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펠트헤른할레는 웅장한 건축미와 함께 독일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목격한 역사적 의미를 탐구하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나 건축물에 관심 있는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바이에른 군대의 전통을 기리고 1923년 뮌헨 폭동과 같은 결정적 사건의 현장을 직접 확인하려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장소이다.
방문객들은 피렌체의 로지아 데이 란치를 모델로 한 아름다운 건축 양식을 감상할 수 있으며, 바이에른 군사 지도자들의 위엄 있는 조각상과 용맹한 사자상을 살펴볼 수 있다. 오데온 광장의 일부로서, 인접한 테아티너 교회나 뮌헨 레지덴츠와 함께 둘러보며 뮌헨의 역사적 중심지를 다각도로 경험할 수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기념물 주변에 펜스가 설치되어 있어 가까이 접근하거나 내부로 들어갈 수 없다는 점과, 때때로 광장에서 열리는 행사로 인해 관람에 제한이 있거나 건축물 일부가 가려지는 경우가 있다는 아쉬움을 언급하기도 한다.
접근 방법
🚇 지하철 (U-Bahn)
- U3, U4, U5, U6 노선 오데온 광장(Odeonsplatz) 역에서 하차 후 바로 연결된다.
뮌헨 중심부에 위치하여 대중교통 접근성이 매우 뛰어나다.
🚶 도보
- 마리엔 광장(Marienplatz)에서 북쪽으로 약 5~10분 정도 걸으면 도착할 수 있다.
- 뮌헨 레지덴츠, 호프가르텐 등 주요 명소와 인접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용이하다.
🚌 버스
- 오데온 광장 주변에 다수의 버스 노선이 정차한다.
버스 노선은 시기에 따라 변동될 수 있으므로 사전 확인이 필요하다.
주요 특징
피렌체의 로지아 데이 란치를 본떠 만든 웅장한 아치형 로지아와 바이에른 군대의 명예를 상징하는 두 군사 지도자(요한 체르클라에스 폰 틸리 백작, 카를 필리프 폰 브레데 공)의 동상 및 두 마리의 사자상을 감상할 수 있다. 정교한 조각과 신고전주의 건축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공간이다.
운영시간: 24시간 개방
1923년 아돌프 히틀러의 맥주홀 폭동(Beer Hall Putsch)이 좌절된 결정적인 장소이다. 나치 시대에는 이곳이 정권의 중요 선전 및 추모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했던 복합적인 역사를 지니고 있어, 독일 현대사의 중요한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곳이다.
운영시간: 24시간 개방
넓은 오데온 광장에 위치하여 노란색 외관이 인상적인 테아티너 교회, 웅장한 뮌헨 레지덴츠 등 주변의 아름다운 건축물과 함께 조화로운 도시 풍경을 제공한다. 기념물 계단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며 활기찬 뮌헨의 분위기를 느끼거나 다양한 행사를 관람할 수 있다.
운영시간: 24시간 개방
추천 포토 스팟

펠트헤른할레 정면 계단 아래 중앙
웅장한 로지아 전체와 양옆의 사자상을 균형 있게 담을 수 있는 대표적인 구도이다. 하늘을 배경으로 하면 건축물의 위엄이 더욱 강조된다.

오데온 광장 중앙에서 펠트헤른할레 방향
광장의 넓은 공간과 함께 펠트헤른할레, 그리고 그 배경으로 보이는 테아티너 교회의 노란색 돔까지 한눈에 조망하는 파노라마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펠트헤른할레 측면 (비스카르디가세 입구 근처)
로지아의 아치와 기둥의 입체감, 그리고 옆으로 보이는 테아티너 교회의 일부 또는 뮌헨 레지덴츠의 모습을 함께 담아 색다른 느낌의 사진을 연출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클래식 암 오데온플라츠 (Klassik am Odeonsplatz)
매년 7월
펠트헤른할레를 무대 배경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와 솔리스트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야외 클래식 음악 축제이다. 뮌헨의 여름밤을 아름다운 선율로 수놓으며 많은 시민과 관광객에게 사랑받는다.
