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오세르의 성 제르맹 성당은 루브르 박물관 인근에서 플랑부아양 고딕 양식을 비롯한 다양한 시대의 건축미와 정교한 스테인드글라스를 감상하고, 파리의 역사적 순간들을 되새기며 조용한 사색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역사 및 예술 애호가들이 주로 찾는다.
방문객들은 성당 내부의 여러 예배당을 둘러보며 유서 깊은 예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고, 때때로 열리는 미사나 오르간 연주를 통해 경건한 분위기를 직접 체험할 수도 있다. 또한, 성당의 역사적 배경과 건축적 특징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며 지식을 넓힐 수 있다.
접근 방법
🚇 지하철
- 1호선: 루브르-리볼리(Louvre - Rivoli)역 하차 후 도보 약 5분
- 7호선: 퐁뇌프(Pont-Neuf)역 하차 후 도보 약 5분
루브르 박물관 콜로네이드 맞은편에 위치한다.
🚌 버스
- 주변에 다수의 버스 노선이 정차한다 (예: 21, 27, 67, 69, 72, 74, 85번 등). 'Louvre - Rivoli' 또는 'Pont Neuf - Quai du Louvre' 정류장 이용.
주요 특징
수세기에 걸쳐 증개축되며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건축미를 감상할 수 있다. 특히 15세기에 장 고셀(Jean Gaussel)이 제작한 플랑부아양 고딕 양식의 현관과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이 눈에 띈다.
16세기 작품을 포함한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들을 통해 쏟아지는 빛의 향연을 경험할 수 있다. 내부에는 정교한 플랑드르 제단화, 루이 14세를 위해 제작된 왕실 전용석, 다양한 조각상과 회화 등 귀중한 예술품들이 다수 보존되어 있다.
프랑스 왕실의 본당이었으며, 1572년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의 시작을 알린 종소리가 울렸던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몰리에르, 당통 등 유명 인물들의 결혼식이 거행되었고, 많은 예술가들이 묻힌 곳이기도 하다.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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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서쪽 파사드와 현관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된 15세기 고딕 양식의 현관과 장미창을 배경으로 성당의 웅장함을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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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다채로운 색상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는 빛을 활용하여 신비롭고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 특히 해가 좋은 날 더욱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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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광장에서 바라본 성당과 종탑
루브르 박물관 콜로네이드 앞에서 성당과 인접한 1구청사, 그리고 그 사이의 네오고딕 양식 종탑까지 함께 프레임에 넣어 파리의 역사적인 건축미를 조화롭게 담을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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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를 위한 재의 수요일 미사 (Messe selon le vœu de Willette)
매년 재의 수요일
그 해에 사망할 예술가들을 위해 봉헌되는 특별 미사이다. 화가 아돌프 빌레트(Adolphe Willette)의 서원에 따라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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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대성당 공식 미사 및 행사 임시 봉헌
2019년 9월 1일부터 노트르담 대성당 복구 완료 시까지
2019년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이후, 대성당의 주요 공식 미사와 행사(예: 성금요일 가시관 경배 예식 등)가 이곳에서 임시로 봉헌되고 있다.
방문 팁
루브르 박물관 바로 맞은편에 위치하여 박물관 방문 전후로 들르기 좋다. 비교적 방문객이 적어 조용히 관람할 수 있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내부에서 초를 봉헌할 경우 현금, 애플페이, 구글월렛 등으로 결제 가능하다.
성당 내부에는 1216년부터 새겨진 명문 등 오랜 역사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2019년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이후 노트르담 대성당의 주요 미사와 행사가 이곳에서 임시로 진행되므로, 특별한 종교 예식에 참여할 기회가 있을 수 있다. (일정 확인 필요)
오르간 연주를 감상할 기회가 있다면 놓치지 않는 것이 좋다. 성당의 오르간은 유서 깊은 악기로 알려져 있다.
역사적 배경
최초 교회 건설 시작
프랑크 왕국의 킬페리쿠스 1세(Chilpéric Ier)의 명으로 성 제르맹에게 봉헌된 교회가 건설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바이킹 침공으로 파괴
파리를 포위한 바이킹(노르만족)에 의해 교회가 파괴되었다.
재건
로베르 2세 경건왕(Robert II le Pieux) 치하에 교회가 재건되었다. 이때부터 '생 제르맹 록세루아'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네스크 양식 종탑 건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부분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이 건설되었다.
서쪽 문과 성모 마리아 예배당 건설
고딕 양식의 서쪽 문(portail occidental)과 성모 마리아 예배당(chapelle de la Vierge)이 건설되었다.
