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독일과 프랑스 고딕 양식의 영향을 받은 역사주의 건축물에 관심 있는 여행객이나, 폰트슈트라세의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잠시 고요한 성찰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방문객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독일과 프랑스 고딕 요소가 결합된 독특한 외관과 내부 장식을 감상하려는 건축 애호가 및 역사 탐방객들에게 흥미로운 장소이다.
교회 외부의 섬세한 조각과 독특한 파사드를 감상할 수 있고, 내부로 들어서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과 함께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건축적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다.
접근 방법
🚶 도보
- 아헨 중앙역(Aachen Hauptbahnhof)에서 도보 약 20-25분 소요될 수 있다.
- 폰트 문(Ponttor)에서 폰트슈트라세(Pontstraße)를 따라 이동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 버스
- 아헨 시내버스 이용 시 'Ponttor' 또는 인근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 이동.
- 폰트슈트라세(Pontstraße)는 학생가 및 상점가로 다수의 버스 노선이 경유한다.
🚉 기차
- 아헨 중앙역(Aachen Hauptbahnhof) 또는 아헨 서역(Aachen West)에 도착 후 버스로 환승하거나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
주요 특징
1902년에 봉헌된 이 교회는 건축가 요제프 부흐크레머(Joseph Buchkremer)에 의해 독일 및 프랑스 후기 고딕 양식 요소가 결합된 역사주의 스타일로 설계되었다. 십자형 삼랑식 바실리카 구조와 섬세한 외부 조각들이 특징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롭게 제작 및 복원된 다채로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들이 내부를 장식하고 있다. 특히 안나 슈나이더-랑(Anna Schneider-Lang)과 파울 바이그만(Paul Weigmann) 등의 작가가 제작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폰트슈트라세의 번화함 속에 위치하면서도, 교회 내부는 비교적 고요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어 잠시 멈춰 명상하거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더운 날이나 추운 날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공간으로도 언급된다.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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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정면 전체 모습
독일과 프랑스 고딕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파사드와 전체적인 건축미를 담을 수 있는 지점이다. 상단의 성 헬레나 조각상, 중앙의 장미창, 십자가상이 주요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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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트슈트라세(Pontstraße)에서 바라본 교회 탑과 측면
북쪽에 세워진 단일 탑과 교회의 측면 구조물을 거리의 풍경과 함께 담을 수 있다. 주변 건물과의 대비를 통해 교회의 규모와 독특한 형태를 강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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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내부 (관람 및 촬영 허용 시)
내부 관람이 가능하다면, 빛이 스며드는 스테인드글라스, 제단, 그리고 포도잎 등으로 장식된 기둥머리와 같은 건축적 세부 요소들을 촬영할 수 있다. 내부 개방 여부 및 촬영 규정을 현장에서 확인해야 한다.
방문 팁
미사 시간을 피해 방문하면 비교적 자유롭게 내부를 둘러보며 건축적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폰트 문(Ponttor) 및 아헨 공과대학교(RWTH Aachen) 건물과 함께 방문하는 코스를 계획하면 효율적인 동선으로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
폰트슈트라세 관광 중 잠시 더위나 추위를 피하며 조용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다.
겨울철에는 내부 난방이 가동되어 비교적 따뜻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역사적 배경
율리안 예배당(Julianskapelle) 건립
게라르트 폰 봉가르트(Gerard von Bongard)의 기부로 최초의 예배당인 율리안 예배당이 건립되어 벨기에 리에주의 십자수도회(Kreuzherrenorden)에 기증되었다.
아헨 대화재로 소실
아헨 시를 휩쓴 대화재로 인해 예배당이 외벽만 남긴 채 심하게 파괴되었다.
첫 번째 본당(Erste Pfarrkirche) 건립
화재 이후 새로운 본당 건축이 시작되었으나, 전쟁과 여러 혼란으로 인해 오랜 기간이 소요되어 1770년에야 완공되었다. 이 건물은 단순한 벽돌 구조였다.
세속화와 수도원 폐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칙령에 따라 모든 수도원이 강제로 해산되면서, 교회를 관리하던 십자수도회 수도사들이 아헨을 떠나야 했다. 이후 교회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두 번째 본당(Zweite Pfarrkirche, 현재 건물) 건립
기존 건물이 노후하고 공간이 부족해지자 새로운 본당 건축이 결정되었다. 건축가 요제프 부흐크레머(Joseph Buchkremer)의 설계로 현재의 교회가 착공되어 1902년에 봉헌되었다. 십자형 삼랑식 바실리카 구조의 역사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전쟁 피해 복구 및 재건
제2차 세계대전 중 교회가 심각한 피해를 입었으며, 종전 후 대대적인 복구 작업이 진행되었다. 1964-1965년에는 중앙 신랑(Mittelschiff)의 낡은 궁륭이 새것으로 교체되고 제단 공간이 재설계되는 등 주요 보수가 이루어져 1965년 오순절에 공식적으로 완료되었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설치
전쟁으로 임시 유리창이었던 창문들에 본격적으로 다채로운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안나 슈나이더-랑(Anna Schneider-Lang), 마리아 카츠그라우(Maria Katzgrau), 헤르만 고트프리트(Hermann Gottfried), 파울 바이그만(Paul Weigmann) 등 여러 예술가들의 작품이 교회 창문을 장식하게 되었다.
교회 탑 및 내부 주요 보수
시간이 지나면서 노후된 교회 탑에 대한 광범위한 보수 작업이 이루어졌으며, 동시에 교회 내부 공간에 대한 정리 및 개선 작업도 진행되었다. 이 시기에 제단이 클라우스 이절로에(Klaus Iserlohe)의 작품으로 교체되고 세례반이 성가대석으로 옮겨졌다.
여담
현재 교회의 건축가인 요제프 부흐크레머는 역사주의 양식, 특히 독일과 프랑스의 후기 고딕 양식을 결합하여 설계했으나, 당시 일부 주민들로부터 건축 양식 선택이 다소 임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는 얘기가 있다.
교회 정면 파사드 상단에는 'Stat crux, dum volvitur orbis'라는 라틴어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세상은 변해도 십자가는 굳건히 서 있다'는 의미로, 본래 카르투시오 수도회의 표어였다고 전해진다.
교회 내부의 둥근 기둥머리(주두)는 포도나무 잎과 여러 잎사귀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이는 브라반트 고딕 양식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는 언급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복구 과정에서 교회의 측면 통로 천장은 임시 목재 바닥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임시 구조물이 현재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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