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영국 초기 기독교 역사의 중요한 흔적을 직접 탐방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려는 역사 애호가 및 유적지 탐방객들이 주로 찾는다.
광대한 수도원 유적지를 거닐며 과거의 건축 양식을 상상해 볼 수 있고, 방문자 센터의 전시물을 통해 수도원의 역사를 배울 수 있으며,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각 장소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입장료에 비해 실제 남아있는 유적의 규모나 시각적인 볼거리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있으며, 일부 방문객은 오디오 가이드 없이 방문할 경우 단순한 폐허로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한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 수도원 자체 주차장은 없으나, 길 건너편 롱포트(Longport) 유료 주차장 등 인근 공영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
주차 요금은 시간당 부과될 수 있다.
🚂 기차 이용
- 캔터베리 이스트(Canterbury East)역 또는 캔터베리 웨스트(Canterbury West)역에서 하차 후 도보 또는 버스로 이동 가능하다.
- 캔터베리 웨스트역이 시내 중심과 더 가깝다.
🚌 버스 이용
- 캔터베리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로 약 10~15분 소요된다.
주요 특징
598년에 설립된 영국 초기 기독교의 중심지였던 베네딕토회 수도원의 광대한 유적을 직접 거닐며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로마네스크 및 고딕 양식의 교회 터, 회랑, 왕족 및 대주교들의 무덤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입구에 마련된 박물관에서는 발굴된 다양한 유물과 상세한 역사 자료를 통해 수도원의 설립부터 해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변천사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일부 유물은 직접 관찰 가능하다.
무료로 제공되는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하여 각 유적지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더욱 풍부한 관람을 할 수 있다. 일부 방문객은 VR 헤드셋을 통해 과거 수도원의 웅장했던 모습을 체험할 수 있었다는 언급이 있다.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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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언덕 위
수도원 유적 전체와 함께 멀리 보이는 캔터베리 대성당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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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판크라스 교회 유적
수도원 부지 내에 위치한 앵글로색슨 시대의 성 판크라스 교회 유적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입장권은 온라인으로 사전 예매 시 15% 할인을 받을 수 있으며, 잉글리시 헤리티지 회원은 무료로 입장 가능하다.
무료로 제공되는 오디오 가이드를 활용하면 유적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수도원 부지가 넓고 대부분 야외이므로 날씨에 맞는 복장과 편안한 신발 착용이 권장된다.
반려견 동반이 가능하나(목줄 착용 필수), 방문 시기나 특정 구역의 제초제 살포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이 좋다.
수도원으로 향하는 길에 자전거 도로와 보행로가 혼재되어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는 언급이 있다.
캔터베리 대성당, 성 마틴 교회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어 함께 둘러보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수도원 설립
캔터베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수도원으로 설립되었다. 앵글로색슨족의 기독교 개종을 위한 중심지 역할을 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재봉헌
캔터베리 대주교 던스탄에 의해 기존의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에 더해 성 아우구스티누스에게도 봉헌되며, 이후 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으로 알려지게 된다.
노르만 양식으로 재건축
노르만 정복 이후 기존의 앵글로색슨 양식 건물들이 허물어지고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규모 수도원으로 재건축되었다.
대화재 발생
대화재로 인해 수도원의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고, 이후 재건축이 이루어졌다.
파인던 게이트 건설
애봇 파인던에 의해 현재의 정문 격인 파인던 게이트(Fyndon's Gate)가 건설되었다.
수도원 해산
헨리 8세의 수도원 해산령에 따라 수도원은 해산되고 왕실 재산으로 귀속되었다. 이후 일부 건물은 왕실 거주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쇠퇴와 철거
왕실 소유 이후 여러 귀족에게 임대되거나 소유권이 이전되면서 점차 철거되고 방치되어 폐허로 변해갔다. 일부 석재는 다른 건물의 건축 자재로 사용되었다.
복원 및 선교 대학 설립
알렉산더 제임스 베레스퍼드 호프가 폐허가 된 수도원 부지를 매입하여, 선교사 양성을 위한 성 아우구스티누스 칼리지(St Augustine's Missionary College)를 설립하고 일부 건물을 복원했다.
독일군 공습 피해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군의 공습으로 대학 건물들이 심하게 파손되었다.
유적 보존 및 관리
수도원 유적은 정부의 보호를 받게 되었으며, 현재 잉글리시 헤리티지(English Heritage)에서 관리하고 있다. 1988년 캔터베리 대성당, 성 마틴 교회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여담
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은 원래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에게 봉헌되었으나, 설립자인 캔터베리의 아우구스티누스가 사망한 후 그의 이름을 따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한때 켄트 왕국의 왕들과 여러 초기 대주교, 그리고 수도원장들의 주요 매장지로 사용되었던 중요한 장소이다.
헨리 8세의 수도원 해산령 이후, 수도원의 일부는 왕실 거주지로 개조되었으며, 그의 네 번째 부인이었던 앤 오브 클리브즈에게 주어지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9세기 중반, 부유한 지주이자 독실한 교회 신자였던 알렉산더 제임스 베레스퍼드 호프가 폐허가 된 이곳을 사들여 선교사 양성을 위한 대학으로 복원시켰다.
수도원의 정문인 파인던 게이트(Fyndon's Gate) 위층의 방은 과거 수도원의 귀빈용 침실이었으며, 1625년 찰스 1세와 헨리에타 마리아 왕비가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이곳에서 첫날밤을 보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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