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독특한 무어리시 리바이벌 건축 양식의 역사적인 건물을 감상하고, 콘서트나 연극 등 다채로운 공연을 친밀한 분위기에서 경험하고 싶은 건축 애호가 및 문화 예술 관람객들이 주로 찾는다.
이곳에서는 아름다운 스투코 장식으로 꾸며진 과거 카라이트 케네사의 천장과 실내를 둘러볼 수 있으며, 클래식 음악부터 실험극까지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거나 때때로 열리는 미술 전시 및 문학 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공연장 좌석이 평평하여 뒷자리에서는 시야 확보가 어렵고, 시설 일부가 노후되었다는 점을 아쉬움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접근 방법
🚇 지하철 이용
- 키이우 지하철 3호선(M3, 녹색선) 졸로티 보로타(Золоті ворота, Golden Gates) 역에서 하차 후 도보 약 5분 거리에 위치한다.
졸로티 보로타(황금문)에서 매우 가깝다.
주요 특징
과거 카라이트 유대교 회당이었던 이 건물은 저명한 건축가 블라디슬라프 호로데츠키가 설계한 무어리시 리바이벌 양식의 외관과 이탈리아 조각가 에밀리오 살라의 아름다운 스투코 장식으로 꾸며진 정교한 천장을 특징으로 한다. 현재는 돔이 소실되었으나, 독특한 건축미는 여전히 남아있다.
콘서트, 연극, 미술 전시, 문학 행사 등 다양한 문화 예술 공연이 열리는 곳으로, 아늑하고 친밀한 분위기 속에서 공연을 즐길 수 있다. 덜 알려진 예술가들의 실험적인 무대도 종종 만날 수 있다.
운영시간: 공연 일정에 따름
방문객들로부터 음향 상태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곳으로, 특히 클래식 음악이나 악기 연주 감상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한다. 소규모 홀임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소리를 경험할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건물 정면 외관
독특한 무어리시 리바이벌 양식의 건축 디테일을 담을 수 있는 지점이다. 특히 입구 주변의 장식이 인상적이다.
공연장 내부 천장
과거 케네사 시절의 정교한 스투코 장식이 남아있는 아름다운 천장을 촬영할 수 있다. 공연 시작 전이나 후에 조명이 밝을 때가 좋다.
방문 팁
연극 관람 시 시야 확보를 위해 가급적 앞쪽 열의 좌석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클래식 음악 공연의 경우, 좋은 음향 시설 덕분에 만족스러운 감상이 가능하다는 평이 많다.
건물 자체가 역사적 가치가 있으므로 공연 전후로 독특한 건축 양식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때때로 무료 공연이나 행사가 열리기도 하니, 방문 전 공식 웹사이트에서 현재 진행 중인 프로그램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내부 시설 중 일부는 오래되었을 수 있으며, 특히 겨울철에는 공연장이 다소 추울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역사적 배경
카라이트 케네사 건축
카라이트 유대교 회당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축가 블라디슬라프 호로데츠키의 설계로 건축되었다. 건축 비용은 솔로몬 코겐과 모세 코겐 형제가 후원했다.
케네사 봉헌
타우리아 및 오데사 하캄 사무엘 팜풀로프 주관으로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용도 변경
교육 기관에 넘겨졌으며, 이로 인해 역설적으로 내부 장식이 보존될 수 있었다.
수난과 훼손
독일 점령기에는 잠시 로마 가톨릭 예배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으나, 나치에 의해 모독당하고 원래의 돔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다양한 용도로 활용
인형극장, 1952년부터는 영화관으로 사용되었다.
증축
현대적인 건물이 추가되었다.
배우의 집 개관
우크라이나 배우의 집으로 개조되어 현재까지 공연, 전시 등 다양한 문화 예술 활동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소유권 유지
우크라이나 독립 후에도 다른 많은 시나고그와 달리 카라이트 공동체에 반환되지 않았다.
여담
이 건물의 원래 명칭은 '카라이트 케네사'로, 카라이트 유대교인들의 예배당이었다는 얘기가 있다.
건물을 설계한 블라디슬라프 호로데츠키는 폴란드 출신의 로마 가톨릭 신자였으며, 키이우에 '고로데츠키 하우스(키메라의 집)' 등 여러 유명 건축물을 남긴 인물로 알려져 있다.
건축에 사용된 스투코 장식은 이탈리아 조각가 에밀리오 살라의 작품이며, 당시로서는 고가였던 시멘트가 재료로 사용되었다는 언급이 있다.
건축 자금은 '남서부 지방의 담배왕'으로 불렸던 솔로몬 코겐과 그의 형제 모세 코겐이 후원했다고 전해진다. 솔로몬 코겐은 1897년 마비 증세를 겪었음에도 사업을 계속 관리했으며, 1900년 사망 시 유언으로 케네사 완공을 위한 자금을 남겼다고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에 의해 건물이 훼손되면서 원래 구조의 일부였던 웅장한 돔이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얘기가 있다.
소련 시절 교육기관으로 사용된 덕분에 오히려 독특한 내부 장식이 잘 보존될 수 있었다는 아이러니한 측면도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기오염과 반복적인 도색으로 인해 건물 외벽의 색이 어두워졌지만, 초기 수십 년간은 훨씬 밝은 색조였다는 언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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