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리보르노 항구와 도시의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하거나, 중세부터 근대에 이르는 요새의 역사적 건축물을 탐험하고 싶은 역사 애호가 및 일반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고대 건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거나 독특한 분위기를 경험하려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장소이다.
방문객들은 별도의 입장료 없이 요새 내부를 자유롭게 거닐며 다양한 시대의 건축 양식을 관찰할 수 있고, 마틸데의 탑과 같은 주요 구조물에 올라 주변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또한, 요새 내에 마련된 바(Bar)나 레스토랑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때때로 열리는 콘서트나 문화 행사를 즐길 수도 있다.
일부 구역의 유지 관리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으며, 마스티오(주탑) 등 특정 공간은 방문객의 안전 또는 보존 문제로 접근이 제한될 수 있다. 또한, 안내 표지판이 부족하여 동선 파악에 다소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접근 방법
🚌 버스 이용 시
- 리보르노 중앙역(Livorno Centrale)에서 LAM BLU 버스를 타고 시내 중심부 또는 항구 근처에서 하차 후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
- 포르테차 베키아는 메디치 항구(Porto Mediceo) 지역에 위치한다.
크루즈 터미널에서 하선하는 경우, 시내 중심부(Piazza del Municipio 등)까지 유료 셔틀버스가 운행되며, 여기서 요새 입구까지 도보로 접근 가능하다.
🚗 자가용 이용 시
- 요새 근처에 무료 주차가 가능하다는 방문객 후기가 있다.
정확한 주차 가능 공간 및 조건은 현장에서 확인하는 것이 좋다.
💡 도보 접근 팁
- 리보르노 시내 중심부나 베네치아 지구(Venice Quarter)에서 운하 옆길을 따라 요새 입구로 접근할 수 있다.
- 일부 방문객은 구글맵 경로보다 이 길이 더 빠르고 경치가 좋다고 언급한다.
요새는 페리 터미널과도 인접해 있어 페리 이용 전후로 방문하기 용이하다.
주요 특징
방문객들은 별도의 입장료 없이 요새의 다양한 공간, 통로, 보루 등을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다. 특히 상부 구조물에서는 리보르노 항구와 도시의 인상적인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피사 시대의 초기 구조물부터 메디치 가문의 요새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대의 건축 양식이 겹쳐진 독특한 구조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아치형 복도, 오래된 교회 유적, 지하 통로 등은 과거의 모습을 생생하게 상상하게 한다.
요새 내부에는 방문객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바(Bar) 또는 레스토랑이 마련되어 있다. 때때로 콘서트, 전시, 브레이크댄스 대회, 야간 파티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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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데의 탑(Mastio di Matilde) 정상
리보르노 항구와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파노라마 전경을 담을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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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프란체스코 교회(Chiesa di San Francesco) 유적 내부
오래되고 허물어져 가는 교회의 독특한 분위기와 빛이 만들어내는 극적인 장면을 포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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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하부 아치형 복도 및 옛 포대
과거 요새의 모습을 간직한 아치형 구조물과 대포가 있던 자리에서 역사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사진을 남길 수 있다.
방문 팁
입장료가 무료이므로 부담 없이 방문하여 요새를 둘러볼 수 있다.
요새 내부에 바(Bar)나 레스토랑이 있어 간단한 음료나 식사를 즐기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QR 코드를 통해 제공되는 셀프 가이드 투어 정보를 활용하면 요새의 역사와 구조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리보르노 시내 중심부나 베네치아 지구에서 항구 쪽으로 도보 이동 시, 구글맵 경로 외에 운하 옆길을 이용하면 더 빠르게 도착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요새 내 화장실은 비교적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평이 있다.
페리 터미널과 가까워 페리 탑승 전후로 방문하기에 편리한 위치이다.
여름철이나 주말에는 콘서트, 공연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릴 수 있으니, 방문 전 관련 정보를 확인하면 더욱 풍성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역사적 배경
초기 정착지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오두막집 유적이 발견되었으며, 그 위로 에트루리아 및 로마 시대의 유물층이 확인되었다. 이는 고대부터 이 지역에 인류가 정착했음을 보여준다.
최초의 탑 건설
원래 요새의 핵심부는 포르토 피사노(Porto Pisano) 가장자리에 위치한 사각탑이었다. 이후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원형탑이 세워졌는데, 전통적으로 마틸데 디 카노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명확한 역사적 증거는 부족하다.
콰드라투라 데이 피사니 (Quadratura dei Pisani)
14세기 후반, 피사 공화국은 두 개의 탑을 연결하는 성벽, 이른바 '콰드라투라 데이 피사니(피사인들의 사각형)' 또는 '로카 누오바(새로운 요새)'를 건설했다. 이는 이전의 목조 방어시설을 대체한 것으로 보인다. 이 구조물은 해상 방어 및 항구 수비대의 주둔지 역할을 했다.
