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역사적 건축물과 종교 예술에 관심이 있는 방문객, 또는 앙티브 구시가지에서 평화로운 안식처를 찾는 이들이 주로 방문한다. 특히 프로방스 양식의 외관과 내부의 유서 깊은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자 하는 예술 애호가 및 역사 탐방객에게 의미 있는 장소이다.
분홍빛과 황토색이 어우러진 독특한 파사드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으며,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루이 브레아의 제단화 '로사리오의 성모'와 같은 귀중한 종교 예술품을 직접 관람할 수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봉헌되는 미사에 참여하여 현지 신앙 공동체의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도 가능하다.
일부 방문객들은 성당 내부가 상대적으로 소박하거나 장식이 화려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접근 방법
🚶 도보
- 앙티브 구시가지(Old Antibes) 중심부에 위치하여 피카소 미술관, 프로방스 시장 등 주요 명소에서 도보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 해안가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만날 수도 있다.
🚗 자가용
- 성당 자체 주차장은 없으나, 인근 유료 주차장(예: Port Vauban 근처 또는 구시가지 외곽)을 이용할 수 있다.
- 구시가지 내부는 차량 통행이 제한되거나 복잡할 수 있으므로, 외곽 주차 후 도보 이동을 권장한다.
🚆 대중교통
- 앙티브 기차역(Gare d'Antibes)에서 하차 후 구시가지 방향으로 도보 약 15-20분 소요될 수 있다.
- 지역 버스를 이용하여 구시가지 인근에서 하차할 수 있다.
주요 특징
1515년 니스 출신 화가 루이 브레아가 제작한 이 제단화는 성당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 작품 중 하나이다. 섬세한 인물 묘사와 풍부한 색채가 돋보이며, 남프랑스 르네상스 종교 예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트랜셉트 예배당에 위치해 있다.
1710년경 앙티브 출신 조각가 자크 돌레(Jacques Dolle)가 제작한 호두나무 문은 성당의 또 다른 보물이다. 앙티브의 두 수호성인인 성 로크(Saint Roch)와 성 세바스티아누스(Saint Sebastian)의 모습이 매우 정교하고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다.
1747년 오스트리아군의 포격으로 파괴된 후 재건된 현재의 파사드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프로방스 지역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따뜻한 분홍색과 황토색의 조화가 인상적이며, 앙티브 구시가지의 분위기와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추천 포토 스팟
성당 정면 파사드
프로방스 특유의 분홍색과 황토색이 어우러진 이탈리아 양식의 외관은 앙티브의 햇살 아래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 전체적인 건축미를 담아내기에 좋다.
성당 내부 제단화 및 예술품
루이 브레아의 '로사리오의 성모' 제단화를 비롯한 내부의 종교 예술품들은 경건하면서도 예술적인 분위기를 담기에 좋다. (내부 촬영 가능 여부 확인 필요)
바다를 배경으로 한 성당 인근
성당이 바다와 가까워 인근에서 지중해를 배경으로 성당의 일부 모습이나 종탑을 함께 담을 수 있는 뷰포인트가 있다.
축제 및 이벤트
영어 미사 (English Mass)
매주 토요일 저녁 7시
영어로 진행되는 가톨릭 미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이다. 현지인뿐 아니라 영어권 방문객들도 참여한다.
방문 팁
피카소 미술관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 미술관 방문 전후로 함께 둘러보는 동선으로 계획하기 좋다.
내부는 비교적 소박하지만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로, 잠시 번잡함을 피해 휴식을 취하거나 묵상하기에 적합하다.
일부 제단화와 예술품은 최근 복원 작업을 거쳐 더욱 선명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미사가 진행 중일 때는 내부 관람이 제한될 수 있으므로, 일반 방문객은 미사 시간을 피해 방문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성 바오로 설교 전승
지역 전승에 따르면, 사도 성 바오로가 로마에서 스페인으로 가던 중 이곳에 잠시 머물며 설교했다고 전해진다.
앙티브 주교구 설립 및 첫 성당 건축 추정
교황 레오 1세에 의해 앙티브 주교구가 설립되었으며, 이 시기에 첫 성당이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성사 예배당(Chapel of the Holy Sacrament)의 제단은 메로빙거 왕조 시대의 것으로 감정되었다.
사라센 해적에 의한 파괴
지중해를 약탈하던 사라센 해적의 습격으로 성당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프로방스 백작 주도로 재건
프로방스 백작 베렝게르 라몬(Berenguer Ramon)의 주도로 재건이 이루어졌으며, 현재 성당 구조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인 합창단(choir)이 이때 만들어졌다.
주교좌 그라스(Grasse) 이전
계속되는 해적의 약탈과 불안정한 정세로 인해 주교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그라스로 주교좌를 옮겼다. 이후 약 5세기 동안 주교들은 그라스에 머물렀다.
오스트리아군 포격으로 재파괴
오스트리아 계승 전쟁 중 벌어진 앙티브 공성전(Siege of Antibes) 당시 오스트리아군의 집중 포격으로 성당이 다시 한번 심하게 파괴되었다.
루이 15세의 명으로 재건 착수
프랑스 왕 루이 15세가 직접 성당 재건을 위한 칙령을 발표하고 왕실 자금을 지원하여 복구가 시작되었다. 현재 우리가 보는 이탈리아 양식의 파사드는 이때 형성된 것이다.
역사 기념물(Monument Historique) 지정
성당 본관, 인접한 성령 예배당(Chapel of the Holy Spirit), 그리고 인근의 그리말디 탑(Tour Grimaldi)과 함께 프랑스 문화부로부터 역사 기념물로 지정되어 국가적인 보호를 받게 되었다.
여담
성당이 세워지기 전, 이곳에는 로마의 여신 다이아나와 미네르바를 모시던 이교도 신전이 있었다는 지역 전승이 있다.
성당의 별칭 중 하나인 '노트르담 드 라 플라테아(Notre-Dame-de-la-Platea)'는 이 지역의 옛 광장 명칭에서 유래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성당의 호두나무 문에 조각된 성 로크와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앙티브의 수호성인으로, 특히 전염병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는 인물로 숭배되었다고 한다.
18세기 오스트리아군의 포격으로 성당이 파괴된 후, 루이 15세가 개인 왕실 자금을 투입하여 재건을 명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