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장엄한 고대 유적과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함께 감상하며 역사 탐방을 즐기려는 역사 애호가나 특별한 경험을 추구하는 개인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다.
방문객들은 아크로폴리스에 올라 탁 트인 계곡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정교하게 조각된 암벽 무덤들을 탐험하거나, 잘 보존된 극장과 경기장 유적을 통해 고대 도시의 생활상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일부 유적 구역(극장, 목욕탕 등)이 보수 공사나 발굴 작업으로 인해 접근이 제한되는 경우가 있으며, 그늘이 부족하여 더운 날씨에는 관람에 어려움이 있다는 언급이 있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 페티예에서 동쪽으로 약 35~40km 거리에 위치하며, 차량으로 약 1시간 정도 소요된다.
- 올루데니즈에서는 약 1시간 정도 소요될 수 있다.
- 주요 도로와 지방도를 이용하여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지정된 주차 공간이 부족하여 도로변의 안전한 곳에 주차해야 할 수 있다.
🚕 택시 이용
- 대중교통 접근이 용이하지 않아 택시를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 대중교통 및 투어
- 유적지까지 직접 연결되는 대중교통편은 찾기 어려울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일부 여행자들은 페티예 지역에서 출발하는 조직된 투어 프로그램을 통해 방문하기도 한다.
주요 특징
도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아크로폴리스에서는 크산토스 계곡과 주변 산들의 숨 막히는 360도 파노라마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리키아 시대부터 오스만 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대의 요새 흔적을 탐험하며 역사의 층위를 느낄 수 있으며,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일부 험할 수 있다.
언덕 경사면에 조각된 수많은 리키아 시대 암벽 무덤들은 당시의 장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전설적인 영웅 벨레로폰과 그의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가 묘사된 것으로 알려진 무덤은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일부 무덤은 내부 접근 시 주의가 필요하다.
로마 시대에 건설된 극장은 상당 부분 잘 보존되어 있어 당시의 건축 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 인근의 경기장은 2,5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규모로, 고대 도시의 사회 및 오락 활동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주나, 현재 일부 구역은 복원 공사로 접근이 제한될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아크로폴리스 정상
크산토스 계곡과 주변 산맥을 배경으로 한 파노라마 사진 촬영에 최적의 장소이다. 특히 해 질 녘 풍경이 아름답다는 이야기가 있다.
벨레로폰 무덤 전면
독특한 사원 형태의 무덤과 페가수스 부조를 함께 담을 수 있는 대표적인 포토존이다.
로마 시대 극장 객석 상단
웅장한 극장 전체 구조와 멀리 보이는 산세를 함께 프레임에 담을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입장료 결제는 현금만 가능하니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유적지 내 또는 입구 근처 간이 매점에서 신선한 오렌지 주스, 석류 주스나 괴즐레메와 같은 간단한 터키식 간식을 구입할 수 있다.
여름철에는 햇볕이 강하고 그늘이 부족하므로 충분한 물을 휴대하고 모자, 선크림 등으로 자외선 차단에 신경 써야 한다.
유적지 대부분이 비포장이고 경사가 있으며 돌길이 많으므로, 미끄럽지 않고 편안한 신발 착용은 필수적이다.
유적지 내부에 화장실 시설이 있으며, 비교적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방문객들의 언급이 있다.
간혹 현지 주민 중 유적 발굴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안내를 제공하기도 하므로, 특별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
역사적 배경
도시 형성 시작
히타이트 문헌에 '달라와(Dalawa)'로, 리키아 비문에는 '틀라와(Tlawa)'로 기록된 리키아의 가장 오래되고 큰 도시 중 하나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페르시아 제국 점령
하르파고스가 이끄는 페르시아 군에 의해 점령되었으나, 페르시아 통치 하에서도 번영을 누렸다.
리키아 연맹 주요 도시 및 로마로부터 자치권 획득
헬레니즘 시대 리키아 연맹의 6대 주요 도시 중 하나로 중요성을 인정받았으며, 로마로부터 로도스에 대한 종속 대신 자치권을 부여받았다.
번영기
'리키아 민족의 매우 빛나는 대도시(very brilliant metropolis of the Lycian nation)'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중요성을 유지했으며, 극장, 목욕탕, 경기장 등 주요 건축물이 이 시기에 건설되거나 확장되었다.
대지진 발생
두 차례의 대지진으로 도시의 많은 기념물이 파괴되었으나, 로디아폴리스의 오프라모아스와 같은 부유한 독지가들의 후원으로 재건 작업이 이루어졌다.
기독교 중심지
기독교 주교구가 설치되어 미라의 대주교 관할 하에 있었으며, 여러 공의회에 대표를 파견했다. 일부 로마 시대 건물은 교회 등으로 용도가 변경되기도 했다.
요새 건설
아크로폴리스의 기존 요새 기초 위에 지방 봉건 영주 '칸르 알리 아아(Kanlı Ali Ağa, 피의 알리 추장)'를 위한 요새가 건설되었다.
서양에 재발견
영국의 고고학자이자 탐험가인 찰스 펠로우즈(Charles Fellows)에 의해 재발견되어 서양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정규 발굴 조사
학제간 연구팀에 의해 정규적인 발굴 조사가 진행 중이며, 매년 새로운 유물과 유적이 발견되어 리키아 문명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여담
틀로스는 신화 속 영웅 벨레로폰과 그의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가 살았던 도시로 전해지며, 네크로폴리스의 왕릉 형태 무덤 중 하나가 벨레로폰에게 봉헌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고대 리키아인들은 틀로스를 '틀라와(Tlawa)'라고 불렀으며, 히타이트 기록에는 '달라와(Dalawa)'로 언급되어 기원전 15세기 후기 청동기 시대부터 중요한 도시였음을 보여준다는 기록이 있다.
틀로스의 시민들은 '데메(deme)'라는 사회적 하위 단위로 나뉘었으며, 그중 벨레로폰, 이오바테스, 사르페돈 등 유명한 리키아 전설 속 영웅들의 이름이 알려져 있다.
141년 대지진 이후 도시 재건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한 오프라모아스는 로디아폴리스 출신의 자선가로, 틀로스 외에도 여러 리키아 도시에 기부한 것으로 유명했다고 전해진다.
틀로스에는 유대인 공동체가 존재했으며, 자체적인 행정관을 두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9세기 탐험가 토마스 에이블 브리메이지 스프랫은 틀로스를 보고 "모든 리키아에서 위대한 도시를 위해 이보다 더 웅장한 장소를 선택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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