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니스의 프랑스 합병 역사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통해 과거를 탐구하려는 역사 애호가나 예술에 관심 있는 이들이 주로 찾는다. 공원 방문객들도 쉽게 접하며 기념사진을 남긴다.
청동상과 대리석 군상을 통해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으며, 공원 내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거나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경험이 가능하다.
접근 방법
👣 도보
- 알베르 1세 공원(Jardin Albert-Ier) 입구, 프롬나드 데 장글레(Promenade des Anglais)에 위치하여 도보 접근이 용이하다.
- 마세나 광장(Place Masséna)에서도 가깝다.
🚂 니스 꼬마기차 (Petit Train de Nice)
- 니스 꼬마기차의 출발 및 도착 지점이 기념비 앞 광장이어서, 기차 이용 시 자연스럽게 방문할 수 있다.
주요 특징
기념비 최상단에 위치한 청동상으로, **날개 달린 승리의 여신(니케)**이 프랑스 국기에 휩싸여 충성을 맹세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는 도시 니스의 신화적 이름의 기원이자 프랑스에 대한 니스의 충성심을 상징한다.
기념비 하단부에 있는 흰 대리석 조각으로, 니스를 상징하는 젊은 여성이 프랑스를 상징하는 여성에게 몸을 맡기는 모습을 묘사했다. 이는 니스가 프랑스에 통합되는 역사적 사건을 알레고리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기념비는 1793년 니스가 프랑스에 처음 합병된 사건의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졌으며, 전면에는 '1793-1893'과 '1860' 이라는 연도가 새겨져 있어 두 차례의 주요 합병을 모두 기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양한 명문을 통해 건립 의미와 관련 인물들을 기록하고 있다.
추천 포토 스팟
기념비 정면
기념비 전체의 웅장함과 함께 승리의 여신상 및 대리석 군상을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다.
알베르 1세 정원과 함께 보는 기념비
아름다운 알베르 1세 정원을 배경으로 기념비를 촬영하여 역사적 건축물과 자연의 조화를 담을 수 있다.
프롬나드 데 장글레 방면
니스 해변 산책로인 프롬나드 데 장글레 방향에서 푸른 바다나 산책로의 활기찬 분위기와 함께 기념비를 촬영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오케스트라 드 아르모니 일요 무료 콘서트
일요일 오후 (구체적 일정은 현지 상황에 따라 변동 가능)
알베르 1세 정원에서 오케스트라 드 아르모니(Orchestre de l'Harmonie)가 연주하는 무료 야외 음악회를 즐길 수 있다. 니스 시에서 좌석을 제공하기도 한다.
방문 팁
알베르 1세 공원 입구, 프롬나드 데 장글레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좋다.
니스 꼬마기차(Petit Train)의 출발 및 도착 지점이 기념비 앞 광장이므로, 꼬마기차 이용 전후로 함께 둘러보기 편리하다.
일요일 오후 3시 30분경에는 오케스트라 드 아르모니(Orchestre de l'harmonie)의 무료 콘서트가 열리기도 하며, 니스 시에서 좌석을 제공한다.
역사적 배경
니스의 1차 프랑스 합병
프랑스 혁명기에 니스가 처음으로 프랑스에 합병되었다.
니스의 최종 프랑스 합병
토리노 조약에 따라 니스가 최종적으로 프랑스 영토로 편입되었다.
기념비 건립 결정
프랑스 공화국 100주년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니스 합병 100주년 기념비 건립이 결정되고 조각가 앙드레-조제프 알라르에게 의뢰되었다.
기념비 제막
프랑스 대통령 펠릭스 포르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알베르 1세 정원에서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역사 기념물 등재
프랑스 문화부에 의해 역사 기념물(Monument Historique)로 공식 등재되었다.
여담
기념비 꼭대기의 승리의 여신상은 그리스 신화의 '니케(Nike)'를 의미하며, 이는 도시 '니스(Nice)' 이름의 신화적 기원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기념비 기단의 대리석 군상은 젊은 여성이 여성을 껴안는 모습으로, 이는 니스가 프랑스에 자신을 바치는 것을 알레고리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전해진다.
프랑스를 상징하는 여성상은 프리지아 모자를 쓰지 않고 투구를 쓰고 있으며, 가슴을 드러내지 않은 차분한 모습은 질서와 안정, 모성애 등을 상징하는 온건한 공화국을 나타낸다는 해석이 있다.
니스 시를 상징하는 여성은 성벽 모양의 관을 쓰고 있는데, 이는 중세시대의 도시 표현 방식을 따른 것이며, 1388년 사보이아 백작 가문에 대한 헌신을 연상시켜 1793년의 합병을 새로운 헌신으로 표현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초기 설계안에는 받침대 모서리에 합병의 혜택을 상징하는 4개의 조각상이 포함될 예정이었으나, 실제로는 제작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기념비 전면에는 '1793-1893'과 그 아래 '1860'이라는 연도가 새겨져 있어, 1793년의 합병뿐 아니라 1860년의 합병도 함께 기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념비 뒤편에는 지중해를 상징하는 부조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feature_0_1747649695892.jpg)
/feature_0_174770894010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