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역사적 건축물과 현대 예술의 조화를 감상하고자 하는 건축 애호가나 문화 탐방객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로마네스크 양식 탑, 고딕 양식 본당, 그리고 전후 복원 과정에서 더해진 현대적인 스테인드 글라스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흥미로운 장소이다.
방문객은 교회 내외부의 독특한 건축 양식을 둘러보고, 샤를 크로델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하인리히 아펠의 조각품 등 현대 종교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열리는 미사에 참여하거나, 유럽 합창의 밤과 같은 음악 공연을 경험할 수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대대적으로 재건되어 일부 방문객은 내부에서 고풍스러운 옛 교회의 분위기를 기대만큼 느끼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다. 겨울철에는 난방이 충분하지 않아 내부가 다소 춥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접근 방법
📍 위치 정보
- 성 베드로 교회는 마그데부르크 구시가지(Altstadt) 북동쪽, 엘베강 좌안 위쪽 노이슈테터 거리 동편에 자리 잡고 있다.
- 남쪽으로는 페터스베르크(Petersberg) 길이, 북쪽으로는 페트리키르히강(Petrikirchgang) 골목이 지난다.
로마네스크 가도의 일부이기도 하다.
주요 특징
이 교회는 현존하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견고한 서쪽 탑과 15세기경 증개축된 삼랑식 고딕 홀리처치(Hallenkirche) 본당이 독특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역사적 변천사를 간직한 외부 건축은 그 자체로 중요한 볼거리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된 내부는 화가 샤를 크로델(Charles Crodel)이 1970년에 제작한 다채로운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과 조각가 하인리히 아펠(Heinrich Apel)의 여러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아펠이 만든 제단, 강론대, 세례반, 천장 중앙석 등은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예술성을 보여준다.
1150년경 처음 건립된 이래 종교개혁, 30년 전쟁, 제2차 세계대전 등 격동의 역사 속에서 여러 차례 파괴와 재건을 반복했다. 특히 1945년 공습으로 심하게 파괴된 후 '속죄의 표시 운동(Aktion Sühnezeichen)'을 통해 복원된 현재의 모습은 평화와 화해의 상징으로도 여겨진다. 교회 내부에 있는 두 개의 옛 교회 모형을 통해 그 변천사를 엿볼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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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서쪽 탑과 남쪽 현관
로마네스크 양식의 탑과 고딕 양식의 현관이 어우러진 교회의 특징적인 외관을 다양한 각도에서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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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 앞
샤를 크로델이 제작한 현대적이고 다채로운 빛깔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배경으로 인상적인 사진을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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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디자인의 입구 문손잡이
방문객들의 시선을 끄는 독특한 형태의 입구 문손잡이는 클로즈업 사진의 좋은 소재가 된다.
축제 및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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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합창의 밤 (Europäische Chornacht)
매년 유럽의 날(5월 9일경) 즈음
2001년부터 시작된 행사로, 비더리츠 칸토라이(Biederitzer Kantorei)와 유럽 여러 지역의 합창단들이 참여하여 함께 공연하는 국제 합창 콘서트이다.
방문 팁
교회 내부는 일반적으로 공개되어 있어 무료로 입장 및 관람이 가능하다.
매월 둘째 주와 넷째 주 일요일에는 영어로 진행되는 미사가 있으나, 세부 시간은 교회 공지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교회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한다면 2유로에 판매하는 교회 안내서(Kirchenführer)를 이용할 수 있다.
특히 겨울철에는 교회 내부가 상당히 추울 수 있으므로 방문 계획 시 따뜻한 옷차림을 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초석 마련
엘베 강변 페터스베르크 언덕 위에 어부 마을 프로제(Frose)의 교구 교회로 처음 세워졌다. 당시 건물은 단층 목조 천장의 단순한 구조였다.
1차 파괴
황제 오토 4세의 군대에 의해 프로제 마을 및 교회와 신도시(Neustadt)가 파괴되었다.
최초 문헌 언급
교회에 대한 최초의 문서 기록이 확인된다.
고딕 양식으로 대대적 개축
알브레히트 폰 크베르푸르트 대주교의 주도로 추정되는 대규모 개축 공사를 통해 삼랑식(dreischiffig) 고딕 홀리처치(Hallenkirche)로 변모했다. 아름다운 5면 제단부(Apsis)가 이때 조성되었다.
종교개혁과 개신교 수용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첫 개신교 목사가 선임되었고, 7월 17일 첫 개신교 설교가 이루어졌다.
30년 전쟁 중 파괴
틸리 백작이 이끄는 황제군에 의해 마그데부르크가 함락되고 도시 전체가 파괴될 때 교회도 불타버리고 십자형 궁륭 천장 일부가 무너졌다.
재건 및 재봉헌
오랜 복구 작업 끝에 교회가 새로 봉헌되었다. 1685년 토비아스 빌헬미가 새로운 설교단을 제작했다.
프랑스 점령기 용도 변경
나폴레옹 점령 시기에는 소금 저장고로 사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대파괴
마그데부르크 시내 대공습으로 인해 교회 건물이 매우 심하게 파괴되었다. 탑과 현관 홀만이 비교적 가벼운 손상을 입었다.
가톨릭 교구 인수 및 재건 시작
성 제바스티안 가톨릭 교구가 폐허가 된 교회를 인수했고, 1962년부터 '속죄의 표시 운동(Aktion Sühnezeichen)'의 일환으로 잔해 제거 및 재건 작업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재봉헌
요하네스 브라운 주교의 집전으로 교회가 다시 봉헌되었다. 이후에도 내부 시설 공사가 계속되었다.
가톨릭 대학 교회 지정
교회가 '가톨릭 대학 교회(Katholische Universitätskirche)' 칭호를 부여받았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교구 소속
교회는 현재 성 아우구스티누스 교구에 속해 있다.
프레몽트레회 수도원 신축
교회 옆에 마그데부르크 프레몽트레회 수도원을 위한 새로운 건물이 건설되었다.
여담
14세기 마그데부르크 연대기 편찬자였던 하인리히 폰 라메스프링게(Heinrich von Lammesspringe)가 이 교회 제단의 성직록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과거 프랑스 점령기였던 1813년에는 교회가 소금 창고로 사용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공습으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음에도, 이 교회의 석조 탑과 남쪽 현관은 비교적 손상이 적었다는 언급이 있다.
전후 복구 과정에서 설치된 오르간의 리드 파이프(Zungenstimmen)는 당시 분단 상황으로 인해 서독에서 수입해야 했던 사연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 교회 인근에 프레몽트레회 수도원이 새로 건립되었으며, 앞으로 교회와 수도원, 커뮤니티 하우스, 막달레나 예배당이 하나의 안뜰 단지를 이룰 예정이라는 소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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