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만토바의 역사 지구에 위치한 이 성당은 중세 건축과 종교 예술, 특히 14세기 프레스코화에 관심이 많은 역사 애호가나 예술 탐방객들이 주로 찾는다. 또한, 조용히 기도하며 내면의 평화를 찾고자 하는 신자나 명상적인 분위기를 선호하는 방문객들에게도 의미 있는 장소이다.
방문객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폭격 속에서도 살아남은 곤차가 경당의 프레스코화를 감상할 수 있으며(복원 상황에 따라 관람 가능 여부 변동 가능), 스테파노 다 베로나의 작품을 비롯한 일부 복원된 중세 프레스코화를 통해 당시의 예술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로마네스크-고딕 양식으로 재건된 성당의 건축적 특징과 그 안에 담긴 역사적 흔적들을 살펴볼 수 있다.
일부 프레스코화가 전쟁으로 소실되었으며, 주요 유적인 곤차가 경당이 복원 공사로 인해 관람이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 또한, 성당 외부 포르티코 주변의 청결 문제나 겨울철 난방 부족에 대한 언급도 있어 방문 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접근 방법
🚌 버스 이용
- 만토바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인근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 성당 근처에 버스 종점이 있다는 정보가 있다.
🚗 자가용 이용
- 만토바 역사 중심부는 교통 제한 구역(ZTL)이 있을 수 있으므로 사전에 확인이 필요하다. 인근 공영 주차장이나 허용된 구역에 주차 후 도보로 접근할 수 있다.
🚶 도보
- 만토바 역사 중심지의 다른 명소들과 함께 도보로 둘러보기 용이한 위치에 있다.
주요 특징
곤차가 가문의 영묘로 사용되었던 경당으로, **14세기 프레스코화 '툴루즈의 성 루도비코의 생애'**가 일부 보존되어 있다. 이 프레스코화는 세라피노 데 세라피니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만토바의 중요한 중세 회화 유산이다. 현재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거나 완료되었을 수 있다.
전쟁의 피해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원본 프레스코화 중 하나로, 스테파노 다 베로나의 작품으로 알려진 '성 프란체스코가 성흔을 받다'를 직접 볼 수 있다. 중세 시대의 종교 예술을 느낄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1304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여러 차례의 변화와 재건을 거친 성당으로, 현재는 로마네스크 및 고딕 양식의 특징을 보여준다.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소박하면서도 장엄한 외관과 단순한 내부 구조는 프란체스코회의 정신을 반영한다.
추천 포토 스팟
성당 정면 파사드
세 개의 뾰족한 첨탑이 특징인 로마네스크-고딕 양식의 파사드는 성당의 전체적인 모습을 담기에 좋다.
곤차가 경당 내부 (관람 가능 시)
역사적인 14세기 프레스코화와 함께 경당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담을 수 있다.
성당 내부 중앙 제단 및 본당
소박하지만 경건한 분위기의 본당과 제단, 그리고 남아있는 프레스코 조각들을 촬영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성탄 시기 특별 구유 전시
매년 성탄절 전후 시기 (통상 12월 말 ~ 1월 초)
성탄 시기에는 성당 내부에 특별하고 인상적인 구유(Presepe)가 설치된다. 이 구유는 배경의 색상이 하루의 시간 변화(아침, 낮, 해질녘, 밤, 새벽)에 따라 바뀌는 독특한 연출로 유명하다.
방문 팁
입장료는 무료이지만, 성당 유지보수를 위해 자율적인 기부를 환영한다.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는 조건으로 비상업적 목적의 사진 촬영이 허용된다.
곤차가 경당을 비롯한 일부 구역은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일 수 있으며, 이 경우 관람이 제한될 수 있다.
매주 월요일에는 프란체스코회 수사들이 진행하는 '열 가지 말씀(10 parole)'에 대한 흥미로운 강좌가 열린다는 얘기가 있다.
겨울철에는 성당 내부가 다소 추울 수 있으므로 따뜻한 옷차림을 하는 것이 좋다.
프란체스코 성인에게 봉헌된 성당임에도 불구하고, 반려동물(특히 개)의 입장이 제한될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역사적 배경
설립 시작
프란체스코 수도회에 의해 성당 건축이 시작되었다.
곤차가 가문 영묘
곤차가 경당이 건축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곤차가 가문의 주요 인물들이 안치되었다.
교회 축성
교황 비오 2세에 의해 공식적으로 축성되었다.
기능 억압
오스트리아 통치 하에 교회의 기능이 억압되었다.
약탈
나폴레옹 전쟁 중 프랑스 군에 의해 약탈당했다.
무기고 전환
성당 건물이 무기고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파괴
연합군의 공습으로 인해 성당 대부분이 심하게 파괴되었으나, 곤차가 경당은 기적적으로 보존되었다.
재건 및 복원
전쟁으로 파괴된 부분을 로마네스크 및 고딕 양식을 바탕으로 재건하였으며, 현재도 일부 프레스코화 및 구조물에 대한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다.
여담
이 성당은 만토바를 다스렸던 곤차가 가문의 여러 주요 인물들(귀도 곤차가, 루도비코 2세 곤차가, 프란체스코 1세 곤차가 등)이 묻힌 일종의 가문 영묘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용병대장이었던 조반니 달레 반데 네레가 1526년 사망 후 갑옷을 입은 모습 그대로 이곳에 묻혔다는 이야기가 있다.
원래 이 성당에는 안드레아 만테냐의 작품 '두 천사 사이의 성 베르나르디노'가 있었으나, 현재는 밀라노의 브레라 미술관으로 옮겨져 소장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프란체스코 성인이 만토바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건립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초기에는 보나콜시 가문과, 이후에는 곤차가 가문과 깊은 관련을 맺었다는 언급이 있다.
나폴레옹 시대에 무기고로 사용되는 등 군사적 용도로 전환되었던 역사가 있으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폭격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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