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에트나 화산의 용암과 수차례의 지진을 이겨낸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건축물을 탐방하고, 고대 로마와 그리스 유적부터 바로크 양식의 회랑까지 다양한 시대의 흔적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역사 애호가 및 건축학도들이 주로 찾는다.
가이드 투어를 통해 수도원의 흥미로운 역사와 숨겨진 공간들을 탐험할 수 있으며, 아름다운 회랑과 정원을 거닐거나 현재 대학 도서관으로 사용되는 옛 지하 공간을 둘러볼 수도 있다. 또한, 건물 지하에서 발견된 고대 로마 시대의 모자이크와 그리스 시대 유적을 통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영어 가이드 투어는 사전 예약이 필수이며, 원하는 시간대에 매진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또한, 일부 방문객은 투어 없이 관람할 경우 수도원 내부가 다른 교회들에 비해 다소 평범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의견을 남기기도 했다.
접근 방법
🚶 도보
- 카타니아 역사 지구 중심부에 위치하여, 두오모 광장 등 주요 명소에서 도보로 약 5~15분 거리에 있다.
🚌 대중교통
- 카타니아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인근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 구체적인 노선은 현지 교통 정보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수도원의 역사, 건축, 숨겨진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필수 체험이다. 유머러스하고 해박한 가이드의 설명을 통해 2000년의 역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할 수 있으며, 일반 관람객에게 공개되지 않는 특별한 공간들도 방문 가능하다.
운영시간: 공식 웹사이트에서 투어 시간 확인
16세기 설립 이후 화산 폭발과 대지진을 겪고 재건된 수도원은 다양한 건축 양식이 혼재된 독특한 모습을 자랑한다. **대리석 회랑(Marble Cloister)**과 동쪽 회랑, 지하에서 발견된 고대 로마 가옥의 모자이크와 그리스 시대 유적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과거 수도사들의 공간이었던 이곳은 현재 카타니아 대학 인문학부 건물로 사용되며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옛 지하 저장고를 개조한 도서관은 특히 인상적인 공간이며, 아름다운 정원은 학생들과 방문객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한다.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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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석 회랑 (Marble Cloister)
흰 대리석 기둥과 아치가 만들어내는 우아한 대칭미, 중앙 정원과 분수가 어우러진 바로크 양식의 정수를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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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회랑과 정원 (Eastern Cloister and Garden)
용암 대지 위에 조성된 독특한 정원과 고즈넉한 회랑의 모습을 촬영할 수 있으며, 다양한 식물과 어우러진 건축미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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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로마 유적 (Roman Domus Remains)
수도원 지하에 보존된 고대 로마 시대의 모자이크 바닥과 주거 흔적을 통해 역사의 깊이를 사진에 담을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가이드 투어는 약 10유로이며, 특히 영어 투어는 인기가 많아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주말 가이드 투어 시에는 평일에는 공개되지 않는 학장실 등을 관람할 기회가 있을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수도원과 연결된 산 니콜로 아레나 성당의 미완성 파사드와 1841년에 제작된 해시계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 해시계는 정오에 정확한 시간을 가리킨다.
투어 없이도 일부 공간(회랑 등)은 둘러볼 수 있으나, 수도원의 진면목과 숨겨진 역사, 접근 제한 구역을 경험하려면 가이드 투어가 필수적이다.
수도원 내부는 넓고 계단이 있으므로 편안한 신발을 착용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수도원 설립
베네딕토회 수도원으로 창건되었다. '아레나(모래)'라는 이름은 당시 주변 지역에 있던 화산 모래에서 유래했다.
에트나 화산 폭발
에트나 화산이 폭발하면서 용암이 카타니아 시내와 수도원 주변까지 흘러들어와 부지를 둘러쌌으나, 수도원 건물 자체는 파괴되지 않았다. 용암은 약 12미터 높이로 쌓였다.
시칠리아 대지진 (발 디 노토 지진)
시칠리아 동부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카타니아 전체와 함께 수도원 역시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다. 지하층과 일부 1층 구조물만 살아남았다.
재건 시대
지진으로 파괴된 수도원의 대대적인 재건 작업이 시작되어 19세기 중반까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기존 구조 위에 새로운 회랑과 건물이 추가되었으며, 조반니 바티스타 바카리니 등 당대 유명 건축가들이 참여하여 후기 바로크 양식으로 화려하게 확장되었다.
이탈리아 왕국에 의한 몰수
새롭게 통일된 이탈리아 왕국에 의해 수도원의 자산이 몰수되었다.
카타니아 대학에 기증
수도원 건물이 카타니아 대학에 기증되어 인문학부 건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복원 작업 시작
건축가 잔카를로 데 카를로의 주도로 대대적인 복원 및 정비 작업 설계가 시작되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발 디 노토의 후기 바로크 도시들'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여담
수도원 이름의 '아레나(Arena)'는 이 지역에 있던 화산 모래에서 유래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마프라 국립 궁전과 함께 유럽에서 가장 큰 베네딕토회 수도원 중 하나로 꼽힌다고 알려져 있다.
1669년 에트나 화산 폭발 당시 용암이 수도원 주변을 둘러쌌으나 파괴되지는 않았고, 용암이 12미터 높이로 쌓였다는 기록이 있다.
원래 50명의 부유한 수도사들이 호화로운 생활을 위해 지었다는 설이 있다.
한때 체육관, 학교, 군 막사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2007년에 재건된 분수는 파리에서 발견된 프랑스 건축가의 스케치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현재 카타니아 대학 도서관으로 사용되는 공간은 과거 수도원의 지하 저장고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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