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포르투갈 노예 무역의 역사, 특히 라고스가 유럽 노예 무역의 초기 중심지였던 과거에 대해 배우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나 학습 목적의 탐방객들이 주로 찾는다. 유네스코 노예 루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조성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더한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전시물과 현대 기술을 활용한 안내를 통해 라고스에서 이루어졌던 노예 무역의 역사적 사실들을 접할 수 있으며, 유럽 최초의 노예 시장이 열렸던 역사적 장소의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전시 내용이 다소 피상적이거나 노예들의 고통을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고 평가하기도 하며, 박물관의 규모가 작고 1층 전시실의 경우 계단으로만 접근 가능하여 휠체어 및 유모차 이용객의 관람이 어렵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시
- 라고스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며, 인근 공영 주차장 이용이 가능하다.
🚶 도보 이용 시
- 라고스 구시가지 주요 관광 명소에서 도보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주요 특징
유럽 최초의 노예 시장이 있었던 라고스의 슬픈 역사를 조명하는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전자 가이드(태블릿)**를 이용하여 각 전시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으며, 포르투갈의 노예 무역 전반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운영시간: 운영 시간 내
1691년에 지어진 역사적인 건물 자체를 둘러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과거 군사 행정 건물 및 세관으로도 사용되었던 매너리즘 양식의 건축물로, 1층의 아치형 구조가 특징적이다.
운영시간: 운영 시간 내
추천 포토 스팟
박물관 건물 외관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박물관 건물의 독특한 아치형 구조와 함께 사진을 남길 수 있다.
1층 아치형 공간
과거 노예 시장으로 사용되었던 공간의 분위기를 담은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입장료는 성인 기준 3유로이며, 학생 및 60세 이상은 1.5유로, 12세 미만 어린이는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
박물관 내부는 두 개 층으로 나뉘어 있으며, 1층과 2층(상층)의 입구가 다르므로 관람 시 참고해야 한다.
주요 전시는 1층에 집중되어 있으나, 이 공간은 계단으로만 접근 가능하여 휠체어나 유모차 이용객은 관람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전자 가이드(태블릿)가 유용했다고 평가하지만, 사용이 불편하거나 정보 전달이 비효율적이라는 의견도 있으니 참고하는 것이 좋다.
박물관 규모가 크지 않아 관람에는 보통 30분에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역사적 배경
최초의 아프리카 노예 포르투갈 도착
누누 트리스타웅이 이끄는 원정대가 오늘날 서사하라 지역에서 아프리카인들을 포르투갈로 데려왔다. 안타웅 곤살베스는 아프리카 내부의 노예 거래를 발견하고 자발적으로 노예를 구매했다.
라고스에서 유럽 최초의 노예 시장 형성
란사로트 드 프레이타스가 이끄는 원정대가 235명의 노예를 라고스로 데려와 유럽 최초의 근대적 노예 시장에서 판매했다. 항해왕 엔히크는 수익의 1/5을 가져갔다.
노예 상륙지 리스본으로 제한
마누엘 1세 국왕이 노예는 리스본에서만 상륙할 수 있다는 칙령을 발표했다.
현재 건물 건축
제6대 비디게이라 백작이자 제2대 니자 후작인 프란시스쿠 루이스 발타자르 다 가마의 지시로 현재의 건물이 노예 판매가 이루어졌던 14세기 건물 부지에 세워졌다. 이후 군사 행정 건물로 사용되었다.
세관으로 사용
건물이 라고스의 세관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박물관 설립 계획
라고스 시의회가 메르카두 드 에스크라부스에 박물관 설치를 계획했다.
노예무역 루트 박물관 개관
건물 전체가 노예 제도의 역사를 다루는 박물관으로 개관했다. 유네스코 노예 루트 프로그램의 일부로 운영된다.
인간 존엄성 국제 기념 센터 지정
포르투갈 기반 국제인권관측소로부터 '인간 존엄성에 대한 살아있는 기억의 국제 센터'로 지정되었다.
여담
현재의 박물관 건물은 1444년 최초의 노예들이 라고스에 도착했을 당시의 건물은 아니라고 한다. 최초의 노예 시장은 이 건물이 위치한 바로 그 장소에서 열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항해왕 엔히크는 아프리카 탐험의 후원자로서 라고스로 들어온 노예 가치의 1/5을 자신의 몫으로 챙겼다고 전해진다. 당시 노예들은 가족 관계와 상관없이 무작위로 그룹 지어졌으며, 이로 인해 많은 가족이 해체되는 비극을 겪었다.
초기에는 노예를 소유하는 것이 부유층의 사회적 지위를 상징했으나, 16세기부터는 노예가 흔해져 가사 노동뿐 아니라 알가르브 지역의 토지 개간 같은 대규모 작업에도 동원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박물관으로 전환되기 전, 이 건물은 군사 행정 시설 및 라고스 세관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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