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중세 튀르크 건축과 멘테셰 후국 역사에 관심 있는 역사 애호가나 고고학 탐방객들이 주로 찾는다. 이들은 잘 보존된 성채와 중세 도시 유적을 직접 탐험하고자 한다.
성벽을 따라 걸으며 밀라스 평원을 조망할 수 있고, 아흐메트 가지 마드라사의 독특한 건축 양식을 관찰하거나 복원된 모스크 내부 전시를 통해 당시 생활상을 학습할 수 있다.
성채 일부 구역은 지속적인 복원 공사로 인해 접근이 제한될 수 있으며, 일부 유적은 터만 남아 있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도 있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 밀라스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약 2~5km 거리에 위치하며, 표지판 안내가 잘 되어 있어 찾아가기 쉽다.
- 유적지 입구까지 차량 접근이 가능하며,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성채로 올라가는 마지막 구간은 다소 가파른 언덕길일 수 있다.
주요 특징
1375년에 건축된 신학교로, 입구의 독특한 유럽 고딕 양식의 영향을 받은 석조 장식이 특징이다. 내부에는 설립자 아흐메트 가지의 무덤이 있으며, 현재는 석조 유물 전시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언덕 위에 자리 잡아 밀라스 평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던 성채이다. 성벽과 내부 구조물의 잔해를 통해 중세 시대의 방어 체계를 엿볼 수 있으며, 현재 일부 구간은 복원 중이다.
운영시간: 복원 공사로 인해 오후 5시 20분 이후 관람 가능할 수 있음
과거 도시의 주요 시설 중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공중목욕탕 유적이다. 현재는 지붕 대부분이 무너졌으나, 발굴을 통해 드러난 내부 공간과 대리석 바닥 등을 통해 당시의 규모와 구조를 짐작할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성채 정상에서 바라보는 밀라스 평원
베친 성채 가장 높은 곳에서 드넓은 밀라스 평원과 현대 밀라스 시가지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다.
아흐메트 가지 마드라사 정문
독특한 셀주크-고딕 양식이 혼합된 마드라사의 정교한 석조 장식은 인상적인 사진 배경을 제공한다.
복원된 오르한 베이 모스크와 중세 도시 유적
복원된 모스크와 주변에 흩어진 중세 도시의 옛 건물 유적들은 시간의 흐름을 담은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뮤제카르트(Müzekart)로 입장이 가능하다.
유적지 규모가 넓고 대부분 야외이므로, 특히 더운 날씨에는 충분한 물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관람 시 많이 걸어야 하므로 편안한 신발 착용은 필수이다.
성채 내부는 복원 공사로 인해 작업이 종료되는 오후 5시 20분 이후에나 관람이 가능할 수 있다.
성채 입구 근처의 우물은 매우 깊고 내려가는 길이 좁아 폐소공포증이 있다면 주의해야 한다.
주요 유적지에는 터키어와 영어로 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일부 복원된 모스크에는 마드라사 역사와 다양한 묘비에 대한 전시가 마련되어 있다.
역사적 배경
헬레니즘 시대 유적
이 지역에 사원을 비롯한 헬레니즘 시대의 유적이 존재했음이 확인된다.
비잔틴 교회 존재
중세 시대까지 소규모 정착지가 이어졌음을 나타내는 비잔틴 교회가 있었다.
멘테셰 후국 점령 및 수도 선정
튀르크계 멘테셰 후국이 이 지역을 점령하고 베친을 수도로 삼으면서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븐 바투타 방문
유명한 여행가 이븐 바투타가 베친을 방문하여 새로 건설된 도시로 묘사하고, 가옥과 모스크 등을 언급했다.
아흐메트 가지 마드라사 건립
멘테셰 후국의 아흐메트 가지 베이가 자신의 이름을 딴 마드라사(신학교)를 건립했다. 현존하는 주요 유적 중 하나이다.
오스만 제국 편입
멘테셰 후국이 오스만 제국에 병합되면서 베친은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거주민 이주
유적지 내에 소규모로 이어지던 정착지의 마지막 주민들이 이주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 등재
베친 중세 도시 유적 전체가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되었다.
여담
17세기 오스만 제국의 여행가 에블리야 첼레비는 그의 여행기에서 베친에 하맘(공중목욕탕)이 없다고 기록했으나, 이후 고고학 발굴을 통해 5개의 하맘 유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아흐메트 가지 마드라사의 정문은 전통적인 셀주크 양식을 따르면서도, 세부 장식에서는 유럽 고딕 건축의 영향을 보여주는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이는 당시 멘테셰 후국이 에게해의 여러 섬, 이탈리아, 남부 프랑스 등과 활발히 교역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아흐메트 가지 마드라사 입구의 아랍어 명문에는 건축을 지시한 아흐메트 가지를 '해안의 술탄(Sultan of the Coasts)'으로 칭하고 있어, 그의 해상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
아흐메트 가지 마드라사 내 아흐메트 가지의 무덤 옆에는 또 다른 멘테셰 통치자였던 쉬자에딘 베이의 무덤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과거 이 성채는 감옥으로도 사용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베친이라는 지명은 중세 이탈리아 자료에는 '페조나(Pezona)', 초기 튀르크 및 이슬람 문헌에는 '바르츤(Barçın)' 또는 '베르çin(Berçin)'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채 북쪽에서 기원전 3000년경 초기 청동기 시대의 어린이 무덤이 발견된 적이 있어, 이 지역의 오랜 거주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2Fbanner_1748613698191.jpg&w=3840&q=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