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내부 장식과 프랑스 혁명 당시의 역사적 사건에 깊은 관심을 가진 예술 애호가 및 역사 탐방객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9월 학살과 관련된 장소를 직접 보고 그 의미를 되새기려는 이들에게 중요한 방문지이다.
방문객들은 정교한 돔 천장화와 여러 예배당의 다채로운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으며, 혁명 시기 희생된 성직자들을 기리는 지하 무덤(순교자의 지하실)을 방문하여 역사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토요일에는 무료 가이드 투어를 통해 성당의 역사와 예술에 대한 심도 있는 설명을 들을 수도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정문 폐쇄 시 출입구를 찾기 어렵거나, 대학 건물을 통해 입장하며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 등 접근 과정에서의 불편함을 언급하기도 한다.
접근 방법
🚇 대중교통
- 파리 시내 주요 지하철 노선 및 버스를 이용하여 인근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로 접근 가능하다.
- 정확한 노선 및 가장 가까운 역은 현재 위치와 시간에 따라 대중교통 앱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좋다.
🚶 도보 및 기타
- 주소는 70 Rue de Vaugirard, 75006 Paris 이나, 경우에 따라 파리 가톨릭 연구소 정문(74 rue de Vaugirard)을 통해 입장해야 할 수 있다.
입구가 혼동될 수 있으니 방문 전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성당 중앙 돔 내부에는 발터 다메리(Walter Damery)와 베르톨레 플레말(Bertholet Flémal)이 1644년에 그린 엘리야의 승천 프레스코화가 장식되어 있다. 이는 파리에서 최초로 그려진 돔 프레스코화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방문객은 고개를 들어 이 장엄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프랑스 혁명 당시인 1792년 9월 학살로 희생된 115명의 사제들을 기리는 지하 묘소이다. 방문객은 이곳에서 당시의 비극적인 역사를 되새기며 희생자들의 유골 일부와 기념물을 직접 볼 수 있다.
운영시간: 제한적 개방 가능성 있음
좌측 트랜셉트에 위치한 성모 예배당에는 이탈리아 조각가 안토니오 라지(Antonio Raggi)가 스승인 잔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의 디자인에 따라 제작한 바로크 양식의 제단과 성모 마리아상이 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조각은 이 성당의 주요 예술품 중 하나로 꼽힌다.
추천 포토 스팟
돔 내부 천장화 (엘리야의 승천)
바로크 양식의 화려하고 역동적인 돔 프레스코화를 올려다보며 촬영할 수 있다. 천장의 그림 전체를 담거나 특정 부분을 클로즈업하여 예술적 감흥을 기록할 수 있다.
순교자의 계단 (Stairway of Martyrs)
1792년 9월 학살 당시 사제들이 쓰러진 역사적인 장소로, 계단에 새겨진 라틴어 문구와 함께 비극적 역사의 현장을 담을 수 있다.
성모 예배당의 베르니니 디자인 제단
베르니니가 디자인하고 그의 제자가 완성한 정교한 바로크 양식의 제단과 성모상을 함께 프레임에 담아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을 남길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매주 토요일 오후 3시에는 무료 가이드 투어가 진행되며, 성당의 역사와 예술에 대한 깊이 있는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정문이 닫혀 있을 경우, 파리 가톨릭 연구소(74 rue de Vaugirard)를 통해 입장해야 하며, 이때 신분증(여권 등) 제시 및 방문 기록 작성이 필요할 수 있다.
프레데릭 오자남의 무덤과 같은 일부 특정 공간은 개방 시간이 매우 제한적이거나 별도의 안내가 부족할 수 있으니 참고한다.
내부 관람 시, 특히 미사나 기도 시간에는 정숙을 유지하고 사진 촬영은 허용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맨발의 카르멜회 수녀들 파리 도착 및 수도원 설립 준비
두 명의 맨발의 카르멜회 수녀가 로마에서 파리로 와 수도원 설립을 추진했다. 이 시기는 파리에 종교적 열정이 고조되던 때였다.
성당 건축 시작
마리 드 메디시스 여왕이 새로운 성당의 첫 번째 돌을 놓으며 건축이 시작되었다. 성당은 성 요셉에게 봉헌된 파리 최초의 성당이었다.
성당 외부 완공 및 첫 미사
성당의 외부 공사가 대부분 완료되어 내부 장식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으며, 성 요셉 축일인 3월 19일에 첫 미사가 봉헌되었다.
성당 봉헌
12월 21일, 샤르트르 주교에 의해 공식적으로 봉헌되었다.
프랑스 혁명과 9월 학살
프랑스 혁명 중 수도원은 국유화되었고, 9월 학살 당시 많은 사제들이 이곳에서 살해당했다. 성당은 이후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카르멜회 지지자에 의한 성당 및 수도원 매입
마드모아젤 드 수아예쿠르가 버려진 성당과 수도원을 구입하여 카르멜회 수녀들의 거처로 만들었다.
고등 교회 연구 기관으로 전환
파리 대주교가 건물을 매입하여 고등 교회 연구 학교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학살된 사제들의 유해 발견 및 이전
도로 공사 중 1792년 학살된 사제들의 무덤이 발견되었고, 유해는 성당 내 순교자들의 지하실로 옮겨졌다.
파리 가톨릭 대학교(현 파리 가톨릭 연구소) 설립
성당과 수도원 건물은 파리 가톨릭 대학교의 본거지가 되었으며, 현재까지 신학교와 지역 본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여담
이 성당의 돔은 파리에서 두 번째로 지어진 돔 건축물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파리에서 성 요셉에게 봉헌된 최초의 성당으로 알려져 있다.
‘하나님의 현존 연습’의 저자인 로렌스 형제가 이곳 수도원에 거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나폴레옹의 황후가 된 조제핀 드 보아르네가 프랑스 혁명 당시 이곳에 수감되었던 일화가 있다.
9월 학살 당시 사제들이 학살당한 수도원 계단은 '순교자의 계단(Stairway of Martyrs)'으로 불린다는 언급이 있다.
한 나이 지긋한 자원봉사자가 방문객에게 열정적으로 성당 내부를 안내하며 설명해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일반 신자들이 제단에 더 가까이 다가가 미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단과의 거리를 가깝게 하고 단을 높지 않게 설계했다는 점이 특징으로 언급된다.
성당 내부에 자율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엽서 판매대가 마련되어 있다는 정보가 있다.
대중매체에서
나폴레옹 (Napoléon)
아벨 강스 감독의 무성 영화 '나폴레옹'의 일부 장면에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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