대대적인 재건축 (플랑부아양 고딕 양식)
성가대(14세기), 본당(nef)과 익랑(transept), 그리고 현재의 서쪽 현관(porche occidental, 1431-1439년, 장 고셀 제작) 등이 플랑부아양 고딕 양식으로 재건축 및 신축되었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
성당의 종소리가 신호가 되어 위그노(개신교도)에 대한 대량 학살이 시작되었다. '마리'라는 이름의 종이 이때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부 개조 및 장식
왕실 성당으로서 다양한 내부 개조와 장식 추가 작업이 이루어졌다. 1745년에는 피에르 레스코(Pierre Lescot)가 설계하고 장 구종(Jean Goujon)이 조각한 16세기 로프트 스크린(jubé)이 철거되었다.
수난과 용도 변경
혁명 기간 동안 성당은 약탈당하고 마초 창고, 인쇄소, 경찰서, 초석 공장 등으로 사용되었다. 1795년에는 신앙박애교(culte théophilanthropique) 의식이 거행되기도 했다.
가톨릭 교회로 복귀
종교의 자유가 회복되면서 다시 가톨릭 교회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반달리즘 피해
7월 왕정에 반대하는 폭도들에 의해 성당이 심하게 훼손되었다. 이후 폐쇄되었다가 1837년에 다시 개방되었다.
대규모 복원 작업
건축가 장바티스트 라쉬(Jean-Baptiste Lassus)와 빅토르 발타르(Victor Baltard)의 지휘 아래 대대적인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다.
종탑 및 1구청사 건설
오스만 남작의 파리 개조 계획의 일환으로, 성당 북쪽에 테오도르 발뤼(Théodore Ballu)가 설계한 네오고딕 양식의 종탑과 파리 1구청사(Mairie du 1er arrondissement)가 건설되어 현재의 루브르 광장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노트르담 대성당 임시 역할 수행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이후, 대성당의 주요 미사와 행사를 임시로 봉헌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여담
과거 '예술가들의 본당(paroisse des artistes)'으로 불렸으며, 루브르 궁에 거주하던 많은 화가, 조각가, 시인 등이 묻힌 곳으로 '재능과 천재들의 생드니(Saint-Denis du Génie et Talent)'라는 별칭도 있었다고 한다.
1527년에 제작된 '마리(Marie)'라는 이름의 종은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 당시 실제로 울렸던 종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다는 얘기가 있다.
극작가 몰리에르가 1662년, 프랑스 혁명가 당통이 1787년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며, 훗날 루이 17세가 될 뻔한 왕세자가 프랑스 혁명 직전 첫 영성체를 받은 장소이기도 하다고 전해진다.
19세기 오스만 남작의 파리 개조 계획 당시 철거 위기에 놓였으나, 남작 자신이 프로테스탄트였기에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과 관련된 이 상징적인 건물의 철거 명령을 내리는 것을 꺼렸다는 일화가 있다. 대신 성당과 거의 동일한 파사드를 가진 파리 1구청 건물을 옆에 짓고 그 사이에 종탑을 세워 건축적 균형을 맞추었다는 설이 있다.
성당 외벽, 특히 생트 주느비에브 예배당(Chapelle Sainte-Geneviève, 현재의 묘지 예배당 Chapelle du Tombeau) 주변에는 1505년 이 예배당의 건축 자금을 지원한 부유한 포목상 장 트롱송(Jehan Tronson)의 요청으로 그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잉어 토막(tronçons de carpes) 조각이 새겨져 있어 독특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언급이 있다.
성당의 오르간은 원래 생트 샤펠(Sainte-Chapelle)에 있던 것으로, 1791년 프랑스 혁명 시기에 옮겨와 설치된 것이라고 한다. 이후 여러 차례 개조와 복원을 거쳤다.
화가 클로드 모네는 1867년 루브르의 창문에서 이 성당을 그렸는데, 당시 막 건설된 신고딕 양식의 종탑은 그림에 포함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대중매체에서
생 제르맹 록세루아 (Saint-Germain-l'Auxerrois)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가 루브르 궁의 창문과 콜로네이드에서 바라본 생 제르맹 록세루아 성당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이 그림에는 당시 신축된 신고딕 양식의 종탑이 의도적으로 제외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세 개의 교회와 세 원시인 (Trois Églises et trois primitifs) 중 '생 제르맹 록세루아'
프랑스 작가 조리스카를 위스망스(Joris-Karl Huysmans)가 그의 저서 '세 개의 교회와 세 원시인'의 두 번째 부분에서 이 성당의 건축, 역사, 예술품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했다.
장교와 스파이 (J'accuse)
로만 폴란스키(Roman Polanski) 감독의 드레퓌스 사건을 다룬 영화 '장교와 스파이'의 일부 장면이 이 성당에서 촬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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