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성벽 유적과 어린이 놀이시설을 갖춘 작은 공원으로,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방문객이나 알보르 마을을 산책하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은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그네와 미끄럼틀 등 놀이기구를 이용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어른들은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쉬거나 잘 관리된 공용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남아있는 성벽을 통해 과거의 흔적을 잠시나마 느껴보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웅장하거나 잘 보존된 성을 기대하는 방문객에게는 실망스러울 수 있으며, 현재는 성벽 일부만 남아있는 소규모 공원의 모습에 가깝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 좋다.
접근 방법
🚗 자동차 이용
- A22 고속도로 또는 N125 국도 이용 후 알보르 방면으로 진입.
성 자체에는 주차장이 없으므로 인근 공영 주차장을 이용해야 할 수 있다.
🚆 기차 이용
- 가장 가까운 기차역은 포르티망(Portimão) 역으로, 약 7km 떨어져 있다.
- 역에서 알보르 성까지는 택시(약 12유로) 또는 지역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 버스 이용
- 리스본 등 주요 도시에서는 Rede Expressos 고속버스가 알보르까지 운행한다.
- 알부페이라, 라고스 등 알가르브 내 다른 지역에서는 Vamus Algarve 지역 버스(51번, 52번 등)를 이용할 수 있다.
- 포르티망 시내에서는 13, 14, 15, 16, 1P번 버스가 알보르를 경유한다.
버스 노선 및 시간표는 Vamus Algarve 웹사이트에서 확인하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과거 성의 중심부였던 공간에 조성된 어린이 놀이터로, 그네, 시소, 미끄럼틀 등이 설치되어 있다.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 적합하며, 주변 성벽이 독특한 배경이 되어준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페니키아 시대부터 시작되어 여러 시대를 거치며 증개축된 알보르 성의 남아있는 성벽이다. 현재는 공원의 경계를 이루며, 역사적 중요성보다는 휴식 공간의 일부로 기능한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성터 내부에 마련된 휴식 공간으로, 나무 그늘 아래 벤치가 놓여 있어 방문객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다. 깨끗하게 관리되는 공용 화장실도 이용 가능하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방문 팁
아이들과 함께 알보르를 여행 중이라면, 이곳 놀이터에서 잠시 쉬어가며 아이들이 뛰어놀게 하기에 좋다.
깨끗하게 관리되는 무료 공용 화장실이 있어 편리하다.
웅장한 성을 기대하기보다는, 역사적 배경을 가진 작은 공원 또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으로 생각하고 방문하는 것이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성 내부에는 그늘진 곳이 많아 햇볕을 피하기에 좋다.
역사적 배경
최초 요새 건설
페니키아, 그리스, 카르타고인들의 유적 위에 루시타니아 카스트로 유적을 기반으로 최초의 요새가 건설되었다.
한니발의 정복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이 이 요새를 정복하고 '포르투스 한니발리스(Portus Annibalis)'로 명명했다.
무어인의 정복
무어인들이 알보르를 정복하고, 정착지는 '알부르(Albur)'로 불리기 시작했으며 성은 중요한 군사적, 상업적 역할을 유지했다.
제3차 십자군에 의한 함락
북유럽에서 온 제3차 십자군 병력이 포르투갈의 산슈 1세 국왕을 도와 알보르를 약탈하고 주민들을 학살했다.
알모하드 왕조의 재탈환
알모하드 왕조가 이 지역을 다시 점령했다.
포르투갈 왕국의 최종 정복
아폰수 3세 국왕이 알보르를 최종적으로 정복하여 포르투갈 영토로 편입했다.
디니스 국왕의 재건 명령
정복을 유지하기 위해 디니스 국왕이 성의 재건을 명령했다.
도시 지위 획득 및 국왕 사망
주앙 2세 국왕에 의해 알보르가 도시(town) 지위를 획득했다. 주앙 2세는 이곳 알보르에서 사망했다.
리스본 대지진으로 파괴
리스본 대지진으로 인해 성이 크게 파괴되어 현재의 유적만 남게 되었다. 이 지진은 알보르의 강 흐름을 바꾸고 인구 감소를 초래하기도 했다.
어린이 놀이터 건설
성 내부의 주 광장에 어린이 놀이터가 건설되었으며, 이는 기독교 세력의 마을 정복을 기념하는 행위로도 해석된다.
여담
알보르 성은 한니발 장군이 기원전 436년에 정복한 후 '포르투스 한니발리스(Portus Annibalis)'라고 명명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포르투갈의 주앙 2세 국왕이 1495년 이곳 알보르에서 사망했으며, 그의 유해는 실베스 대성당을 거쳐 바탈랴 수도원에 안장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755년 발생한 대지진은 성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알보르 지역의 강 흐름을 바꾸고 인구를 감소시키는 등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현재 성터 내부에 어린이 놀이터가 조성된 것은 기독교 세력의 알보르 정복을 기념하는 의미도 있다는 해석이 있다.
17세기 초반 알렉상드르 마사이(Alexandre Massaii)는 알보르 성을 두고 '작은 사각형 요새'라고 기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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