제노바 공화국 시대의 변화
리보르노가 제노바 공화국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바다를 향한 세 면에 포를 설치하기 위한 세 개의 작은 보루가 건설되었다. 또한 육지 쪽 성벽은 적의 포격에 견딜 수 있도록 경사지게 보강되었고, 총안은 포탄을 튕겨내기 적합한 둥근 형태로 변경되었다.
메디치 가문의 요새 대대적 건설
리보르노 성의 주인이 된 메디치 가문은 기존 구조물을 대대적으로 변형시키는 중요한 작업을 시작했다. 안토니오 다 상갈로 일 베키오(Antonio da Sangallo il Vecchio)의 설계로 1519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1534년 알레산드로 데 메디치 공작 재임 시기에 완공되었다. 기념 명판이 요새 성벽에 남아있다.
코시모 1세의 궁전 건설
몇 년 후, 코시모 1세 데 메디치 대공은 도시에 자주 방문할 때 머무를 거처로 '콰드라투라 데이 피사니' 위에 궁전을 짓기를 원했다. 이 건물은 1546년경 완공되어 요새의 스카이라인을 압도했다.
프란체스코 1세의 시설 추가 및 시 승격
코시모 1세의 후계자인 프란체스코 1세는 바다를 향한 작은 건물과 반대편에 산 프란체스코에게 봉헌된 작은 예배당을 세웠다. 1606년 이 예배당에서 리보르노가 도시로 승격되는 엄숙한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군사 학교 및 해방 노예 수용소
메디치 왕조가 끝나고 토스카나 대공국이 로레나 가문에게 넘어가면서, 옛 요새는 토스카나 군대의 장교를 양성하기 위한 귀족 자제들의 군사 학교(1769년)가 되었다. 이후에는 형벌 노역소 폐지 후 해방된 마지막 노예와 '보나볼리에(자원 노역자)'들의 숙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방어 시설 강화
나폴레옹 점령 기간 동안 보루 상부에 소총 사격을 위한 총안이 있는 높은 성벽이 추가되었고, 다수의 특징적인 대포 구멍이 만들어졌다. 같은 시기 마틸데의 탑 정상에는 시각 전신기가 설치되었다.
감옥 및 세관 구역 편입
부분적으로 감옥으로 사용되었으며(프란체스코 도메니코 게라치도 잠시 수감됨), 이후 항구의 세관 구역에 편입되었다. 이 시기에 요새는 성벽 안팎으로 새로운 통로가 생기는 등 많은 변경을 겪었다.
대규모 파괴
제2차 세계대전은 요새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코시모 궁전과 보루 위에 있던 대부분의 건물이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으나, 견고한 마틸데의 탑은 살아남았다.
복원 사업 시작 및 시민 개방
1970년대부터 대대적인 복원 프로그램이 시작되어, 복합단지의 상당 부분이 시민들에게 다시 개방되었다. 내부 접근성 향상을 위해 금속 산책로가 설치되어 '콰드라투라 데이 피사니'와 사각탑의 조망을 가능하게 한다.
여담
요새 내부에는 한때 '나는 예루살렘 성벽을 처음 오른 콜레의 코스체토다(Io Coscetto da Colle fui il primo a salire sulle mura di Gerusalemme)'라는 고대 비문이 있었다는 지역 전설이 전해진다. 이는 제1차 십자군 원정을 암시하는 내용으로, 만약 이 명판이 실제로 발견된다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이탈리아어 비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십자군 전쟁 당시에는 요새가 아직 건설되지 않았으므로, 원래는 '콰드라투라 데이 피사니'에 통합된 고대 사각탑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요새 사령관은 방문하는 왕족이나 정치인의 지위에 따라 엄격한 의전 절차에 맞춰 예포를 발사하는 임무도 수행했다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교황이나 황제가 방문할 경우 60발의 '마스티(masti, 특정 종류의 포)'와 모든 포병 화력을 동원했고, 황후나 왕, 여왕에게는 40발의 마스티와 모든 포병 화력으로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1600년 10월 17일, 개선 아치와 축포, 시민들의 환호 속에 마리아 데 메디치 공주가 요새의 '구호의 문(Porta del Soccorso)'을 통해 나와 화려하게 장식된 갤리선 '카피타나(Capitana)'호에 승선하여 프랑스 왕 앙리 4세와의 결혼을 위해 프랑스로 떠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요새의 카나빌리아 보루와 암폴레타 보루 모서리에는 원래 피에트로 타카(Pietro Tacca)와 그의 제자들이 제작한 사자 머리 모양의 대형 청동 마스크가 부착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마스크의 고리에는 산토 스테파노 기사단의 주력 갤리선들이 정박했으며, 현재는 대리석 복제품으로 대체되어 있고 원본은 그란두칼레 궁전 입구에 전시되어 있다.
원래 요새는 1522년에서 1523년 사이에 주변에 운하를 파서 육지로부터 완전히 고립시켜 섬과 같은 형태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요새와 구 항구 사이에는 밧줄로 연결된 작은 바지선이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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