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드니프로 강의 웅장한 경관과 함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나 자연 풍경을 즐기려는 방문객들이 주로 찾는다.
요새의 남은 토루와 성벽 잔해를 따라 산책하며 과거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고, 드니프로 강과 인근 채석장의 아름다운 전망을 감상하며 사진을 촬영하거나 피크닉을 즐길 수도 있다.
요새 자체의 유적은 대부분 파괴되어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고, 일부 방문객들은 주변의 쓰레기 문제나 관리 미흡을 지적하기도 한다.
접근 방법
🚌 대중교통 이용
- 드니프로 시내(기차역 근처 등)에서 109번 버스를 탑승한다.
- 종점(тупик)에서 하차한 후,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도보로 약 10분 이동하면 도착할 수 있다.
🚗 자가용 이용
- 드니프로 국제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 요새 입구 근처에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일부 접근 도로나 요새 내부 도로는 비포장 상태일 수 있으므로 운전에 유의해야 한다.
주요 특징
요새가 위치한 높은 지대에서는 드니프로 강과 주변 채석장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특히 해 질 녘 풍경이 인상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비록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남아있는 요새의 토루와 일부 성벽 잔해, 그리고 코사크 관련 기념비를 통해 이곳의 역사적 중요성을 느낄 수 있다. 안내판을 통해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넓은 공간과 아름다운 자연환경 덕분에 피크닉, 산책, 자전거 타기, 낚시 등 다양한 야외 활동을 즐기기에 적합하다. 여름철에는 채석장에서 수영하는 사람들도 있다.
추천 포토 스팟
요새 정상에서 바라보는 드니프로 강 뷰
드니프로 강의 넓은 물줄기와 주변 자연 경관을 파노라마로 담을 수 있다.
채석장 절벽과 에메랄드 빛 물
과거 채석장이었던 곳의 독특한 절벽 지형과 맑은 물빛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코사크 기념비 주변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기념비를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방문 팁
피크닉을 즐기기에 좋은 장소이나, 음식과 음료는 미리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인근에 상점이 거의 없다.
여름철에는 채석장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으나, 안전에 유의해야 하며 별도의 안전시설은 없다.
일부 지역에 뱀이 출현한다는 언급이 있으니, 풀숲을 다닐 때 주의하는 것이 좋다.
자전거를 이용하면 넓은 요새 부지와 주변을 둘러보기에 편리하다.
쓰레기통이 부족하거나 관리가 미흡할 수 있으므로, 발생한 쓰레기는 되가져가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 의해 최초 건설
스타니스와프 코니에츠폴스키의 지휘 하에 자포리자 코사크 통제 및 국경 방어 목적으로 프랑스 기술자 기욤 르 바쇠르 드 보플랑이 설계하여 건설되었다. 건설 직후 이반 술리마가 이끄는 코사크 군에게 점령 및 파괴되었다.
재건 및 확장
독일 기술자 프리드리히 게트칸트에 의해 기존보다 3배 큰 규모로 재건되었다. 가톨릭 교회, 수도원, 정교회 등이 포함되었다.
흐멜니츠키 봉기 중 코사크에 항복
크시슈토프 그로드지츠키의 지휘 하에 7개월간의 포위 공격 끝에 보흐단 흐멜니츠키가 이끄는 코사크 군에게 항복했다.
페레야슬라프 조약 이후 코사크 관할
페레야슬라프 조약 이후 코사크 군이 주둔하며 관리했다.
프루트 조약으로 러시아에 의해 파괴
오스만 제국과의 프루트 조약 조건에 따라 표트르 1세에 의해 파괴되었다.
흐멜니츠키 기념비 건립
역사가 드미트로 야보르니츠키의 주도로 보흐단 흐멜니츠키의 요새 점령을 기념하는 비석이 요새 유적지에 세워졌다.
소비에트 정부의 채석장 개발
소비에트 정부는 폴란드 영향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요새 자리에 화강암 채석장을 개발하여 요새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다.
채석장 폐쇄
채석장 운영이 중단되었으나, 이미 요새의 약 3분의 2가 파괴된 상태였다.
여담
요새의 이름 '코닥'은 드니프로 강의 급류 중 하나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최초 요새 건설 당시 프랑스인 장교 장 드 마리옹이 이끄는 수비대가 주둔했으나 코사크의 공격으로 전멸했으며, 마리옹은 화약에 덮여 불태워져 드니프로 강에 던져졌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1910년에 세워진 흐멜니츠키 기념비에는 폴란드 수비대가 1648년 4월 24일에 항복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 항복일은 1648년 10월 1일이었다는 언급이 있다.
소련 시절 요새 자리에 채석장이 들어서면서 요새의 많은 부분이 의도적으로 파괴되었는데, 이는 우크라이나 내 폴란드의 영향을 지우려는 목적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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