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후기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혼합된 12세기 건축물과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감상하고, 뇌샤텔 시내와 호수의 탁 트인 전망을 즐기려는 역사 및 건축 애호가, 그리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장소에서 휴식을 원하는 방문객들이 주로 찾는다.
내부의 웅장한 공간과 정교한 장식을 둘러볼 수 있으며, 특히 뇌샤텔 백작과 백작 부인들의 기념비(세노타프)를 통해 중세 조각 예술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교회 주변과 잘 보존된 회랑을 거닐며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최근 복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역사나 내부 유물(세노타프, 오르간 등)에 대한 안내 정보가 부족하다는 언급이 있다.
접근 방법
🚶 도보
- 뇌샤텔 구시가지 중심부 또는 뇌샤텔 성(Château de Neuchâtel)에서 도보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 뇌샤텔 기차역에서는 약 15-20분 정도 소요되며, 언덕길을 올라야 한다.
계단과 포장된 길이 있으며, 일부 구간은 경사가 있다.
🚌 대중교통
- 뇌샤텔 시내버스 노선 중 일부가 교회 인근까지 운행한다.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 및 노선은 현지 교통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다채로운 색상의 지붕 타일과 로마네스크 및 고딕 양식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외관을 감상하고, 교회 언덕에서 뇌샤텔 시내와 호수의 빼어난 전망을 즐길 수 있다. 특히 맑은 날에는 알프스 산맥까지 조망 가능하다.
교회 내부에 들어서면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창(일부는 근대 복원 시 제작)과 푸른색 별이 그려진 천장 등 웅장하면서도 평온한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다. 특히 14세기 작품인 뇌샤텔 백작과 백작 부인들의 **기념비(세노타프)**는 다색으로 채색된 정교한 조각상들로 이루어져 중세 예술의 걸작으로 꼽힌다.
잘 보존된 **고딕 양식의 회랑(클로이스터)**과 교회 주변의 정원은 평화로운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아름다운 아치와 조용한 안뜰은 중세 건축의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산책하거나 사색에 잠기기에 좋다.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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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앞 광장 및 성벽 위
교회 첨탑과 함께 뇌샤텔 호수 및 시내 전경을 파노라마로 담을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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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샤텔 백작 기념비(세노타프) 앞
교회 내부에 위치한 다색 조각상들로 이루어진 정교한 세노타프는 역사적 가치와 예술성을 동시에 담을 수 있는 촬영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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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클로이스터) 내부
아름다운 아치와 정원이 어우러진 회랑은 고요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인물 사진이나 건축 사진을 남기기에 좋다.
방문 팁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통로가 마련되어 있다.
교회 주변에 벤치가 있어 호수와 마을의 경치를 감상하며 휴식을 취하거나 피크닉을 즐기기 좋다.
뇌샤텔 백작과 백작 부인들의 기념비(세노타프)는 'Monumentissimo!' 증강현실 앱을 통해 더욱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일요일 예배 시간에는 재능 있는 오르가니스트의 오르간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역사적 배경
건축 시작
뇌샤텔 백작 울리히 2세와 그의 부인 베르타의 주도로 공사가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성가대석, 후진, 트랜셉트 하부 등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주요 공사 완료
신랑 서쪽 박공과 현관 등이 완공되며 주요 구조가 완성되었다. 이후 건축 양식은 부르고뉴 양식에 가까워지며 지붕에는 유약 기와가 사용되었다. 상부와 회랑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헌당식
교회가 봉헌되었다.
뇌샤텔 백작 기념비(세노타프) 건립
루이 드 뇌샤텔 백작이 자신과 가족을 기리기 위해 14개의 다색 조각상과 1개의 단색 조각상으로 이루어진 기념비를 제작했다.
종교개혁
기욤 파렐의 영향으로 뇌샤텔 시민들이 종교개혁을 받아들였다. 성당 내부의 제단, 그림, 조각상 등이 파괴되는 성상 파괴 운동이 일어났다.
레오 샤틀랭의 복원
북쪽 탑이 건설되고, 양 탑에 첨탑이 추가되는 등 신고딕 양식으로 대대적인 복원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기존 지붕('소화기' 형태)이 교체되고 서쪽 장미창이 새로 만들어졌다.
대규모 복원
회랑을 포함한 건물 내외부에 대한 광범위한 복원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 기간 동안 고고학적 발굴도 이루어졌다.
여담
원래 노트르담(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가톨릭 성당이었으나, 1530년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교회로 바뀌었다는 얘기가 있다.
교회 건설 초기에는 6명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12명의 수도사(chanoines)가 봉사했다는 언급이 있다.
교회 건설 당시의 수도사였던 성 기욤(Saint Guillaume, 1232년 사망)은 사산아를 세례받을 시간 동안 되살린 기적으로 숭배받았으며, 그의 신앙은 종교개혁 때까지 이어졌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19세기 복원 과정에서 교체된 원래의 가고일(gargoyles)은 뇌샤텔 미술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현재 탑에 설치된 것은 장식용으로 물이 배수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교회 앞 광장에는 종교개혁가 기욤 파렐의 동상이 서 있는데, 그는 뇌샤텔에 종교개혁을 도입한 핵심 인물로 알려져 있다.
17세기에는 반가톨릭 정서로 인해 시의회가 남아있던 벽화를 지우고 남쪽 문 팀파눔의 성모 마리아와 기증자 조각을 파괴하도록 지시했는데, 이는 일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던 마지막 성상 파괴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언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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