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장대한 무덤의 유적을 직접 보고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려는 역사 애호가나 고대 건축에 관심 있는 탐방객들이 주로 방문한다.
남아있는 기초와 일부 조각들을 통해 과거 웅장했던 건축물의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으며, 전시관에 마련된 모형과 영상 자료를 통해 건축 과정과 원래 모습을 학습할 수 있다.
상당수의 유물이 대영박물관으로 옮겨졌거나 보드룸 성 건축에 사용되어 현장에는 볼거리가 많지 않다는 의견이 있으며, 유적지에 대한 설명이 다소 복잡하거나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접근 방법
🚌 버스 및 도보
- 보드룸 중앙 버스 정류장(Otogar)에서 도보로 약 15분 거리에 위치한다.
- 표지판을 따라 이동하거나 현지 지도를 참고할 수 있다.
🚕 택시
- 보드룸 시내 어디서든 택시를 이용하여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주요 특징
한때 세계를 놀라게 했던 거대한 건축물의 기초와 일부 파편들을 직접 거닐며 그 규모를 체감할 수 있다. 석재 사자상, 기둥 조각 등 남아있는 유물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마우솔레움의 복원 모형과 발굴된 유물 일부가 전시되어 있어 건축물의 원래 모습과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상세한 설명 패널과 영상 자료도 제공된다.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건축물의 역사와 그 배경 이야기를 통해 고대 카리아 왕국과 페르시아 제국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현재는 많이 소실되었지만, 남은 흔적을 통해 과거의 웅장함을 상상해보는 경험을 제공한다.
추천 포토 스팟

마우솔레움 유적 기초
광대한 영역에 남아있는 무덤의 기초와 주변에 흩어진 석조 유물들을 배경으로 고대의 분위기를 담을 수 있다.

전시관 내 복원 모형
정교하게 복원된 마우솔레움의 전체 모형 앞에서 건축물의 원래 웅장했던 모습을 함께 촬영할 수 있다.

남아있는 조각상 및 프리즈
일부 남아있는 조각상이나 프리즈(띠 모양의 장식) 앞에서 고대 예술의 정교함을 사진으로 기록할 수 있다. (일부는 대영박물관 소장)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입장료는 1인당 약 3유로이다. (2025년 4월 기준)
유적지 내부에 별도의 매점이 없을 수 있으니, 개인 음료나 간식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방문 당시 화장실 이용이 가능했다는 언급이 있다.
전시관에서 상영하는 역사 개요 영상을 시청하면 유적 이해에 도움이 된다.
마우솔레움 관람 후, 도보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고대 극장도 함께 방문할 수 있다.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입구에서 무료 와이파이 이용이 가능하다는 후기가 있다.
역사적 배경
마우솔로스 즉위
카리아의 통치자 헤카톰누스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 마우솔로스가 왕위를 계승했다.
마우솔로스 사망 및 영묘 건설 시작
마우솔로스가 사망하자, 그의 아내이자 누이인 아르테미시아 2세가 남편을 기리기 위해 할리카르나소스에 장대한 영묘 건설을 시작했다. 당대 최고의 그리스 건축가 사티로스와 피티우스, 조각가 스코파스, 레오카레스, 브리악시스, 티모테우스 등이 참여했다.
아르테미시아 2세 사망 및 영묘 완공 추정
아르테미시아 2세가 사망하고, 영묘는 장인들이 자발적으로 남아 완공했다고 전해진다. 마우솔로스와 아르테미시아 2세의 유골함이 안치되었다.
영묘 유지
수백 년 동안 할리카르나소스의 랜드마크로 서 있었으며,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명성을 떨쳤다.
지진으로 인한 파괴
연쇄적인 지진으로 인해 건축물이 점차 손상되고 결국 붕괴되었다.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건축물이었다.
성 요한 기사단의 석재 활용
로도스의 성 요한 기사단이 보드룸 지역을 점령하고, 1494년과 1522년 보드룸 성(성 베드로 성)을 건설하고 요새화하는 과정에서 마우솔레움의 석재와 대리석을 건축 자재로 사용했다. 많은 조각과 부조가 성벽에 장식되었다.
고고학적 발굴
영국 고고학자 찰스 토마스 뉴턴이 유적지를 발굴하여 다수의 조각과 유물을 발견했다. 이 유물들 중 상당수는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덴마크 탐사대의 연구
덴마크 오르후스 대학의 크리스티안 예페센 교수가 이끄는 탐사대가 마우솔레움을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관련 보고서를 출판했다.
여담
마우솔레움이라는 단어는 마우솔로스 왕의 무덤에서 유래하여, 오늘날 지상에 세워진 웅장한 무덤을 일컫는 일반 명사가 되었다.
건축에는 당대 최고의 그리스 건축가인 사티로스와 피티우스가 참여했으며, 4면의 조각 장식은 각각 스코파스, 레오카레스, 브리악시스, 티모테우스라는 유명 조각가들이 맡았다고 전해진다.
고대 역사가 대 플리니우스에 따르면, 장인들은 후원자가 사망한 후에도 작품의 명성과 예술성을 위해 자발적으로 남아 작업을 완료했다고 한다.
마우솔레움은 고대 그리스 신들이 아닌 인간(왕)을 위해 헌정된 기념비적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1522년, 성 요한 기사단이 성을 요새화하는 과정에서 기사들이 무덤의 기초 부분으로 들어가 훌륭한 관이 있는 방을 발견했으나, 다음 날 아침 다시 가보니 이미 도굴된 후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기사단이 도착하기 훨씬 이전에 도굴꾼들이 지하 터널을 통해 이미 내용물을 훔쳐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마우솔로스와 아르테미시아는 화장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무덤 방에는 유골함만 안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