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바로크 양식 건축의 정수를 감상하거나 종교적 의미를 되새기려는 예술 및 역사 애호가, 혹은 블루아 성 방문 전후로 잠시 평온한 시간을 갖고자 하는 개인 여행자들이 주로 찾는다.
정교한 스테인드글라스와 벽화,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 등 내부의 화려한 장식을 세세히 살펴볼 수 있으며, 조용히 기도하거나 명상하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건축물의 역사적 배경과 예술적 가치를 탐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접근 방법
🚌 버스 이용
- 블루아 시내버스 A, B, C, D, E, F, G, N1, N2 노선 이용
- '샤토(Château)' 또는 '몽사브레(Monsabré)'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 이동 가능
주요 특징
17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 내부로 들어서면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과 다채로운 빛을 쏟아내는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높은 천장과 섬세한 조각들은 당시 건축 기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성당 입구 위쪽에 설치된 거대한 목조 파이프 오르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정교한 조각과 장식으로 꾸며져 있으며, 교회의 음향적, 시각적 중심 역할을 한다.
성당 내부에는 가스통 도를레앙 공작을 기리는 기념물 등 역사적 의미를 지닌 여러 조각상과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섬세한 인물 표현과 종교적 알레고리를 통해 당시의 예술과 신앙을 엿볼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성당 정면 파사드
예수회 양식의 3층 구조로 이루어진 웅장한 바로크 양식의 외관 전체를 담을 수 있다. 왕가의 상징인 백합 문양과 왕관 장식도 함께 촬영할 수 있다.
내부 중앙 제단과 앱스
붉은 대리석 기둥과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된 바로크 양식의 중앙 제단과 5면으로 구성된 앱스의 아름다움을 촬영할 수 있다. 성체 조배를 위한 성광도 주요 피사체이다.
파이프 오르간과 후면 장식
입구 상단에 위치한 정교한 파이프 오르간과 스투코 장식으로 뒤덮인 벽면 전체를 한 프레임에 담아낼 수 있다. 오르간의 세밀한 장식과 파이프의 배열이 인상적이다.
방문 팁
입장료는 무료이다.
블루아 성으로 가는 길에 함께 방문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
성당 앞 공원과 정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사진을 찍기에도 좋다.
역사적 배경
예배당 건설 명령
프랑스 왕 앙리 3세가 블루아에 새로 설립할 대학을 위한 부속 예배당 건설을 명령했다.
예수회 인수
블루아 시 유지들의 요청으로 예수회가 대학 운영권을 인수했다.
예배당 건설 시작
예수회 건축가 에티엔 마르텔랑주의 설계에 따라 생 루이 예배당(후일 생 뱅상 드 폴 성당) 건설이 시작되었다.
외부 공사 완료
샤를 튀르멜의 감독 하에 건물 외부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가스통 도를레앙 공작의 지원
당시 블루아에 망명 중이던 오를레앙 공작 가스통이 건물 완공을 위한 자금을 지원하여 공사가 가속화되었다.
공작 기념물로 전환
예배당은 가스통 공작과 그의 가족을 기리는 기념물 성격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내부 장식 완료
가스파르 앵베르가 가스통 공작의 기부금 덕분에 내부 장식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했다.
예수회 추방
예수회가 프랑스에서 추방되면서 왕립 대학과 예배당의 운영권을 상실했다.
수난의 시기
예배당은 '자유의 신전'으로 개조되었다가 군수품 창고, 마초 창고 등으로 사용되었다. 1793년에는 구체제와 관련된 모든 상징물 파괴 명령이 내려져 약탈당했다.
생 뱅상 드 폴 성당으로 명명
예배 장소로 다시 복원되면서 생 뱅상 드 폴 성당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일시적 개명
성당 이름이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성당'으로 잠시 변경되기도 했다.
복원 공사
건축가 쥘 드 라 모랑디에르의 주도로 대대적인 복원 공사가 진행되어 1873년에 완료되었다.
역사 기념물 지정
프랑스 정부에 의해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 역사 기념물(Monument Historique)로 공식 지정되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성당이 위치한 블루아 지역이 '쉴리 쉬르 루아르와 샬론 사이의 발 드 루아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성당도 그 일부로 포함되었다.
여담
원래 블루아 예수회 대학의 생 루이 예배당(chapelle Saint-Louis)으로 건립되었으며,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본당 사목 성당이 되어 생 뱅상 드 폴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예수회 전통에 따라 성당은 정북향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 건축학적 특징으로 언급된다.
성당 건설에 큰 재정적 기여를 한 가스통 도를레앙 공작의 심장이 한때 이곳에 안치되었으나, 프랑스 혁명 중인 1793년에 심장을 담았던 항아리가 깨지고 심장은 내던져졌다는 안타까운 일화가 전해진다.
프랑스 혁명 당시 '자유의 신전'으로 개조되었다가 이후 마초 창고로 사용되는 등 수난을 겪기도 했다는 언급이 있으며, 이때 측면 예배당, 대리석 모자이크 바닥, 성가대석 칸막이, 폴란드 공주 무덤 등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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