되었다.
파빌리온 용도 변경
과거 세관 건물로 사용되던 두 파빌리온이 사회 주택으로 개조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복원 공사
기둥의 상태 악화로 인해 조각상을 포함한 대대적인 복원 및 보수 공사가 진행되었다.
여담
원래 명칭은 '바리에르 뒤 트론(Barrière du Trône)' 또는 '뱅센 장벽(Barrière de Vincennes)'으로 불렸다.
이 장벽은 파리로 들어오는 상품에 세금을 징수하기 위한 목적 외에도, 왕이 파리로 입성하는 의례적인 관문의 역할도 했다고 전해진다.
두 기둥 상단의 조각상들은 각각 프랑스의 중요한 왕들을 상징한다. 북쪽(11구 방향) 기둥 위에는 정의와 평화를 상징하는 **성 루이(루이 9세)**가, 남쪽(12구 방향) 기둥 위에는 승리와 풍요를 상징하는 **필리프 오귀스트(필리프 2세)**가 빈센을 향해 서 있다.
기둥의 이름은 과거 나시옹 광장이 '플라스 뒤 트론(Place du Trône, 왕좌의 광장)'으로 불렸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기둥과 양옆의 파빌리온 건물들은 건축가 클로드 니콜라 르두가 설계한 파리 주변의 여러 세관 건물 중 현재까지 남아있는 단 두 곳 중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당페르 로슈로 광장의 건물).
기둥 하단부에는 승리를 묘사한 알레고리 풍의 장식이 새겨져 있다.
19세기 중반에 두 기둥을 사진으로 남긴 유명 사진가로는 이폴리트 바야르(1849년)와 외젠 아제(1903년 또는 1904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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