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12세기에 제작된 압도적인 바닥 모자이크와 15세기 오스만 제국 침공 당시 순교한 800여 명의 유해를 직접 보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 및 종교적 의미를 찾는 방문객들이 주로 찾는다.
성당 전체를 뒤덮은 '생명의 나무' 모자이크를 따라 걸으며 중세의 세계관과 성서 이야기를 탐색할 수 있고, 순교자 예배당에서는 유리벽 너머로 수많은 해골을 통해 비극적인 역사를 마주하게 된다. 또한, 지하 제실에서는 다양한 양식의 고대 기둥들과 희미하게 남은 프레스코화를 통해 초기 건축 양식을 감상할 수 있다.
바닥 모자이크의 일부가 신자석 의자와 관람 제한선으로 인해 가려져 전체를 온전히 감상하기 어렵다는 언급이 있다.
접근 방법
🚶 도보
- 오트란토 구시가지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구시가지 내에서는 도보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주요 특징
1163년에서 1165년 사이 판탈레오네 수도사가 제작한 이 거대한 바닥 모자이크는 성당의 신도석, 사제석, 앱스 전체를 덮고 있다. '생명의 나무'를 중심으로 구약성서 이야기, 기사도 로맨스, 중세 동물 우화, 알렉산더 대왕의 일화 등이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인간의 원죄부터 구원까지의 여정을 상징한다.
대성당 우측 신도석 끝에 위치한 예배당으로, 1480년 오스만 제국의 침공 당시 신앙을 지키다 학살된 800여 명의 오트란토 주민들의 유골이 7개의 대형 유리 벽장에 안치되어 있다. 제단 뒤편에는 순교자들이 처형당했다고 전해지는 '순교의 돌'이 보존되어 있다.
11세기에 만들어진 이 지하 공간은 앱스, 사제석, 그리고 본당 일부 아래에 걸쳐 있다. 42개의 기둥과 반기둥, 각기 다른 모양의 기둥머리가 특징이며, 고대 및 중세 초기의 건물에서 가져온 자재들을 재사용했다. 벽면에는 중세부터 16세기에 이르는 프레스코화의 흔적이 남아있다.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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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나무 모자이크 전경
성당 바닥 전체를 덮고 있는 거대한 '생명의 나무' 모자이크의 규모와 정교함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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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예배당의 유골 전시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수많은 해골은 강렬하고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하기에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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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제실의 기둥 숲
다양한 고대 기둥들이 빽빽하게 늘어선 신비롭고 독특한 분위기를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대성당 바로 옆에 위치한 대성당 박물관(유료, 성인 약 5유로)을 함께 방문하면 금실로 장식된 17세기 주교의 망토, 정교하게 수놓인 장인의 드레스 등 더 많은 종교 및 예술 유물을 감상할 수 있다.
바닥 모자이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와 상징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방문 전 관련 자료를 미리 학습하는 것이 좋다.
오트란토 대성당은 점심시간을 포함하여 낮 동안 긴 휴식 시간(시에스타, 대략 12:00~15:00)을 가지므로, 방문 계획 시 운영 시간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역사적 배경
건립 시작
노르만 주교 굴리엘모에 의해 메사피아 마을, 로마 가옥, 초기 기독교 사원 유적 위에 대성당 건설이 시작되었다.
봉헌
교황 우르바노 2세 재임 중, 교황 특사 로프레도에 의해 봉헌되었다.
바닥 모자이크 제작
바실리우스파 수도사 판탈레오네가 이끄는 예술가 그룹이 성당 바닥 전체에 걸친 대형 모자이크를 완성했다.
오스만 제국 침공 및 학살
오스만 제국 군대가 오트란토를 점령하고 대성당으로 피신한 성직자들과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이후 대성당은 마구간과 모스크로 사용되며 13세기 프레스코화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해방 및 복원
칼라브리아 공작 알폰소의 군대가 오트란토를 해방시킨 후, 대성당은 대대적으로 개축되고 파사드가 재건되었다.
바로크 양식 추가 및 내부 장식
1674년 바로크 양식의 정문이 추가되었고, 1698년 중앙 신도석과 사제석에 금박을 입힌 목조 격자 천장이 설치되었다.
바실리카 미노레 승격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대성당이 바실리카 미노레의 지위로 격상되었다.
여담
1480년 오스만 제국 군대가 대성당을 모스크로 사용했을 때, 대부분의 프레스코화가 파괴되었지만 성모 마리아 관련 그림은 일부 살아남았다고 전해진다. 이는 이슬람교에서도 마리아를 존경하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대성당의 지하 제실(크립타)은 스페인 코르도바의 메스키타나 이스탄불의 예레바탄 사라이(테오도시우스 시스테른)를 축소해 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는 언급이 있다.
바닥 모자이크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두 마리 그리핀이 끄는 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중세 서방 기독교에서 '오만'을 상징하는 유명한 도상이었다고 한다.
오트란토는 이탈리아 본토 도시 중 유일하게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겪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순교자 예배당에 안치된 유골 중, 한 두개골 위쪽에 총알 자국으로 보이는 구멍이 있다는 관찰 후기가 있다.
과거 대성당에서 이탈리아 내 그리스어 방언인 그리코(Grico)어를 구사하는 사제를 만났다는 방문객의 경험담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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