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오랜 역사와 종교적 의미를 지닌 건축물을 감상하거나, 파리 중심부에서 조용히 기도나 명상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여행객 및 신자들이 주로 방문한다. 특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의 일부로서 그 의미를 되새기려는 이들도 찾는다.
방문객들은 고딕 및 프랑스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의 소박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유서 깊은 오르간과 다양한 종교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얀센주의와 관련된 역사적 인물들의 흔적을 찾아보며 성당의 독특한 배경을 이해할 수도 있다.
접근 방법
🚇 RER 이용
- RER B선 Luxembourg 역 또는 Port-Royal 역에서 하차 후 도보로 약 5~10분 소요.
🚌 버스 이용
- 21, 27번 버스: Saint-Jacques - Saint-Germain 정류장 또는 인근 정류장 이용.
- 38번 버스: Boulevard Saint-Michel 인근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 이동 가능.
정확한 노선 및 정류장은 실시간 교통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오르간 케이스의 일부를 간직한 것으로 알려진 두 개의 아름다운 오르간을 볼 수 있다. 얀센주의의 영향을 받은 소박하면서도 고전적인 건축 양식은 엄숙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운영시간: 성당 개방 시간 내
15세기 성 야고보 순례자 조각상, 19세기 성모자상, 르냉 형제의 '수태고지' 등 다양한 시대의 종교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다.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성당 내부를 더욱 경건하게 만든다.
운영시간: 성당 개방 시간 내
파리의 번잡한 관광지에서 벗어나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개인적인 기도나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많은 방문객들이 이곳에서 마음의 위안과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운영시간: 성당 개방 시간 내
추천 포토 스팟
성당 주 제단과 성가대석
길게 뻗은 성가대석과 제단 주변의 고전적인 건축미를 담을 수 있다. 특히 위쪽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이 아름답다.
성모 마리아 예배당
화려한 천장화와 조각상, 스테인드글라스가 어우러진 예배당의 아름다운 모습을 촬영할 수 있다.
오르간과 스테인드글라스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과 다채로운 색상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함께 프레임에 담아 인상적인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룩셈부르크 정원과 가까워 함께 둘러보기 좋다.
점심시간에는 문을 닫을 수 있으므로 방문 시간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관광객이 적어 조용히 관람하거나 기도하고 싶을 때 방문하기 적합하다.
성당 입구에 교회의 역사에 대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어 관람 전 읽어보면 이해에 도움이 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의 일부이므로, 관련 순례자들은 순례 증명서에 도장을 받을 수 있는지 문의해볼 수 있다.
역사적 배경
병원 및 예배당 설립
이탈리아 알토파시오 출신 성령 수도회 수사들이 도시 성벽 밖에 병원과 예배당을 세우고 가난한 이들과 순례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새 병원 및 예배당 건립
더 큰 규모의 새로운 병원과 예배당이 건립되었다.
베네딕토회 이전
카트린 드 메디시스 여왕이 생 마글루아르 수도원에서 쫓겨난 베네딕토회 수사들을 이곳으로 옮겼고, 생 마글루아르의 유물이 이전되었다.
첫 본당 교회 건설 시작
늘어나는 지역 주민들을 위해 수도원 옆에 별도의 본당 교회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이 교회의 성가대는 동쪽을 향했다.
생 마글루아르 신학교 설립
옛 수도원 자리에 파리 최초의 신학교인 생 마글루아르 신학교(오라토리오회)가 피에르 드 베륄에 의해 설립되었다. 작가 장 드 라 퐁텐이 잠시 이곳에 머물렀다.
교회 확장 및 방향 전환
루이 13세의 동생 가스통 도를레앙 공작의 후원으로 교회가 확장되기 시작했다. 이때 교회의 방향이 현재와 같이 서쪽을 향하도록 바뀌었다.
대대적인 재건축
건축가 다니엘 지타르의 지휘 아래 대대적인 재건축이 이루어져 현재 교회의 모습이 갖추어졌다. 1685년 5월 6일 재봉헌되었다.
성모 마리아 예배당 건설
건축가 리베랄 브뤼앙의 설계로 성모 마리아 예배당이 추가로 건설되었다.
얀센주의 중심지
엄격한 신앙생활을 강조하는 얀센주의의 중요한 거점 역할을 했다. 얀센주의 신학자 장 뒤베르지에 드 오란(생시랑 수도원장)의 무덤이 이곳에 있어 순례지가 되었다.
장 드니 코생 신부와 병원 설립
주임사제 장 드니 코생이 가난한 환자들을 위한 병원(후일 코생 병원)을 설립했다.
프랑스 혁명기
교회가 약탈당했으나 폐쇄되지는 않았다. 한때 신랑애교(Theophilanthropy)가 '자비의 사원'이라는 이름으로 성가대 부분을 사용하기도 했다. 1801년 나폴레옹의 정교협약 이후 가톨릭 교회가 전용하게 되었다.
장식 추가 및 복원
얀센주의의 영향으로 소박했던 내부에 부유한 가문들의 기증으로 많은 그림과 스테인드글라스가 추가되었다. 성모 마리아 예배당은 오귀스트 바르텔레미 글레이즈에 의해 재장식되었다.
역사 기념물 지정
프랑스 역사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오르간 복원
알프레드 케른 부자에 의해 오르간이 대대적으로 복원되어 1971년 피에르 코슈로에 의해 재헌정되었다.
여담
성당의 이름 '뒤 오 파(du Haut-Pas)'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알토파시오(Altopascio)' 마을 이름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높은 길목' 또는 '어려운 통로'를 의미하며, 초기 병원 운영 수도사들의 출신지였다.
17세기 프랑스에서 논쟁적이었던 신학 사상인 얀센주의의 중요한 중심지 중 하나였으며, 얀센주의 신학자 장 뒤베르지에 드 오란(생시랑 수도원장)의 무덤이 있어 그의 추종자들에게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다고 한다.
유명한 이탈리아 출신 프랑스 천문학자 조반니 도메니코 카시니와 프랑스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필리프 드 라 이르가 이곳에 묻혀 있다.
우화 작가로 유명한 장 드 라 퐁텐이 젊은 시절 이곳에 있던 생 마글루아르 신학교에서 잠시 수학한 적이 있다고 전해진다.
무선 전신의 발명가 중 한 명인 에두아르 브랑리는 이 성당의 오랜 신자였으며, 이를 기리는 기념패가 성당 내에 있다.
현재 파리의 유명 병원 중 하나인 코생 병원(Hôpital Cochin)은 18세기에 이 성당의 주임사제였던 장 드니 코생이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설립한 작은 병원에서 시작되었다.
프랑스 혁명 기간 동안, 성당은 완전히 폐쇄되지는 않았으나 약탈을 겪었고, 한때 성가대 부분이 '자비의 사원(Temple de la Bienfaisance)'이라는 이름으로 신흥 종교인 신애종교(Théophilanthropie)의 집회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대중매체에서
레 미제라블 (Les Misérables)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장 발장이 코제트를 데리고 이 성당의 미사에 참석하는 장면이 묘사된다. 소설 속 플뤼메 거리의 집과 가까운 곳으로 설정되어 있다.
야성의 아이 (L'Enfant sauvage)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영화 '야성의 아이' 일부 장면이 이 성당 내부에서 촬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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