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고딕 양식과 시토회 특유의 절제미가 드러나는 건축물을 감상하고, 교회 내 역사적인 유물을 통해 과거를 탐구하고자 하는 역사 및 건축 애호가들이 주로 찾는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사색의 시간을 가지려는 방문객에게도 적합하다.
방문객들은 교회 내부를 둘러보며 정교한 오르간 전면, 르네상스 양식의 설교단, 후기 바로크 양식의 제단 등 주요 성미술품을 직접 관람할 수 있다. 또한, 계몽주의 신학자 예루살렘의 묘비와 흉상을 통해 역사 속 인물을 만나는 경험도 가능하다.
기본 정보
건축 양식
부르고뉴의 시토 수도원을 모델로 하여 건축되었으며, 초기에는 금욕적인 엄격함을 따랐으나 점차 고딕 양식이 가미되었다.
주요 시설
수도원 교회 외에도 12세기 말에 지어진 문루(현재 시토회 박물관), 1305년의 병자 예배당(Siechenkapelle), 수도원 정원 등이 남아있다.
접근 방법
위치
- 브라운슈바이크 시 외곽, 누스베르크(Nußberg)와 부흐호르스트(Buchhorst) 사이에 위치한다.
대중교통 정보는 구체적으로 제공되지 않았으나, 브라운슈바이크 시내에서 접근 가능하다.
주요 특징
하인리히 컴페니우스 2세가 1619년 이전에 제작한 제비집 오르간(Schwalbennestorgel)의 오르간 전면 일부가 보존되어 있다. 현재 오르간은 1979년 알프레트 퓌러(Alfred Führer)사가 컴페니우스의 설계를 참조하여 옛 전면부를 통합해 제작한 것이다.
1622년에 제작된 린덴 나무로 만들어진 르네상스 양식의 설교단이 있다. 정교한 조각과 장식이 특징이다.
마테우스 하인리히 페텐(Matthäus Heinrich Vetten)이 1735년에 제작한 후기 바로크 양식의 중앙 제단은 화려함과 웅장함을 자랑한다.
역사적 배경
시토회 수도원 설립
아멜룽스보른 수도원에서 온 시토회 수사들이 정착하여 리다크스하우젠 수도원을 설립했다.
수도원 교회 건축 시작
현존하는 수도원 교회의 건축이 시작되었다.
수도원 교회 헌당
약 60여 년의 공사 끝에 수도원 교회가 헌당되었다.
종교개혁
종교개혁이 도입되어 완료되었다.
설교자 세미나 설립
안톤 울리히 공작과 루돌프 아우구스트 공작의 지시로 설교자 세미나가 설립되었다.
수도원 세속화
나폴레옹 점령기 동안 수도원이 세속화되면서 설교자 세미나가 폐쇄되었다.
교회 보수 및 복원
교회에 대한 대대적인 보수 및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다.
여담
리다크스하우젠 수도원 교회의 건축 모델은 시토 수도회의 모원(母院)인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시토(Cîteaux) 수도원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교회 건축 과정에서 초기 시토회의 순수주의적 건축 이상에서 점차 벗어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는 얘기가 있다.
현재 시토회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문루(Torhaus)는 12세기 말에 이미 지어졌으며, 수도원 정원에는 1305년에 세워진 병자 예배당(Siechenkapelle)이 남아 있다.
1275년에 지어진 여성 예배당(Frauenkapelle)은 외부인과 여성들을 위한 예배 공간으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독일 계몽주의 신학자인 **요한 프리드리히 빌헬름 예루살렘(Johann Friedrich Wilhelm Jerusalem)**이 이 교회에 마지막 안식처를 찾았으며, 그의 흉상도 교회 내에 있다.
교회의 현재 오르간은 1979년 알프레트 퓌러(Alfred Führer) 오르간 제작사가 옛 오르간 전면부를 포함하여 컴페니우스의 설계를 참조해 제작한 것으로, 총 31개의 레지스터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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