방문 팁
펠트헤른할레는 뮌헨의 다른 주요 명소인 마리엔 광장, 뮌헨 레지덴츠, 호프가르텐, 테아티너 교회 등과 매우 가까워 함께 도보로 둘러보는 일정을 계획하기 좋다.
때때로 광장에서 행사나 축제가 열리면 기념물 관람이 제한되거나 건축물 일부가 가려질 수 있으므로, 방문 전 오데온 광장의 행사 일정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기념물은 현재 펜스로 막혀 있어 내부로 직접 들어가거나 조각상에 매우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으니 이 점을 참고해야 한다.
펠트헤른할레 뒤편, 프라이징 궁전(Palais Preysing) 앞의 작은 골목길인 비스카르디가세(Viscardigasse)는 나치 시절 경례를 피하기 위해 이용되어 '회피자 골목(Drückebergergasse)'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이 길을 통해 펠트헤른할레를 우회하며 또 다른 역사적 의미를 느껴볼 수 있다.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방문 전 펠트헤른할레와 관련된 뮌헨 폭동, 나치 시대의 역할 등에 대해 미리 학습하면 더욱 의미 있는 관람이 될 수 있다.
역사적 배경
펠트헤른할레 건립
바이에른 왕국의 루트비히 1세 국왕의 명령으로 건축가 프리드리히 폰 게르트너(Friedrich von Gärtner)가 피렌체의 로지아 데이 란치를 모델로 하여 바이에른 군대의 영광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초기에는 틸리 백작과 브레데 공의 동상이 설치되었다.
중앙 기념물 추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의 승리와 독일 통일을 기념하는 페르디난트 폰 밀러(Ferdinand von Miller)의 청동 조각 그룹이 로지아 중앙에 추가되었다.
사자상 추가
건축가 빌헬름 폰 뤼만(Wilhelm von Rümann)이 제작한 두 개의 대리석 사자상이 로지아 데이 란치의 메디치 사자상을 모방하여 계단 양쪽에 배치되었다.
뮌헨 폭동 (맥주홀 폭동) 현장
아돌프 히틀러와 그의 추종자들이 바이에른 국방부로 행진하던 중 이곳에서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며 폭동이 진압되었다. 이 사건으로 15명의 나치 당원과 1명의 구경꾼, 4명의 경찰관이 사망했다.
나치 정권의 추모 기념물로 활용
히틀러 집권 후, 펠트헤른할레는 1923년 폭동 당시 사망한 나치 당원들을 기리는 '운동의 기념비(Mahnmal der Bewegung)'가 동쪽에 설치되었고, SS 부대원의 충성 맹세 장소 및 각종 퍼레이드와 기념 집회 장소로 이용되었다. 이곳을 지나는 모든 행인은 나치식 경례를 해야 했다.
나치 기념물 철거 및 복원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분노한 지역 주민들에 의해 나치 기념물이 자발적으로 파괴되었으며, 펠트헤른할레는 점차 나치 이전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여담
펠트헤른할레에 세워진 두 군사 지도자 동상 중 요한 틸리 백작은 사실 바이에른 출신이 아니었고, 카를 필리프 폰 브레데 공은 군사 전략가로서의 능력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는 비판이 당시 뮌헨 시민들 사이에서 있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이는 작가 리온 포이히트방거의 소설 '성공(Erfolg)'에도 언급된 바 있다.
나치 시대에 펠트헤른할레 앞을 지날 때 의무적으로 나치식 경례를 해야 했기 때문에, 이를 피하려는 사람들이 건물 뒤편의 작은 골목길인 비스카르디가세(Viscardigasse)를 이용했는데, 이로 인해 이 골목은 **'회피자 골목(Drückebergergasse)'**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펠트헤른할레 입구를 지키는 두 사자상 중 하나는 입을 벌리고 있고 다른 하나는 입을 다물고 있는데, 이는 각각 궁궐(레지덴츠) 쪽을 향한 사자는 왕에게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의미, 교회(테아티너 교회) 쪽을 향한 사자는 교회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해석이 있다는 언급이 있다.
펠트헤른할레의 이름은 '야전 사령관의 전당' 또는 **'용장 기념관'**으로도 번역되는데, 이는 바이에른 군대의 용맹과 명예를 기리기 위한 건축물의 본래 목적을 잘 나타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