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로, 역사, 건축, 예술에 관심 있는 방문객이나 조용하고 성스러운 분위기를 찾는 이들이 주로 방문한다. 특히 6세기부터 이어져 온 유서 깊은 공간과 로마네스크 및 고딕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건축미를 직접 확인하려는 이들의 발길이 잦다.
방문객들은 다채로운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내부, 특히 별이 빛나는 듯한 푸른색 천장을 감상할 수 있으며, 르네 데카르트의 묘를 찾아볼 수도 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클래식 콘서트를 통해 특별한 음향 경험을 하거나, 단순히 평화로운 공간에서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콘서트 티켓 구매 시 현금 결제만 가능한 경우가 있어, 특히 외국인 방문객에게는 불편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접근 방법
🚇 지하철
- 파리 메트로 4호선 생제르맹 데 프레(Saint-Germain-des-Prés) 역에서 하차하면 바로 교회 앞에 도착한다.
교회가 지하철역 출구와 매우 가까워 대중교통 접근성이 뛰어나다.
🚌 버스
- 다수의 파리 시내버스 노선(예: 27, 89, 67, 83번 등)이 교회 근처를 경유한다.
주요 특징
성당 내부는 벽화와 기둥 장식으로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으며, 특히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연상시키는 푸른색 아치형 천장은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19세기 복원 과정에서 히폴리트 플랑드랭의 지휘 아래 제작된 이 장식들은 중세 교회의 분위기를 재현하고자 했다.
운영시간: 교회 개방 시간 내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서 메로빙거 왕조의 매장지였으며, 현재는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의 묘가 측면 예배당 중 하나에 안치되어 있어 많은 이들이 찾는다.
운영시간: 교회 개방 시간 내
교회는 정기적으로 클래식 음악 콘서트 장소로 활용되며,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 연주와 함께 성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다양한 시대의 음악 프로그램이 연주된다.
운영시간: 콘서트 일정에 따라 다름
추천 포토 스팟

푸른색 별자리 천장 아래 중앙 통로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푸른색 천장을 배경으로 성당 내부의 웅장함과 신비로운 분위기를 담을 수 있다.

르네 데카르트 묘비 앞 (측면 예배당)
위대한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의 마지막 안식처에서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다.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서쪽 입구 기둥
정교하게 조각된 하피 등 중세 시대의 석조 장식을 가까이에서 촬영하며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담을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교회에서 열리는 클래식 콘서트 관람 시, 티켓 결제는 현금만 가능할 수 있으므로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다른 유명 관광지에 비해 비교적 대기 줄이 없거나 짧아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자원봉사자가 진행하는 가이드 투어를 이용하면 교회의 역사와 건축, 예술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영어 가능 여부 및 시간 확인 필요).
내부의 오래된 프레스코화와 스테인드글라스는 조명이 어두울 수 있으니, 사진 촬영 시 유의해야 한다.
역사적 배경
수도원 설립
프랑크 왕국의 힐데베르트 1세가 성 빈센트의 튜닉과 성십자가 조각을 보관하기 위해 베네딕토회 수도원으로 설립. 파리 주교 성 제르맹이 초대 수도원장이 됨.
명칭 변경 및 재건
성 제르맹 주교의 이름을 따 '생 제르맹 데 프레'로 개칭. 바이킹의 침입으로 파괴된 후 재건됨.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재건
현재의 종탑 하부, 본당 신랑(네이브)과 익랑(트랜셉트)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설됨.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건축 요소 중 하나로 여겨짐.
고딕 양식 도입
성가대석(콰이어)이 초기 고딕 양식으로 재건되었으며, 12세기 말에는 일드프랑스 지역 최초로 플라잉 버트레스가 도입됨.
교황 알렉산데르 3세의 축성
새롭게 단장된 교회를 교황 알렉산데르 3세가 직접 축성함.
부속 건물 확장
피에르 드 몽트뢰유의 설계로 '성모 예배당(Lady Chapel)' 등 수도원의 다른 건물들이 점차 재건됨.
서쪽 포털 교체
12세기에 만들어진 서쪽 포털이 붕괴된 후, 현재의 고전주의 양식 포털로 교체됨.
프랑스 혁명기 수난
수도원이 폐쇄되고 건물은 화약 및 무기 저장고로 사용됨. 특히 초석 정제소로 쓰이던 일부가 폭발하여 심각한 손상을 입음. 1792년 9월에는 수도원 감옥에서 '9월 학살'이 벌어짐.
교회로 반환
혁명 이후 가톨릭교회에 공식적으로 반환되어 본래 기능을 회복함.
대대적인 복원 및 재장식
빅토르 발타르와 히폴리트 플랑드랭 등의 주도로 대대적인 복원 작업이 이루어짐. 플랑드랭은 구약성서 장면을 묘사한 다채로운 프레스코화를 제작하여 내부를 장식함.
역사 기념물 지정
프랑스 역사 기념물로 공식 지정됨.
현대적 복원 작업
본당 신랑의 19세기 프레스코화 복원을 시작으로, 주보랑과 부속 예배당의 그림 복원 등 대규모 내부 복원 프로젝트가 진행됨.
여담
생 제르맹 데 프레라는 이름은 '들판(Prés)의 성 제르맹'이라는 뜻으로, 교회가 처음 세워질 당시 파리 성벽 바깥쪽 센 강 좌안의 넓은 초원 지대에 위치했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프랑스 혁명 기간 동안 교회는 화약 및 무기 저장고로 사용되었는데, 초석(질산칼륨) 정제 작업 중 발생한 폭발 사고로 인해 건물 일부가 심각하게 손상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현재 교회 내부 기둥머리 장식의 상당수는 19세기 복원 과정에서 중세 원본을 바탕으로 새롭게 제작된 것이며, 일부 원본은 파리 클뤼니 중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 외에도 폴란드 왕이었던 얀 2세 카지미에시 바사의 심장이 이곳에 안치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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