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고대 성벽을 따라 걸으며 역사적 분위기를 느끼고, 신트라 지역의 탁 트인 파노라마 전경을 감상하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 및 사진 촬영을 즐기는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다.
방문객들은 구불구불 이어진 성벽과 망루를 직접 탐험하며 중세 요새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고, 정상에서는 페나 성, 신트라 시내, 그리고 맑은 날에는 대서양까지 조망할 수 있다.
다만, 경사가 가파르고 계단이 많으며 일부 구간에는 난간이 없어 노약자나 어린이를 동반한 경우 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으며, 유물 전시관이 수리 중이라 관람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다.
접근 방법
🚌 버스 이용
- 리스본 호시우(Rossio) 역에서 기차로 신트라 역까지 이동 (약 40분 소요).
- 신트라 역 앞에서 434번 순환 버스 탑승 후 'Castelo dos Mouros'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434번 버스는 페나 성도 경유하므로 함께 둘러보기 편리하다. 버스 일일권 또는 편도권 구매가 가능하다.
🚕 택시/차량 공유 서비스 이용
- 신트라 역 또는 시내에서 택시나 우버, 볼트 등의 차량 공유 서비스를 이용하여 성 입구까지 이동할 수 있다.
여럿이 함께 이동하거나 짐이 있을 경우 편리한 방법이다.
🚶 도보 (페나 성에서 이동 시)
- 페나 성에서 무어인의 성까지는 도보로 약 15-20분 정도 소요된다.
- 주로 내리막길이며, 숲길을 따라 이동할 수 있다.
주요 특징
이끼 낀 고대 성벽을 따라 걸으며 중세 요새의 장엄함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여러 탑과 전망 지점에서 신트라 시내, 페나 성, 그리고 맑은 날에는 대서양까지 이어지는 숨 막히는 파노라마 전경을 감상하는 것이 핵심 경험이다.
8-9세기에 지어진 이슬람 요새의 흔적인 망루, 지하 저수조, 성문 등을 둘러보며 과거의 역사를 느껴볼 수 있다. 성벽 바깥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상 페드루 예배당(Chapel of São Pedro de Penaferrim) 유적이 남아있어 함께 탐방할 수 있다.
성은 신트라 산맥의 자연 속에 자리 잡아, 울창한 숲과 화강암 절벽이 어우러진 독특한 풍경을 제공한다. 성으로 향하는 숲길과 성벽 주변은 하이킹이나 가벼운 산책을 즐기기에도 좋은 환경이다.
추천 포토 스팟
왕의 탑 (Royal Tower)
성의 가장 높은 지점으로, 페나 성과 신트라 시내, 대서양까지 가장 넓게 조망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진 촬영 장소이다.
성벽 위 통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성벽을 따라 걸으며 다양한 각도에서 성의 모습과 주변 풍경을 담을 수 있다. 특히 안개 낀 날에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예배당 유적 근처
고풍스러운 예배당 유적과 함께 성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독특한 분위기를 담을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페나 성과 함께 방문할 경우, 통합권 구매 또는 동선을 고려하여 시간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좋다. 페나 성에서 도보로 약 15-20분 거리이다.
계단이 많고 경사가 가파르므로 편안하고 미끄럼 방지 기능이 있는 신발 착용이 필수적이다. 특히 비 오는 날에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온라인으로 최소 3일 전에 입장권을 예매하면 15% 할인을 받을 수 있으며, 현장 대기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고지대에 위치하여 바람이 강하게 불 수 있으므로 가벼운 외투나 바람막이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안개가 자주 끼는 지역이므로, 맑고 시야가 좋은 날 오전에 방문하면 최상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화장실은 매표소 근처에 있으므로 미리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신트라 역에서 434번 버스를 이용하면 페나 성과 무어인의 성으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
유물 전시관이 수리 중일 수 있으니, 방문 전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무어인에 의한 건설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무어인들이 리스본 방어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성을 건설했다. 당시 주로 농업 지역이었던 신트라와 그 주민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일시적 영토 이전
코르도바 함락 이후 바다호스 왕국의 왕이 레온과 카스티야의 알폰소 6세에게 신트라를 포함한 일부 영토를 동맹의 대가로 넘겼으나, 곧 알모라비드 왕조에 의해 다시 점령되었다.
기독교 세력에 항복
아폰수 엔히크스가 이끄는 기독교 군대가 리스본을 정복한 후, 무어인의 성은 자발적으로 항복했다.
정착 장려 및 특권 부여
아폰수 엔히크스는 성의 방어와 지역 개발을 위해 30명의 주민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헌장(foral)을 발표하고 정착을 장려했다.
개축 및 군사적 중요성 감소
산슈 1세와 페르디난드 1세에 의해 성이 개축 및 보강되었으나, 주민들이 점차 성을 떠나 신트라 구시가지로 이주하면서 군사적 중요성은 점차 줄어들었다.
쇠퇴와 유기
성내 예배당은 종교 활동의 중심지였으나 15세기 말에는 유대인 공동체만 사용하게 되었고, 마누엘 1세의 유대인 추방령 이후 성은 완전히 버려졌다.
리스본 대지진 피해
리스본 대지진으로 인해 예배당이 크게 손상되고 성의 안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페르난두 2세에 의한 복원
페르난두 2세가 성의 보존과 개선 작업에 착수하여 성벽을 보강하고 주변을 정비하는 등 낭만주의 양식으로 복원했다. 이 과정에서 고고학적 탐사는 어려워졌다.
국가 기념물 지정 및 관광 명소화
국가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지속적인 복원 및 정비 작업을 통해 현재는 신트라 문화경관의 일부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여담
성의 북쪽 파사드에는 '배신자의 문(Traitor's Gate)'이라고 불리는 작은 문이 있다.
성벽 내 예배당 유적(상 페드루 예배당)은 레콘키스타 이전에는 이슬람 사원(모스크)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으나, 명확한 고고학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당시 성의 일부 구조물과 예배당이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19세기 페르난두 2세에 의해 낭만주의 양식으로 복원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고고학적 지층이 교란되어 초기 유적 연구에 어려움을 주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아랍 점령기 시절의 곡물 저장고(사일로) 유적들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일부는 식물로 덮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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