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의 역사적 건축물, 특히 지진과 관련된 사연을 지닌 장소에 관심 있는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다.
이들은 필레 게이트를 지나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이 교회의 르네상스 및 고딕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외관을 감상할 수 있으며, 1667년 대지진에서도 살아남은 건축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운이 좋다면 내부에서 열리는 소규모 콘서트나 전시를 경험할 수도 있다.
다만, 평소에는 내부가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주로 외부 관람에 그칠 수 있으며, 일부 방문객들은 교회의 규모가 작고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접근 방법
🚶 도보
-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의 메인 입구인 필레 게이트(Pile Gate)를 통과하면 바로 왼편에 위치하고 있어 찾기 매우 쉽다.
- 오노프리오 대분수(Large Onofrio's Fountain)와 프란체스코 수도원(Franciscan Monastery) 사이에 자리한다.
구시가지 전체가 보행자 구역이므로, 성벽 외부 주차장에 주차 후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
주요 특징
1520년 코르출라 출신 건축가 페타르 안드리이치의 설계로 지어진 이 교회는 정면 파사드의 르네상스 양식과 측면 창문 및 내부 구조의 고딕 양식 특징이 결합된 독특한 건축미를 보여준다. 입구 상단의 정교한 조각과 전체적인 균형미가 돋보인다.
1520년 지진 이후 도시를 구원한 것에 감사하며 봉헌된 교회로, 1667년 두브로브니크 대지진 당시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될 때도 거의 손상되지 않고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이는 당시 건축 기술과 교회의 견고함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내부는 평소 공개되지 않을 수 있으나, 때때로 음악 콘서트나 미술 전시회 등 문화 행사를 위한 특별한 공간으로 변모한다. 이러한 행사가 열릴 경우, 아담하면서도 분위기 있는 교회 내부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운영시간: 행사 일정에 따름
추천 포토 스팟
교회 정면 전체 모습
르네상스 양식의 아름다운 파사드와 입구 상단의 조각을 포함한 교회 전체를 담을 수 있는 각도이다.
오노프리오 대분수와 함께 촬영
교회 맞은편의 오노프리오 대분수와 함께 구도를 잡으면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초입의 대표적인 풍경을 사진에 담을 수 있다.
프란체스코 수도원 배경으로 촬영
교회 옆 프란체스코 수도원의 종탑이나 벽면을 배경으로 교회의 일부를 촬영하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일요일 오전 11시에는 영어로 진행되는 미사가 있다는 정보가 있다.
내부 관람이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므로, 방문 계획 시 외부 관람 위주로 고려하는 것이 좋다.
여름 축제 기간 등 특정 시기에는 교회 내부에서 소규모 콘서트나 전시회가 열리기도 하니, 관련 정보를 미리 확인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규모가 작은 교회이므로, 구시가지 전체 일정 중 짧은 시간을 할애하여 가볍게 둘러보기에 적합하다.
역사적 배경
지진 발생 및 교회 건축 결정
5월 17일 두브로브니크에 지진이 발생하여 약 20명이 사망하고 다수의 건물이 파손되었다. 이에 두브로브니크 공화국 상원은 도시가 더 큰 파괴를 면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새로운 교회 건축을 의뢰했다. 코르출라 출신의 건축가 페타르 안드리이치(Petar Andrijić)가 설계를 맡아 공사가 시작되었다.
교회 완공
구원자 교회가 완공되어 예수 그리스도에게 봉헌되었다.
두브로브니크 대지진
약 5,000명의 시민이 사망하고 도시 대부분이 파괴된 대지진이 발생했으나, 구원자 교회는 기적적으로 큰 피해 없이 살아남아 현재까지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여담
1520년 지진 이후, 도시를 더 큰 재앙으로부터 보호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두브로브니크 공화국 상원이 이 교회의 건축을 특별히 주문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교회 정면 주 출입구 위에 새겨진 기념비적인 라틴어 비문이 이러한 교회의 봉헌 목적을 증명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건축 양식에 있어 고딕 양식의 십자형 교차 갈비뼈 궁륭 천장과 측면 창문들이 특징적이며, 동시에 정면 파사드와 반원형 후진 등에서는 르네상스 양식의 요소가 뚜렷하게 나타나 두 양식의 흥미로운 조합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있다.
1667년의 대지진과 이후의 유고슬라비아 내전 시기에도 불구하고 파괴되지 않고 원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드문 건축물 중 하나로 여겨진다.
한때 프랑스 점령기에는 교회가 소금 창고로 사용되기도 했다는 언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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