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오귀스트 로댕의 역사적인 청동 조각 작품을 감상하고, 백년전쟁 당시 칼레 시민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나 예술 작품 감상객들이 주로 찾는다.
조각상 앞에서 6명 시민들의 각기 다른 표정과 자세를 통해 그들의 고뇌와 용기를 느낄 수 있으며, 인근 칼레 시청의 아름다운 건축물과 함께 주변 공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접근 방법
🚆 기차 이용 시
- 칼레 빌(Calais Ville) 기차역에서 하차 후 도보로 약 10~15분 거리에 위치한다.
- 역에서 나와 시청(Hôtel de Ville) 방향으로 이동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 버스 이용 시
- 칼레 시내를 운행하는 버스를 이용하여 시청(Hôtel de Ville) 근처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 일부 노선은 무료로 운행되기도 한다.
자세한 노선 및 운행 정보는 현지에서 확인하는 것이 좋다.
🚗 자가용 이용 시
- 내비게이션에 'Place du Soldat Inconnu, Calais' 또는 'Calais Town Hall'을 목적지로 설정한다.
- 조각상 앞 광장 주변에 무료 주차 공간이 있다.
주요 특징
백년전쟁 당시 칼레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려 했던 6명 시민들의 모습을 담은 오귀스트 로댕의 대표적인 청동 조각상이다. 각 인물의 표정과 자세에서 절망, 고뇌, 용기 등 복합적인 감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조각상은 아름다운 건축미를 자랑하는 칼레 시청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으로는 잘 가꾸어진 생 피에르 공원(Parc Saint-Pierre)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에 좋다. 특히 시청 건물과 종탑을 배경으로 조각상을 감상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조각상을 통해 백년전쟁과 칼레 시민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교육적인 장소이다. 조각상 주변 안내판이나 관련 정보를 통해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면 더욱 의미 있는 감상이 가능하다.
추천 포토 스팟
칼레 시청을 배경으로 한 조각상 전체 모습
웅장한 칼레 시청 건물과 함께 '칼레의 시민들' 조각상 전체를 한 프레임에 담아보세요. 특히 맑은 날에는 더욱 인상적인 사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조각상 인물들의 표정과 손짓 클로즈업
로댕 특유의 섬세한 표현력이 돋보이는 각 인물의 얼굴 표정이나 손, 발 등을 클로즈업하여 촬영하면 감정의 깊이를 담아낼 수 있습니다.
주변 정원과 함께 담는 조각상
계절에 따라 아름답게 조성되는 주변 화단이나 정원을 배경으로 조각상을 촬영하면 더욱 다채롭고 생동감 있는 사진을 남길 수 있습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조각상 주변으로는 아름다운 화단과 때때로 특별한 테마로 꾸며진 정원이 조성되어 있어 함께 둘러보기에 좋다.
조각상이 위치한 칼레 시청 앞 광장 주변에는 무료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차량 방문 시 편리하다.
칼레 시내에는 기념비와 주요 지점을 순환하는 무료 버스가 운행되므로 대중교통 이용도 고려해볼 만하다.
조각상 감상 후 인근 칼레 시청의 종탑에 올라가면 칼레 시내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다. (시청 내부 관람 및 종탑 운영 여부 사전 확인 필요)
로댕은 인물들의 감정을 극대화하기 위해 조각상의 손과 발을 의도적으로 크게 제작했으며, 이는 작품 감상의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역사적 배경
칼레 공방전 (백년전쟁)
영국 에드워드 3세가 이끄는 군대가 칼레를 11개월간 포위 공격했고, 결국 칼레는 항복했다. 이때 6명의 시민 대표가 도시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으려 한 사건이 발생했다.
최초 기념상 건립 시도
칼레 시에서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의 동상 건립을 시도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지연되었다.
오귀스트 로댕에게 제작 의뢰
칼레 시에서 백년전쟁 당시 시민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오귀스트 로댕에게 기념 조각상 제작을 의뢰했다.
조각상 완성
오귀스트 로댕이 '칼레의 시민들' 조각상을 완성했다.
칼레 시 최초 설치
완성된 조각상이 칼레 시의 리슐리외 공원(Parc Richelieu) 앞 높은 받침대 위에 처음 설치되었다. 이는 로댕이 원했던 낮은 받침대와는 다른 방식이었다.
칼레 시청 앞으로 이전 및 재설치
로댕의 의도대로 조각상이 칼레 시청(Hôtel de Ville) 앞으로 옮겨져 낮은 받침대 위에 재설치되었다.
여담
이 조각상은 원래 칼레 시에서 영웅적인 모습으로 단 한 명의 시민 대표(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만을 묘사하려 했으나, 로댕은 6명 모두를 인간적인 고뇌를 담아 표현하는 것을 주장하여 관철시켰다고 한다.
로댕은 관람객들이 조각상 인물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감정을 공유하길 원하여 낮은 받침대에 설치되기를 희망했으나, 초기에는 높은 받침대에 설치되었다가 후에 그의 뜻대로 옮겨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프랑스 법에 따라 로댕 작품의 원본 주물은 12개까지만 제작될 수 있으며, 칼레에 있는 것이 첫 번째 주물이고 서울의 로댕갤러리(현 플라토)를 포함한 전 세계 여러 도시에 나머지 원본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조각에 묘사된 6명의 시민은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Eustache de Saint Pierre), 자크 드 위쌍(Jacques de Wissant), 피에르 드 위쌍(Pierre de Wissant), 장 드 피엔느(Jean de Fiennes), 앙드리외 당드르(Andrieu d'Andres), 장 데르(Jean d'Aire)이다.
칼레의 시민 이야기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되지만,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 이야기가 과장되었거나 당시 항복 의례의 일부를 극적으로 묘사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대중매체에서
칼레의 시민들 (Die Bürger von Calais)
독일의 극작가 게오르크 카이저(Georg Kaiser)가 '칼레의 시민들' 일화를 바탕으로 쓴 3막 희곡으로, 독일 표현주의 연극의 주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이 희곡에서는 자원자가 7명으로 늘어나고, 제비뽑기 대신 가장 늦게 나타나는 사람을 제외하기로 하지만, 제안자였던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다른 이들의 용기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내용으로 각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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