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고대 지하도시의 독특한 구조와 초기 기독교인들의 피난처였던 역사적 배경에 관심을 가진 역사 탐방객이나, 미로 같은 지하 공간을 직접 탐험하며 과거 생활상을 엿보고자 하는 특색 있는 경험을 추구하는 여행자들이 주로 방문한다.
방문객들은 여러 층으로 구성된 지하 공간을 따라 이동하며 마구간, 교회, 주방, 와인 저장고 등 당시 생활 시설과 거대한 맷돌문 같은 방어 시설을 직접 관찰할 수 있으며, 좁고 낮은 통로를 통과하는 이색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
성수기나 특정 시간대에는 관람객이 몰려 매우 혼잡하며, 일부 통로는 매우 좁고 낮아 폐소공포증이 있거나 신체적으로 불편을 겪는 경우가 있다. 또한, 내부 안내 설명이 부족하여 가이드 없이는 각 공간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기도 하다.
접근 방법
🚌 대중교통 이용 시
- 괴레메(Göreme)에서 출발하는 경우, 먼저 네브셰히르(Nevşehir)행 미니버스를 탑승한다.
- 네브셰히르 오토가르(버스터미널)에서 카이마클리(Kaymaklı)행 돌무쉬(미니버스) 또는 시내버스로 환승하여 지하도시 입구 근처에서 하차한다.
- 총 소요 시간은 대기시간 포함 약 1시간 내외이다.
버스 기사에게 '카이마클르 예랄트 셰흐리(Kaymaklı Yeraltı Şehri)'로 간다고 말하면 하차 지점을 안내받을 수 있다.
🚗 자가용 또는 택시 이용 시
- 네브셰히르 시내에서 약 19km 떨어져 있으며, 네브셰히르-니데(Niğde) 도로를 따라 이동한다.
- 괴레메에서는 약 30분 정도 소요된다.
입구 근처에 유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주요 특징
최대 8층 깊이로 추정되나 현재 4층까지만 일반에 공개되어 있다. 좁고 낮은 미로 같은 통로를 따라 이동하며 마구간, 교회, 주방, 와인 저장고, 식량 저장고, 구리 가공 장소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공간들을 직접 탐험할 수 있다. 각 공간은 중앙 환기구를 중심으로 설계된 점이 특징이다.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내부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다양한 방어 시설들을 관찰할 수 있다. 특히 거대한 맷돌 형태의 문은 각 층을 독립적으로 폐쇄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중앙의 구멍을 통해 외부 상황을 살피거나 창 등으로 공격할 수 있었다. 좁고 구불구불한 통로 역시 방어 전략의 일부였다.
지하 3층에서는 구리 제련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독특한 안산암 블록을 볼 수 있다. 표면에 약 10cm 직경의 구멍이 57개 새겨져 있으며, 이 구멍에 구리를 넣고 망치로 두드려 가공하는 냉간 단조 방식으로 작업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시의 금속 가공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추천 포토 스팟
여러 층이 한눈에 보이는 공간
지하도시의 깊이와 복잡한 구조를 효과적으로 담을 수 있는 지점으로, 수직으로 연결된 공간들이 인상적이다.
맷돌문 (Millstone Door)
고대 방어 시스템의 상징인 거대한 맷돌문 앞에서 독특한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좁고 구불구불한 통로
지하도시 특유의 미로 같은 분위기와 탐험하는 듯한 느낌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 독특한 배경이 된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폐소공포증이 있거나 허리/무릎 등 관절이 좋지 않은 경우, 일부 매우 좁고 낮은 구간 통과가 어려울 수 있으므로 관람에 주의가 필요하다.
내부에 안내 표지판이 충분하지 않으므로, 입구에서 가이드를 고용하거나 사전에 충분한 정보를 숙지하는 것이 관람의 이해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가이드 비용은 협상이 가능하며, 통상 10~25유로 수준이다.
혼잡을 피하려면 오전 일찍 방문하거나, 단체 관광객이 적은 점심시간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입장료는 1인당 13유로이며, 튀르키예 리라 현금 또는 카드로 결제 가능하다. 터키 뮤지엄 패스(Museum Pass Türkiye)로도 입장할 수 있다.
내부는 미로처럼 복잡하므로, 특히 아이와 함께 방문 시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입구(붉은색 화살표)와 출구(파란색 화살표) 표시를 잘 따라 이동해야 한다.
키가 큰 사람은 일부 통로에서 머리를 숙여야 하므로 부딪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내부 조명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어두운 편이므로 발밑을 조심하고, 편안한 신발 착용이 권장된다.
역사적 배경
프리기아인들의 초기 건설
부드러운 화산암 지대에 인도-유럽계 민족인 프리기아인들이 최초로 동굴을 파기 시작한 것으로 터키 문화부에 의해 추정된다.
확장 및 기독교 피난처화
프리기아어가 사멸하고 그리스어가 사용되면서, 주민들은 동굴을 여러 층으로 확장하고 예배당과 그리스어 비문 등을 추가했다. 특히 비잔틴 시대에는 아랍-비잔틴 전쟁(780-1180년) 동안 무슬림 아랍인들의 공격을 피해 기독교인들의 주요 피난처로 사용되었다.
중기 비잔틴 유물 발견
이 지하 정착지에서 발견된 일부 유물들은 중기 비잔틴 시대(5-10세기)의 것으로 확인된다.
몽골 침입 시 피난처
티무르의 몽골 침입 당시에도 기독교 주민들을 보호하는 피난처로 계속 사용되었다.
간헐적 박해 시기 피난처
오스만 터키 통치자들의 박해를 피해 '룸인(Rûm, 동로마인)'이라 불리던 기독교 주민들이 간헐적으로 피난처( καταφύγια, 카타피기아)로 사용했다. 1909년 아다나 학살 소식이 전해졌을 때, 악소(Axo) 지역 주민 다수가 이곳 지하 공간으로 피신하여 밤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인구 교환과 폐쇄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으로 인해 이 지역의 기독교(룸인) 주민들이 그리스로 추방되면서 지하도시는 완전히 버려졌다.
관광객에게 개방
정비 후 최초로 일반 관광객에게 개방되어 카파도키아의 주요 관광 명소 중 하나가 되었다.
여담
카이마클리의 고대 명칭은 '에네굽(Enegup)'이었다고 전해진다.
지하도시 내부의 마구간은 현재 개방된 구역에서는 비교적 작은 규모로 확인되는데, 아직 공개되지 않은 다른 구역에 더 많은 마구간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2층 교회 근처 무덤에서 발견된 이름들이 교회 가까이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름과 일치하여, 이 무덤들이 종교 지도자나 관련 인물들의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3층에서 발견된 독특한 안산암 블록은 최근 연구를 통해 구리를 **차가운 상태에서 망치로 두드려 가공(냉간 단조)**하는 데 사용된 도구였음이 밝혀졌다. 사용된 구리는 악사라이와 네브셰히르 사이 지역에서 채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카이마클리 지하도시는 약 8~9km 길이의 터널을 통해 데린쿠유 지하도시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설이 있다.
과거 이곳에 살던 주민들은 적의 침입에 대비해 작은 요강을 사용했으며, 매일 두 차례 외부로 나가 비웠다고 한다. 만약 적에게 포위되어 나갈 수 없게 되면, 더 큰 공동 요강에 모아 처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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